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폭염 심해질 것은 틀림 없어… 사회적 논의·대비 필요”[현안 인터뷰]
내년 더 덥다? 예측 어렵지만
올해처럼 해수면 온도 오르면
韓 폭염 발생 가능성도 높아져
경험하지 못한 국지성 강수 등
現 예보모델로는 파악 어려워
차세대 예보 시스템 개발 속도
올해 여름은 장마와 호우를 시작으로 폭염, 열대야가 추석까지 이어지며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계절이었다. 전례 없는 폭우와 무더위 앞에 ‘극한’이라는 용어가 수시로 붙었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순환고리로 연결되는 자연현상이 파급되며 한반도에서 수천㎞ 떨어진 대기 변화가 폭염, 폭우를 가져오는 만큼 예측하기 어렵다. 자연현상을 막을 수는 없어도 사전경고를 통해 최일선에서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다름 아닌 기상청의 역할이다. 그 때문에 기후변화는 기상청 직원들에게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 같은 기존 OX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비가 왜 내리느냐’는 서술형 과제를 던지고 있다. 추석 연휴까지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막 끝난 지난 23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만난 장동언(59) 기상청장은 “자연 현상으로 비가 많이 내려도 왠지 내가 잘못한 것처럼 느끼는 게 바로 ‘기상청 사람들’”이라며 “요즘은 출근할 때마다 매일·주간·월간 평가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청장은 이날 인터뷰 동안 수업하듯 올여름 날씨를 복기하면서도 기후변화에 대해선 “해가 갈수록 폭염이 심해질 것이 틀림없다. 사회적 준비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여름 기상과 관련 ‘극한’이란 용어가 많았다. 기후변화 속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지만 국민은 좀 더 높은 예측도를 기대한다.
“전 세계적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이상기상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강수의 국지성·강도가 매우 커지는 것이 예보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기후변화로 과거보다 수증기 이동과 작은 규모의 역학적 불안정이 매우 강화된 결과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공간적으로 10㎞ 수준 해상도를 갖는 전 지구 수치예보모델로는 상세히 파악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해상도를 1㎞ 수준까지 높인 차세대 수치예보모델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또 집중호우 변동성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나리오 산출이 가능한 수치예보모델 체계를 갖춰나가려 한다.”
―최근 들어 해가 지날수록 무더위가 강해지는 양상인데.
“기상청의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보고서’를 살펴보면 전국 연평균기온이 과거보다 1.6도 상승했다. 기온은 단기적 변동이 크기 때문에 올해 같은 더위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목할 것은 평균기온과 폭염 일수 같은 기온 관련 상위 순위가 대부분 최근 연도로 채워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기온은 계속 상승 추세다.”
―올여름 더위는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 영향이 컸다. 앞으로도 이런 영향을 계속 받는지, 올해만 유별났던 것인지 궁금하다.
“더운 성질을 가진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 모두 우리나라 상공을 장기간 덮으면서 맑은 날이 계속돼 기온을 더 끌어올렸다.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올해는 특히 인도양과 태평양 지역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게 유지돼 대류 활동이 강화되면서 두 고기압이 발달하고 확장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인도양과 태평양 등 대양의 해수면 온도가 최근 상승세인데 이런 경향이 지속할 경우 우리나라에 폭염 발생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올해 여름 가장 많은 뉴스가 열대야였다.
“올해 유난히 수증기 유입이 많은 것이 큰 요인이었다. 바다에서 들어오는 수증기는 자연 발생적이지만 온난화 효과가 상당하다. 밤에 냉각되지 않은 공기가 들어오니 일종의 ‘비닐하우스’에 갇힌 것처럼 무더위를 느끼는 일이 많았다. 특히 8월 31일까지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가 20.2일로 폭염이 극심했던 2018년 열대야 일수 16.6일을 뛰어넘었다. 전례 없던 더위였다. 내년이 올해보다 더 덥다고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추세로 보면 해가 지날수록 폭염이 심해질 것은 틀림없다. 우리도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어떻게 준비할지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결국 문제는 기후변화이고, 한동안 이를 거스를 수 없는데.
