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장차관 오니까 '기분 나쁘다'며 공항 해단식 즉석 취소한 이기흥
지난 8월 13일 파리하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 해단식이 대한체육회에 의해 일방적으로 취소됐던 사건의 전말이 국회에서 밝혀졌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장미란 제2차관을 해단식에 오지 말라고 했다가, 당일 장차관이 참석하러 공항에 온 것을 비행기에 내린 직후 확인하고 갑자기 취소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24일 열렸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체육계 현안 질의에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체육회가 취소했던 인천공항 해단식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 의해 취소된 과정을 따져 물었다.
김 의원은 "해단식을 위한 준비가 다 돼 있던 그레이트홀과 입국 게이트는 80미터 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 거리가 멀다고 게이트 앞에서 약식 해단식을 하고 선수들을 해산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김 의원은 "(장애가 있는)패럴림픽 선수단도 같은 장소에서 문제없이 해단식을 하고 헤어졌는데 운동만 하는 국가대표 선수단이 80미터가 힘들다고 게이트 앞에서 바로 해산시키는 게 맞느냐"고 했다.
이어 김 의원은 문체위 회의실 스크린을 통해 당일 해단식 준비과정에서 유인촌 장관 축사가 빠졌던 식순에서 장관 축사가 포함된 것으로 바뀐 화면을 보여주면서 "파리올림픽 기간에 현지에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과 장미란 차관이 해단식에 온다고 하니까 '장차관 오면 무슨일 당할지 난 책임 못 진다'고 문체부 체육협력관에게 협박성 발언을 하고 '장차관 오면 인사조치 하겠다'고 체육회 담당 직원에게 폭언을 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부인했지만 김 의원이 해당 발언이 있었단 점을 확인하기 위해 배석해 있던 문체부 체육협력관에게 직접 묻자 체육협력관은 "(이 회장이 발언)하셨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장관이 해단식에 온다고 (체육회 직원을)인사조치까지 한다고 협박하는 건 막말이 아니냐"며 "이렇게 일방적으로 독단적으로 하니까 '체육계 황제'란 얘기가 나오는 거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어 "해단식 예산만 2200만원이고 실제로 하지도 않은 해단식 비용 중 1600만원을 대한체육회가 업체에 지불했는데 국민세금으로 내는 게 맞느냐. 독단적으로 취소한 이 회장 책임인데 자비로 내야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김 의원에게 자비로 해단식 비용을 내라는 말을 들은 직후 이 회장은 말문이 막힌 듯 약 5초간 답변을 못하다가 "거기에 그렇게 준비하라고 한 건 아니다"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이에 김 의원은 "선수들이 금의환향하는 자리를 꿈꾸고 귀국했을텐데 해단식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국민들도 보고싶어 했을텐데 개인 감정으로 독단적으로 취소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기다리던 국민과 취재를 위해 나와 있던 언론에는 미안하지만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앞서 파리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수준 성과를 낸 국가대표 선수단은 귀국길에 미리 준비됐던 해단식을 대한체육회의 일방적 취소로 참석하지 못했다. 먼저 귀국해 있던 양궁 김우진, 유도 허미미, 펜싱 구본길 선수 등도 해단식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에 나와 대기했지만 그대로 돌아가야 했다.
대한체육회는 당시 입국 게이트 앞에서의 약식 해단식이 관례였다며 사실상 거짓 해명을 한 바 있다. 게다가 해단식 참석을 위해 공항을 찾은 유인촌 장관과 장미란 차관을 옆에 세워 둔채 이기흥 회장이 해단식을 위해 미리 준비한 인사말만 발표하고 태극기를 흔든 뒤 바로 선수단을 해신시킨 바 있다.
문체부 관계자에 따르면 파리 현지에서 이기흥 회장이 문체부 측에 장차관이 해단식에 오지 말라는 얘길 직접 전달했으나, 문체부는 '상식을 벗어난 요구'라고 판단하고 장차관이 당일 해단식 참석을 위해 공항에 나가 있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의 행사공간인 그레이트홀에 체육회 직원들에 의해 무대와 의자 등 해단식을 위한 준비가 모두 돼 있었고 취재진도 대기하고 있었지만, 이기흥 회장이 비행기에서 내린 뒤 면세보안구역에서 짐을 찾던 상황에서 장차관이 해단식 참석을 위해 와 있단 소식을 듣고 급하게 해단식을 즉석에서 취소했다고 전해진다.
당일 입국장에는 수백 명의 팬들과 취재진, 각 종목 단체 관계자들이 해단식을 위해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유인촌 장관과 장미란 차관은 그레이트홀에서 해단식을 위해 대기하다가 조금 떨어진 입국 게이트 앞에서 선수단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게이트가 열린 뒤 이기흥 회장이 준비한 인사말을 하고 만세를 외친 뒤 대한체육회 임원들이 둘러서서 박수를 치는 약식 해단식을 한 뒤 그레이트홀로 이동하지 않고 선수단을 일방적으로 해산시켜버렸다. 당시 대한체육회는 갑작스러운 해단식 취소에 대해 선수들이 피곤해 해서 해단식을 하지 않기로 하고 바로 해산시켰다고 변명한 바 있다.
유인촌 장관과 장미란 차관은 급하게 공항을 떠나 버린 대한체육회 임원들과 선수들 외에 남아 있던 선수단과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해단식을 대신해야 했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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