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재선충병②] 소나무뿐만 아니라 사람도 잡는다

박찬범 기자 2024. 9. 2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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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나무, 47만 그루


2024년 7월 기준 재선충 감염 소나무류 약 47만 그루가 베어 지지 않고 산림 현장에 남아 있습니다. 2022년 하반기부터 발생한 소나무도 포함돼 있습니다. 대부분 영남 지역에 분포돼 있습니다. 장소는 다양합니다. 산 중턱에 있기도 하고, 사람이 접근 가능한 임도 주변에서도 쉽게 보입니다.

현장에 가보면 오랜 기간 방치돼 있는 만큼 이미 넘어져 있는 나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지가 부러져 있는 경우는 다반사입니다. 일부 소나무는 뿌리까지 지면 밖으로 노출돼 있는데, 사람이 손으로 세게 밀면 넘어갈 정도입니다. 최근 3년간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급증하다 보니 이처럼 적기에 베어내지 못한 케이스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죽은 소나무, 사람 잡게 생겼다


재선충병 방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방치돼 있을 때 사람을 위협하는 흉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수분이 빠져나간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지탱하는 힘을 잃게 됩니다. 그만큼 조그만 외력에도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 왕래가 잦은 곳일수록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나무가 주택, 도로 등 사람이 있는 곳에 떨어진다고 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하나씩 넘어지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 군락지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큽니다. 많은 비가 쏟아질 때 토사 붕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재선충 감염 소나무와 산사태 사이 연관성을 연구한 자료는 아직 없지만, 앞서 재선충병이 창궐한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한 자료가 하나 있습니다.

2011년 일본생태학회에서 구두 발표된 자료입니다. 일본 규슈 아마미오 섬 일대 지역에서 토사 붕괴 현장의 식생을 조사한 자료입니다. 해당 지역은 재선충 감염 소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해당 자료에는 2010~2011년 집중 호우 여파로 토사 붕괴가 일어난 지역과 일어나지 않은 지역의 식생을 비교해 봤더니 재선충 소나무 군락지에서 토사 붕괴가 더 빈번하게 나타났다고 적혀 있습니다.



SBS 취재진은 녹색연합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서 사람 안전을 위협하는 재선충 감염 지역을 지난 8월 답사했습니다. 김원호 자연생태팀 활동가와 서재철 전문위원이 동행했고, 현장 자문은 정규원 산림기술사(전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로부터 받았습니다.
 

주택 위협 Ⓐ - 경주 감포읍, 밀양 상남면


즉각적인 대처가 가장 필요한 지역입니다. 경주 감포읍 오류3리 마을을 찾았습니다. 고령층 인구가 대부분인 곳입니다. 주민들은 저마다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데, 주택 지붕 바로 위로 재선충병 감염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비가 만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재선충 감염 소나무의 가지가 지붕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유복순 할머니는 지난해 비가 많이 왔을 때 주택 옆 개인 창고로 죽은 소나무 하나가 떨어져 다칠 뻔했다고 말합니다. 이밖에 마을 사는 어르신들은 이미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잠재적인 위험 요소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오류3리 마을은 재선충과 별개로 산사태 취역지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경남 밀양의 상남면 외산리 마을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외산리 마을은 소나무 숲이 디귿 자 형태로 마을의 3면을 감싸고 있습니다. 송준설 마을 이장님을 만났습니다. 4년 전부터 산 중턱에서 붉은빛 소나무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마을 목전까지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급경사지의 소나무가 비가 많이 내리는 날 토사와 함께 쓸려 내려오다 도랑이라도 막으면 물난리가 날 거라고 걱정합니다. 이처럼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지역 마을 주민들에게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도로 위협 Ⓑ - 포항시 남구, 춘천시 남면



도로 주변의 위치한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운전자들을 위협합니다.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에 위치한 해안 도로를 가봤습니다. 한쪽엔 바닷가가 펼쳐져 있고, 반대쪽엔 급경사지를 따라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즐비합니다. 소나무 잔가지 하나 정도가 떨어지는 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나무 몸통 전체가 만에 하나 운전석을 덮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토사 붕괴가 일어나면 낙석 사고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강원도에서 재선충 확산이 심한 춘천시 남면에 가봤습니다. 고속도로 터널 출입구 바로 윗부분 산림에서도 재선충 감염 소나부가 발견됐습니다. 경사가 매우 심한 곳인데, 터널 출입구 쪽으로 나무나 토사가 떨어진다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재선충병 확산이 심한 지역에서는 도로 주변마다 뽑히기 일보 직전인 소나무가 쉽게 보입니다.

관광지· 문화재 Ⓒ - 경주 불국사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문화재 훼손을 우려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재선충병 확산이 심한 경주가 그렇습니다. 국보가 많은 불국사 주변에서도 불그스름하게 변한 소나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진은 불국사 위치 기준 직선거리로 500~600m 떨어진 곳에서 재선충병 감염이 의심된 소나무를 보고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방제를 서두르지 않으면 불국사 쪽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재선충병과 산불 피해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산불 문제와 연결돼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산불이 발생했을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수분이 다 빠져나간 상태로 말라있습니다. 불이 붙으면 쉽게 타오르고 번집니다. 침엽수림 자체가 산불에 원래 취약하지만, 재선충에 감염된 침엽수는 더 치명적입니다. 지난해 캐나다에서 대형 산불이 났었습니다. 이때도 병해충에 의한 소나무 고사 면적 증가가 피해 확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산불을 포함해 여러 재난·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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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범 기자 cbcb@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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