“기상청은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는지에 따라 2100년까지의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했는데 21세기 말 한국의 연평균기온은 현재 대비 최소 2.3도에서 최대 6.3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또 폭염 일수는 현재 8.8일보다 최대 9배(15.4∼70.7일) 더 늘어나고 열대야 일수는 현재 3.3일보다 최대 21배(19.1∼65.2일)까지 증가할 수 있다.”
―폭염 전에는 장마, 특히 올해 장마 때 시간당 100㎜ 이상의 극한 강수가 몇 차례 있었다.
“장마철 많은 비가 내렸던 2020년 시간당 100㎜를 넘는 비가 여러 날에 걸쳐 5차례 발생했는데 올해는 하루 만에 5차례 발생한 적(7월 10일)도 있다. 원인으로는 먼저 지구온난화로 기온과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 대기 중 수증기량이 증가했다. 온도가 높아지면 같은 부피의 공기에 포함되는 수증기량이 많아지면서 강수의 재료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또 북극 해빙이 평소보다 많이 녹으면서 북반구 상층 기압계를 요동치게 했다. 서에서 동으로 무난히 흐르던 기류가 남북으로 요동치며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가 자주 남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체전선에서 일반 저기압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중규모 저기압’이 자주 발달했고 강수를 더욱 좁은 영역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더위는 지났고, 가을과 겨울 날씨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추석 이후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낮 동안은 햇볕이 강하지만 오전 기온은 많이 내려갔고 선선하다. 다만 계절 기상은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만큼 가을과 겨울 날씨를 상세히 밝히기는 이르다.”
―최근 수년간 극한 호우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호우 긴급재난문자’ 대상 지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방자치단체 등 재난대응기관의 선제 대응을 비롯한 여러 노력이 함께 이루어진 결과겠지만 올해 긴급재난문자를 운영 중인 수도권과 경북·전남권은 사고가 없었다. 호우 긴급재난문자는 극한 호우 기준(시간당 50㎜ 이상, 3시간 누적 90㎜ 이상)에 내려진다. 아쉬운 것은 미운영지역인 충청권에서 논산 엘리베이터 침수사고, 영동 농막 유실사고 등 피해가 발생했다. 사후 분석에 따르면 호우 긴급재난문자가 운영됐다면 사고 발생 최소 20∼30분 전에 발송기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말까지 피해사례를 분석해 내년에는 운영지역을 더 확대하고 전국 확대도 최대한 빠르게 추진하겠다.”
―이상기상 현상이 증가하면서 예보시스템 못지않게 예보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기상청 예보관은 4개 조가 대기근무 없이 꽉 짜인 시간에 맞춰 주·야간 교대근무를 한다. 역량개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만 해도 예보 근무조를 5개 조로 편성해 4개 조는 교대근무, 1개 조는 출·퇴근 식으로 근무하며 조사·분석 업무를 병행해 전문성을 키우고 있다. 우리도 기존 예보관 역량 강화 교육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례적 현상들을 충분히 분석할 수 있으려면 인원을 늘려 적어도 5개 조로 편성해야 한다.”
―폭염으로 인해 근로조건이 취약한 근로자·농업인들의 피해가 크다. 폭염 경보도 강화해야 하는데.
“올여름 온열질환자 수가 3000명을 넘겼다. 농촌 어르신과 독거 노인들은 통신기기 사용이 어려워 기상정보를 모르고 일을 나갔다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고 건설 현장 근로자, 택배 노동자, 우체국 집배원들은 야외 활동시간이 길어 폭염에 취약하다. 농촌 어르신의 경우 보호자, 그리고 마을 보건관계자 등에게 폭염 정보 전달을 다각화하고 있는데 관련 서비스를 확대하도록 하겠다. 또 외국인 근로자지원센터 대상 폭염 안전사고 예방교육 등 지역별로 실시하는 시범사업 성과를 분석해 전국으로 확대하겠다.”
―기상청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올 여름철 기승을 부린 폭염과 열대야, 집중호우 등을 통해 기후위기가 이미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음을 많은 국민이 체감했으리라 생각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기상청장으로서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빈발하는 극단적 호우, 폭염 등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예보하기 힘들어지는 극한기상에 대한 예측능력을 지속해서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상설 연구조직, 가칭 ‘한국수치예보기술원’을 만들어 수치예보기술 고도화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겠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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