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가면 늘 다독여주던 ‘청소 이모’… 꼭 다시 만나요[함께하는 ‘감사편지 쓰기’ 연중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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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모께서는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모가 제게 잊을 수 없는 분이라 이렇게 '감사편지'까지 쓰게 됐어요.
예의상 인사로 시작했던 이모와 저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나요? 처음엔 제 이름도 잘 못 기억하시길래 '이렇게 스치는 인연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제 이름을 기억하시고 저를 불러주시던 그 순간 제게는 '이제 그냥 스치는 인연이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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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장관상 세종고 이수미 학생
TO. 이름 모를 청소 이모에게
안녕하세요? 이모께서는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모가 제게 잊을 수 없는 분이라 이렇게 ‘감사편지’까지 쓰게 됐어요.
예의상 인사로 시작했던 이모와 저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나요? 처음엔 제 이름도 잘 못 기억하시길래 ‘이렇게 스치는 인연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제 이름을 기억하시고 저를 불러주시던 그 순간 제게는 ‘이제 그냥 스치는 인연이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평소에 그냥 무념무상으로 또는 이모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청소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어요. 그 덕분에 이제 화장실에 가면 이모 생각밖에 안 나요.
이모, 기억하시나요? 무심코 인사 한 번 하고 지나치실 줄 알았는데, 기운 없는 제 모습을 보시고 이마를 짚어주셨던 거요. 보드랍고 시원한 손을 제 이마에 얹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어디가 아프니? 약은 먹었니?’ 물어봐 주셨을 때 말이에요. 집에서도 못 들어볼 말을, 바쁘디바쁜 학교에서 딱히 티 내지 않았음에도 단숨에 알아차려 주신 데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사실 열이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런 거 있잖아요. 아플 때 아무도 몰라주고 나만 끙끙 앓고 있으면 세상에서 혼자가 된 기분이 들어 더 아픈, 그런 꾀병이었달까요. 근데 이모의 걱정으로 그 병이 단숨에 나았어요. ‘타이레놀’을 챙겨오신다는 말에 보건실에서 이미 약을 먹었던 상태였는데도 어찌나 받고 싶던지요.
이모. 여느 때처럼 밝게 빛나는 노란 청소 카트를 보고 눈을 번쩍 떴는데 그 손잡이를 잡고 있는 사람이 이모가 아니었을 때, 종례시간 청소 아주머니가 바뀌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제 귀에 스쳐 지나갔을 때, 저 생각보다 침착했어요. ‘그냥 그런가보다, 그만두셨나 보다’ 싶었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그 빈자리가 점점 더 공허하게 다가오는 거 같아요. 이제 주인이 바뀐 청소 카트에도 눈을 쉽사리 뗄 수 없더라고요. 깔끔히 치워진 화장실을 보면 이모가 청소한 거라고 착각을 해요.
이모, 우리가 함께 쌓아온 추억이 많잖아요. 앞으로도 더 쌓아가는 거 아니였을까요. 이모는 스치는 인연을 넘어섰고, 이제 제 학교생활의 일부인데 이렇게 말도 없이 가시는 게 어딨어요. 일하시는 장소를 옮기신 걸까요? 지나가다 마주칠 순 있는 걸까요? 이모 성함은 무엇인가요? 따뜻한 목소리로 항상 저를 “수미야” 하며 불러주시던 이모의 이름을 저는 모르네요.
지난 시험 기간에 멀리 계신 이모를 보고 일부러 못 본 척 인사하지 않은 적이 있어요. 근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뵈러 갈 걸, 그랬으면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듣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요.
이모, 이모 덕분에 제가 다니는 학교가 깨끗해졌어요. 저는 이모에게 너무너무 감사해요.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간 하지 못한 말도 드리고 꼭 포옹하며 편지가 아닌 말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지나가다 저를 보시면, 꼭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어디서 어떻게 불러주셔도 제가 달려갈게요. 이모의 이름을 직접 물어볼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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