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규놀이 끝판왕 나왔다’ 11분 12초 동안 투구수 22개 버텨 볼넷 출루
NPB 야노 마사야…KBO, MLB서도 유례없는 기록
[OSEN=백종인 객원기자] ‘용규 놀이’의 끝판왕이 나타났다. 일본 프로야구(NPB) 히로시마 카프의 야노 마사야(25)라는 우투좌타 내야수다.
야노는 지난 22일 나고야 반테린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즈와 경기에서 22구까지 실랑이를 펼친 끝에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이는 종전 ‘19구 승부’을 넘어서는 NPB 최고 기록이다.
문제의 장면은 1-2로 뒤지던 6회 초에 나왔다. 주니치의 선발 와쿠이 히데아키(우완)는 그때까지 안타 3개만 허용하며, 1실점으로 호투하고 있었다.
1사 후 주자 없는 상황에서 2번 야노의 세 번째 타석이다. 앞서 두 차례는 희생번트(1회)와 삼진(3회)으로 물러났다. 이번에도 투수가 압도한다. 초구 스트라이크, 2구째는 파울이다. 볼 카운트 0-2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다. 그런데 너무 삼진을 의식한 것 같다. 몸쪽에 붙이는 공이 조금씩 빗나가기 시작한다. 볼-파울-볼. 그러다 보니 카운트가 공평해진다. 2-2가 됐다.
여기서부터다. 필사적인 버티기가 펼쳐진다. 7개 연속 파울로 생명이 연장된다. 그리고 13구째는 또다시 볼이다. 이제서야 풀 카운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야노의 커트 신공이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몸쪽, 바깥쪽 가릴 것 없다. 스윙은 빠른 볼과 변화구의 중간 타이밍으로 출발한다. 그러다 보니 조금 늦어도 투구는 배트에 걸린다. 덕분에 3루 쪽 관중석은 횡재한다. 파울 타구 대부분이 이쪽으로 넘어간다.
풀 카운트에서 다시 8구 연속 파울. 와중에 20구째가 아슬아슬했다. 배트를 살짝 스친 공이 포수 미트에 걸렸다. 그런데 포구가 안 되면서 땅에 떨어졌다. 삼진 직전에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22구째(148㎞ 직구)는 너무 안쪽으로 붙었다. 구심이 외면하면서 볼넷이 된다. 이 타석에 걸린 시간만 11분 12초였다.
원정팀 응원석에서는 환호가 터진다. 반면 홈 관중들이 탄식을 내뱉는다. 벤치는 서둘러 타임을 부른다. 징글징글한 승부에 지친 투수에게 쉴 틈을 줘야 한다.
왜 아니겠나. 선발 와쿠이는 1986년생이다. 만으로 따져도 올해 38세의 적지 않은 나이다. 야노 타석 전까지만 해도 투구수 75개로 괜찮은 페이스였다. 그런데 단번에 97개가 됐다. 어느덧 한계에 가까워진 셈이다.
물론 기분도 언짢다. 짜증 섞인 견제구가 1루로 날아든다. 이게 빠져 악송구가 됐다. 2사 3루의 동점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결국 6회를 끝으로 마운드를 넘겨줬다. 다행인 것은 승리(3승 5패)를 지켰다는 점이다. 6이닝 1실점, 투구수는 106개였다.
이날 야노의 타석은 일본 신기록으로 남게 된다. 이전까지는 19구가 최고였다. 2013년의 쓰루오카 가즈나리 등 3명의 선수가 기록한 바 있다.
한 타석 22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MLB에서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루크 애플링이 28구까지 승부를 펼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설적인 강속구 투수 밥 펠러가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투구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8년 이후는 21개가 가장 많은 기록이다. 2018년 브랜든 벨트(샌프란시스코)가 하이메 바리아(LAA)를 1회부터 지치게 만들었다.
이 방면의 장인 이용규도 20개가 최고다. KIA 타이거즈 소속이던 2010년 8월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박준수(박승민으로 개명, 현재 한화 코치)를 질리게 만들었다. 결과는 볼넷이었다.
‘용규놀이’는 이후에도 몇 차례 나왔다. 2022년에는 이승현(삼성)에게 19개를 던지게 만들었다(우익수 플라이). 또 한화 시절이던 2015년에는 양현종(KIA)과 17구 승부를 펼쳤다. 2루 땅볼로 끝났다.
기록의 주인공 야노는 내야 전체(2루수, 3루수, 유격수)를 커버하는 유틸리티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야까지 본다. 멀리 던지기 130미터를 기록한 강견이다. 50미터 달리기는 5.9초를 끊는다. 입단 4년 차로 올해부터 풀타임으로 뛴다. 128게임에서 0.251-0.315-0.327(타출장)을 기록 중이다.
‘용규놀이’의 창시자와 비슷한 점도 많다. 우투좌타에 체형도 닮았다. 171cm에 71kg으로 원조(170cm, 74kg) 못지않게 날렵하다. 게다가 수염도 기른다. 코와 턱을 강조하며, 강렬한 인상을 추구한다.
공교로운 사실도 있다. 각각 20구, 22구 승부를 기록한 것이 25세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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