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우리의 대들보

2024. 9.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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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요즘 매스컴은 세대를 베이비붐, XY, MZ로 나눈다. 베이비붐세대를 시작으로 Y세대 초반인 밀레니엄세대까지의 장남은 부모로부터 '너는 우리 집안의 대들보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대들보는 우리가 익숙히 듣거나 들리는 말이 아니기에 MZ는 대들보라고 불린 이유를 모를 가능성이 크다. 왜 수많은 말 중 대들보라는 말을 쓰게 됐을까. 장남은 자녀들 중 가장 맏이기에 '대'라는 키워드를 쓰는 것 자체는 이해하기 쉬워도 '들보'라고 불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에서는 들보를 빔(Beam)이라고 하며 대들보를 거더(Girder)라고 한다. 들보는 지붕의 무게를 기둥 사이에서 결쳐져 지탱하는 건축 부재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이 대들보다. 요즘은 보로 통칭해 부른다. 보와 기둥은 건축의 뼈대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구조 요소다.

지붕의 무게는 대들보를 타고 내려와 기둥을 통해 지반으로 전달된다. 결국 대들보가 지붕 전체의 하중에 견디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알게 되면 예전에 장남을 대들보라고 추켜세운 어른들의 속내도 짐작할 수 있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보와 기둥을 사용해 공간을 만들며 어떤 재료가 적합한지에 고민해 왔다. 주변에 흔했던 돌은 압축에는 강해 기둥의 재료로는 훌륭하지만 수평으로 걸쳐져 휘어져 저항하는 보로 사용하기에는 휨에 약하다. 보는 휨 현상으로 인해 동시에 인장과 압축에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보와 기둥으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것이 '스톤헨지'다. 신석기시대의 이 구조물은 죽은 자를 위한 종교적 공간이라 알려져 있다. 돌기둥 위에 돌로 만든 보가 얹혀 있는 전형적인 가구식 구조이다. 또 다른 가구식 구조로는 서양 건축의 효시인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약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를 위해 건축된 이 신전은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 건축물이다. 그렇지만 현대건축의 관점으로 보면 두껍고 짧은 돌로 만든 보는 지탱할 기둥이 많아야 하며, 공간효율이 떨어진다.

스톤헨지나 파르테논신전 모두 종교적 공간이며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신화와 어우러져 장엄함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는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당시의 돌의 재료적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적 혁신이 등장했다. 아치 축조 기술이 그것이다. 아치는 인장을 배제하고 오로지 돌의 압축 강도를 최대한 활용해, 양쪽 끝만으로 하중을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아치는 돌기둥과 보로 말미암아 촘촘해진 기둥 간격으로 좁아진 공간의 기둥을 없애 공간을 확장시킨 것이다.

아치 기술은 로마제국에서 특히 발전했다. 로마는 240개의 아치를 사용한 콜로세움과 아치를 180도 회전시켜 거대한 43.3m 직경의 돔 지붕을 가진 판테온신전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다. 또한 화산지대인 로마의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수도교를 건설했다. 연장 800㎞에 달하는 수도교의 핵심기술이 아치구조이다. 가장 유명한 수도교로는 스페인 세고비아 수도교가 있다. 세고비아 수도교는 2만 여개의 화강암을 120개의 기둥과 75개의 1층 아치, 44개의 2층 아치로 건설해 지금까지 2000년을 버티고 있다. 화강암 사이는 접착을 위한 어떤 재료도 사용하지 않고 지진, 바람, 온도변화 등과 같은 외력이 작용할 때 화강암 사이의 공간이 화강암의 움직임을 흡수하는 기술을 적용했다. 이 기술은 불국사의 석축과 기둥을 주춧돌에 세워 올릴 때 기둥과 주춧돌이 서로 만나는 상대면의 요철에 맞게 가공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그랭이 공법'과 유사하다.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는 아치를 무지개를 의미하는 '홍예'라고 부르며, 광화문과 선암사의 승선교 등과 같은 건축물에 적용했다. 아치의 회전으로 만들어지는 돔 구조는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건축은 보와 기둥으로 시작해 아치와 돔으로 발전해 왔으며, 대들보라는 단어도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해 왔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오늘날 MZ세대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대들보라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정말 보물같은 인재들이지 아닌가.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입시가 진행 중이다. 얼마 전 마감한 우리대학 수시모집에서 건축전공이 최고 경쟁률을 찍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건축전공 지원자들이 우리의 건축을 이끌 대들보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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