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파워’ 최약체 K-무용 대중화 위해 뭉쳤다…男 무용수들의 ‘몸의 대결’
K-무용수들의 애환과 성장·감동 보여줄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용은 불공평한 예술이에요. 피지컬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몸에서 오는 한계는 몸으로 극복해야 하는 게 무용수죠.” (‘스테이지 파이터’ 첫 회 방송 중)
“숨이 미칠 때까지 차올라도 지칠 때까지 해야죠. 춤추다 죽은 사람은 없어요.” (‘스테이지 파이터’ 첫 회 방송 중)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절망의 통곡’을 넘어야 하는 가장 잔혹한 서바이벌이 왔다. 64명의 무용수가 벌이는 또 하나의 ‘춤의 대결’이자 ‘몸의 대결’이 시작됐다. 난해한 현대무용, 지루한 한국무용, 마니아만 좋아하는 발레…. 대한민국 공연 시장에서 3대 최약체인 세 무용 장르가 뭉쳐 K-춤판을 벌인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스트리트 맨 파이터’에 이어 또 하나의 ‘춤 신드롬’을 노린 케이블 채널 엠넷(Mnet)의 새 서바이벌 ‘스테이지 파이터’가 왔다.
‘스테이지 파이터’는 이미 제작 단계에서 무용계 안에서도 꽤나 화제를 모은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딱 맞는 출연자들을 찾기 위해 제작진은 발로 뛰며 섭외 전쟁을 벌였고, 그 과정이 국공립단체와 민간 무용단체 사이에서 회자되며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업계에선 프로그램의 성공 가능성은 높이 점쳐지지 않았다. 각기 다른 세 장르의 무용수들을 모아 벌이는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확실하다. 대중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K-무용과 무용수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한국 공연 시장에서 무용 장르는 최약체 라인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올 상반기 장르별 티켓 판매액에 따르면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이 포함된 무용은 대중예술, 뮤지컬, 클래식, 연극, 국악 등 총 6개 장르 중 5위(총 티켓 판매액 59억97930만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대중음악의 티켓 판매액은 319억원, 뮤지컬은 2188억원, 클래식은 476억원, 연극은 337억원, 국악은 2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7월까지 뮤지컬이 1467건, 클래식이 3521건의 공연을 열 동안 무용 장르에선 고작 267건 만이 공연됐다. 무용의 세 장르에서 유료 객석 점유율 70~80% 이상을 기록하는 공연은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 국립무용단 등의 국공립단체 뿐이다.
대중과 동떨어진 장르를 가져오는 만큼 제작진의 각오가 남다르다.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은 권영찬 CP는 “우리나라에 굉장히 뛰어난 무용수들이 많고, 세계 각국에서 엄청나고 대단한 활약을 하는 무용수가 많지만 대중은 전혀 알지 못한다”며 “이들 모두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분야에 매진하며 오직 무용 뿐인 삶을 살고 있다. ‘스테이지 파이터’를 통해 무용수 개개인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방송 전까진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각 장르의 선공개 영상은 통합 조회수 약 1700만회를 기록했다. 최정남 PD는 “무용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쉽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며 “3가지 장르(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하나씩 풀어내고, 그 안에서 장르의 색을 돋보이게 만드는 게 1차 목표”라고 밝혔다. 뚜껑을 연 ‘스테이지 파이터’는 화려한 면면의 무용수들을 조명하며 경쟁 구도를 만들고, 각각의 장르가 가지는 춤의 특성을 설명하며 서바이벌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의 역할을 두루 수행했다.
이 프로그램이 가장 자극적인 요소로 들고 나온 것은 ‘계급 전쟁’이라는 ‘서바이벌 요소’와 피지컬과 아름다움을 향한 반복적 강조다.
사실 국내외의 각 무용단체는 철저한 ‘계급 사회’다. 각 장르마다 용어는 다르지만, 저마다 주역, 조역, 단역, 군무를 맡는 무용수들의 ‘계급’이 정해져 있다. 직장으로 치면 직급과도 같다. 현재 국내외 발레단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솔리스트’ 단계까지 올라가야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한국무용, 현대무용 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계급 없이 오디션을 통해 주·조연 무용수를 선발하는 단체는 현재 국내에선 서울시발레단 뿐이다.
‘스테이지 파이터’는 참가 무용수들이 원하는 배역을 따기 위해 각 장르마다 계급을 통해 배역을 가른다. 장르와 장르의 대결이 아닌 장르별 계급 경쟁인 셈이다.
이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 군단도 쟁쟁하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출신으로 무용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은 김주원이 마스터로 큰 틀을 진두지휘한다. 또 한국무용 정보경·김재승, 현대무용 성창용·최수진이 코치로 합류했다. 발레 코치는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대표 솔리스트 한성우와 공연 예술계 독보적 위치의 발레 안무가 유회웅이 발탁됐다. 뿐만 아니라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램버트 무용단’ 출신인 매튜 리치(Matthew Rich)가 리허설 디렉터로 합류했다.
프로그램엔 엄청난 실력자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무용 24명, 현대무용 24명, 발레 16명 등 총 64명의 참가자 중엔 명실상부 한국 무용수들의 ‘꿈의 직장’인 국립무용단 부수석 출신으로 ‘무용수들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한 최호종을 비롯해 70만 팔로워를 거느린 기무간, 국립발레단 출신 김태석 등이 포함됐다. 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차세대 발레 유망주들도 총출동했다.
첫 방송에선 총 16명의 참가자가 지원한 발레 무용수들의 ‘몸의 대결’로 계급이 결정됐다. A, B, C, D라인으로 각각 네 명씩 겨룬 피지컬&테크닉 오디션에선 최하위 언더(군무) 계급부터 세컨드(조역), 퍼스트(주연) 계급이 결정됐다. D라인에서 언더 계급으로 뽑힌 최규태는 타고난 O자형 다리 체형의 결함으로 ‘클래식 발레리노’로의 꿈 앞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그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신체의 한계로 인한 무용수의 단점 앞에 무너져내렸다.
발레 장르 무용수들의 대결과 함께 첫 회에선 한국무용 참가자 24명이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무용수의 무용수’ 최호종과 그의 유일한 대항마로 떠오른 기무간의 대립, 지난 여름 국립무용단에서 퇴단하며 울타리 밖으로 나온 최호종이 마주할 서바이벌 무대의 냉혹한 현실이 그려지며 다음 회차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에 마스터로 참여하는 김주원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예술감독은 “이 프로그램이 대결과 계급 경쟁이 결과만 추구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스테이지 파이터’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며 “이 과정에 참여하는 무용수들의 애환과 성장, 예술이 주는 감동과 과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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