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문화도 통역이 되나요

2024. 9. 25. 07: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에 여러 변화를 가져온다.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통역가, 번역가 역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인공지능 번역기는 입력한 언어를 고스란히 다른 언어로 변경하는 기능은 출중하지만, 두 언어권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캐치해 설명해주는 기능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영수증 발급해 오세요' 라는 말을 전달할 때는 이러한 양국의 문화 차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금전적 문제를 예방하는 것 또한 통역가의 업무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소윤 통번역가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에 여러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달은 미래의 직업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된다.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통역가, 번역가 역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에 가더라도 번역 어플을 사용하면 현지인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기에 무난하게 해외여행을 즐기고 올 수 있고, 무슨 언어인지도 모를 외국어로 된 활자가 있더라도 사진 스캔 몇 초면 자동으로 나에게 가장 편한 언어로 번역을 해 준다. 아직은 인공지능 번역의 수준이 100% 완벽하지는 않아 중요한 비즈니스 통역이나 문서 번역은 전문 통역가, 번역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하다 보면 전문 통역, 전문 번역도 완전히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통번역가 입장에서 보아도 인공지능 번역기의 성능은 예상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빠른 미래에 통번역가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인공지능 번역기는 입력한 언어를 고스란히 다른 언어로 변경하는 기능은 출중하지만, 두 언어권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캐치해 설명해주는 기능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통역, 번역 업무를 수행해다 보면 언어 그 자체의 전달을 뛰어넘어 양국의 문화적 차이를 해석하고, 상대방의 문화를 경험한 적 없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상황이 늘 발생한다.

e스포츠 한일전 경기에서 한국인 선수팀을 도와 통역을 담당한 적이 있다. 결승전을 앞두고 한국인 선수들의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경기에 임하기 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모든 선수들이 똑같이 대답했다. "꼭 대한민국이 일본을 이기겠습니다!" 한국어로 들었을 때는 전혀 위화감이 없는 이 말을 고스란히 일본어로 바꾸어 전달하면서 내 입으로 내뱉는 순간, 뭔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자리에 있던 일본인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일본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 중 하나는 '평화'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고, 집단의 분위기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 개개인의 생각과 감정보다 더 중요시될 때가 많다. 이런 일본 문화 속에서 상대방을 꺾고 내가 이기겠다는 욕심을 입밖으로 내뱉는 것은 매우 낯선 상황이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의 웃음에 어리둥절해하는 한국인 선수들을 위해 나는 이런 문화적 차이를 설명해 줘야 했다.

웃음으로 마무리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칫하면 양국 간의 문화적 오해가 금전적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본은 아날로그 서류를 중요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아직도 중요한 서류에는 인감도장을 찍는 문화가 남아 있다. 이러한 문화 때문인지, 일본에는 영수증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계산 후 자동으로 기계에서 출력되는 영수증이고, 또 하나는 도장이 찍힌 증빙용 영수증이다. 일본 현지에서는 전자를 '레시트(receipt)'라고 부르고, 후자를 영수증(領收書)이라고 부른다. 레시트는 개인이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며, 회사에 증빙 서류로 제출하기 위해서는 도장이 찍힌 영수증(領收書)을 별도로 요청해 발급받아야 한다. 한국 문화를 모르는 일본인도, 일본 문화를 모르는 한국인도, 양국 사이에 이러한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영수증 발급해 오세요' 라는 말을 전달할 때는 이러한 양국의 문화 차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금전적 문제를 예방하는 것 또한 통역가의 업무이다. 강소윤 통번역가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