대통령 ‘독대의 역사’…밀실 정치 논란에 매뉴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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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당 지도부의 24일 만찬은 ‘썰렁하게’ 끝났습니다. 만찬을 앞두고 한 대표가 독대를 요청했지만, 대통령실은 이번 만찬은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이 완료된 뒤 ‘상견례’라고 의미 부여를 하면서 독대를 거부했습니다. 독대는 보통 물밑 조율을 거쳐 성사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끝나기 전에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언론에 알려지자 대통령실은 불쾌한 기류입니다. 만찬에선 의정 갈등 해법 등 시급한 현안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한 대표는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오늘(24일)은 얘기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으니, 이른 시일 내에 자리를 만들어달라”며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다시 요청했다는 전언입니다. ‘독대 신경전’은 계속되는 모양새입니다.
대통령의 ‘독대’는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이자 메시지입니다. 시대와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져 왔습니다. 과거 대통령들의 ‘독대 정치’는 어땠을까요.
‘밀실 정치’ 막자며 만든 ‘독대 매뉴얼’
국어사전은 독대를 ‘벼슬아치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 ‘어떤 일을 의논하려고 단둘이 만나는 일. 주로 윗사람과의 만남을 이른다’라고 정의합니다. 조선 시대 사관 없는 독대는 원칙적으로 금했지만, 세종의 경우 독대를 민심 청취 차원에서 자주 활용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독대는 배석자가 있는 경우와 배석자가 없는 경우로 나뉩니다. 한 대표는 최근 배석자가 없는 일대일 회동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사독재·권위주의 정부 시절 배석자 없는 대통령의 독대는 ‘밀실 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이나 경호실장 등을 독대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을 즐겼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김대중(DJ) 정부 시절 김중권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이 ‘독대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 전 실장은 2016년 12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서실장보다 경호실장을 가까이하는 걸 지켜본 경험(김 전 실장은 노태우 정부에서 정무수석으로 근무)을 바탕으로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비서실장으로부터 국정에 관한 보고를 먼저 받는 게 정상”이라며 과거 경호실장, 안기부장을 가까이했던 대통령의 독대는 ‘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국정원장이 독대할 때는 외교·안보수석 배석, 감사원장 독대에는 민정수석 배석 등의 방식으로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독대 금지령’ 내린 노무현 전 대통령, 독대 부활시킨 이명박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보고를 비롯해 ‘독대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단둘이 만나면 대통령의 의중이 일방적으로 해석돼 외부로 의사전달이 왜곡될 수 있고, 독대 상대가 제공하는 주관적인 정보가 대통령에게 잘못 입력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2006년 5월18일 ‘대통령과의 독대가 힘들어 생각이 달라도 설득하지 못한다’는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강연내용을 실은 언론 보도를 비판하며 청와대에서 한 설명은 ‘독대 금지령’의 취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독대가 가신정치, 안방 정치, 밀실정치의 산물이었기에 폐지한 것이고 이는 정치의 투명성, 정책 결정 과정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언론의 요구이기도 했다.” “중요 정책 결정은 독대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함께 협의하는 과정, 회의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게 맞으며 그게 민주주의.” (양정철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폐지했던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를 부활시키며 ‘국정원 통치 기구화’를 꾀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수시로 독대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그 외에도 당시 여당 대표, 원내대표 등과 수시로 배석자 없는 독대를 즐겼다고 합니다.
11개월 독대 없었던 박근혜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2016년 11월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눈길을 끄는 질의·응답이 있었습니다.
“정무수석으로 11개월 일하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있나?”(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없다. 회의를 하러 들어가고 나가고 그런 때나, (대통령) 집무실에서 다른 분들이 계실 때 말씀을 나눈 적은 있다. (다만) 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둘이 만나서 얘기한 일은 있었다.”(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당시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씨 비선 실세 논란이 거셌던 만큼 “독대를 안 했다”는 조 전 수석의 답변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와 다른 ‘윤-한’의 독대 신경전
과거 사례를 되짚어 보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 신경전’은 이례적이긴 합니다. 과거 대통령이 권력·사정 기관과 독대하는 것이 ‘밀실 정치’로 문제시되며 이를 개선하는 쪽으로 바뀌어 왔으나, 대통령이 여당 대표 등 당 인사들과 독대를 가지는 건 ‘당정소통’으로 당연시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평소에도 여당 의원들을 자주 관저로 초청하고, 수시로 사람들을 만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대표와의 독대와 소통에 인색합니다. 한 대표가 당대표로 선출된 뒤인 7월3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90분을 만났지만, 당시에는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배석했습니다. 결국 24일 만찬과 독대 신경전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뿌리 깊은 갈등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것 같습니다.
여당이나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여당 지지층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갈등하는 모습에 실망해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독대 신경전이 계속될수록 여당 지지자들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갈지 모릅니다. 의정 갈등 해법을 기다리는 많은 국민들 역시 등을 돌리게 되고요.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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