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told] "대표팀에 마지막 봉사 하겠다" 홍명보 감독의 '희생'이 설득력 없는 이유
[포포투=김아인]
"대표팀에 마지막으로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에는 반응이 좋지 않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많은 이들이 선수 시절 홍명보 감독을 떠올렸을 때 2002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이 결정되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평소 어떤 상황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주장 홍명보가 스페인전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뒤 환하게 웃던 장면은 큰 화제를 불러왔다. 전례 없던 한국 축구 역사가 새롭게 세워지면서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전해줬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하나가 되는 법을 알았다. 전쟁 후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했고, IMF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극복했다. ‘희생’이나 ‘양보’를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때였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약체'였던 한국은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위해 리그를 조기 종료시키면서까지 선수단 단체 합숙을 진행했고, 투지와 투혼을 쏟아내 4강 신화를 썼다.
홍명보 감독에게는 그런 '희생'과 '봉사', '양보'가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질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개인을 중요시하기보다, 남들과 화합하고 '하나' 되는 순간으로 최고의 황금기를 누려봤기 때문이다. 그는 유독 이번 대표팀 감독 선임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희생'이나 '봉사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대한축구협회(KFA),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현안 질의 국회 전체 회의를 진행했다. 반나절 넘게 진행된 회의에서 정몽규 KFA 회장,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 KFA 관계자들은 질의를 통해 근래 들어 협회가 드러낸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감독 선임 절차 의혹에 대해 홍명보 감독을 비롯해 정몽규 회장은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홍명보 감독은 “마음이 무겁다. 감독 선임설이 돌았을 때는 울산에서 팬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으면서 축구를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이어 “하지만 축구 인생 40년 중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가 가장 힘들었다. 월드컵 대표팀 감독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가고 싶지 않았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임생 위원장으로부터 한국 축구의 어려운 점을 듣고 외면하기 어려웠다. 대표팀에 마지막으로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년 전에도 가졌던 책임감과 사명감이 다시는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면담하고 또 사명감이 들어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7월 공식 선임된 이후에도 줄곧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왔다”, “나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 욕심이 아닌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라는 주장을 강조했다. 그가 울산 HD를 하루아침에 등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결국 한국 축구를 위한 '희생'이 필요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희생이란 단어에 콧방귀를 뀌는 시대가 됐다. 정권은 5차례 교체됐고, 2020년대에 접어들었다. 'MZ세대'라는 단어나 개인의 성격을 존중하는 'MBTI' 같은 것들이 유행하면서 '나'에 대한 개인이 중요해졌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불필요한 모임이 줄었고, 직장에서는 젊은 세대의 퇴사가 늘었다. 인권이 중요해지고 개인의 자유가 중요해지면서, 무조건적인 희생보다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기를 원하는 현실이 됐다.
홍명보 감독의 희생이 축구 팬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대표팀 감독이 받는 연봉을 포기하면 희생을 인정하겠다거나, 심지어 월드컵 성적보다 한국 축구의 뿌리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축구 인기가 올라가면서 축구를 접하는 기준이 높아지고,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스타 선수들 때문에 축구장을 찾는 팬들도 늘었다.
홍명보 감독은 시대가 변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감독직 제안을 받아들인 홍명보 감독에게 무조건 잘못이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봉사 정신'을 가진 태도에도 당연히 응원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중들은 모래성처럼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급하게 쌓아 올리는 결과보다는 부끄럼 없이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이 한국 축구계에 존재하기를 더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감독직을 맡게 한 축구협회에도 책임이 있는 건 당연지사다.
김아인 기자 iny421@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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