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청중비용' 외면하다 길 잃은 의료개혁
前국가위기관리학회장
지난 2월 총선 직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필수·지역 의료체계 구축 △공정한 보상체계 정립 등을 기치로 야심차게 추진한 의료개혁이 의사집단의 거센 반발과 거부로 돈좌(頓挫)되는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모름지기 시대를 막론하고 개혁에 대한 저항은 존재했기에 이번 의사단체 저항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인간이란 부모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빼앗긴 내 돈은 못 잊는 속성 때문이다.
의료 대란 사태는 정부의 개혁 추진 수순과 타이밍 부적절, 공론화 과정 미흡 그리고 의료개혁 관련 정보와 이를 투명하게 전달하는 시스템 부재 등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본다. 아울러 고도의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의사집단의 이기주의와 거대 야당의 정략적 ‘불구경’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의·정 갈등으로 얻은 것은 없는데 국민들은 응급실 뺑뺑이로 내몰리고, K-의료 체계 약화 홍보로 국가경쟁력만 저하시킨 꼴이다. 의료개혁의 본말전도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와 여야가 여·야·의·정(與·野·醫·政)협의체를 통해 타결을 모색하기로 합의했으나 자중지란에 빠진 의사단체 불참으로 개문발차도 못하고 있다.
정치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 사회적 희소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위해 협의·타협하는 일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는 유연성과 전략적 사고는 필수이며 지지 여론에 따라 국가정책 향배가 결정되는 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일방적인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 행태에서 국가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필수 고려사항인 청중 비용(Audience Costs)을 도외시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청중비용은 외부와의 갈등에 직면한 국가지도자가 국내 여론을 무시한 대응, 회피 또는 굴복하여 국가위상을 고양 또는 손상시킬 경우 국민이 선거로 심판하는 것을 말한다(James D. Fearon).
여당의 4월 총선 완패와 국정 지지율 20%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국가 정책 수립·집행은 지지층의 결집·이탈과 국정 지지율 등락, 야당 정치공세 정도, 그리고 정권 재창출 성패 등에 영향을 주는 정치비용의 상수(constants)다.
아쉽게도 이런 징후가 대통령실과 관련부처 장·차관 언행에서 읽혀진다는 사실이다. 극단적 여소야대 정치구조 속에 야당의 협조 없이 국정추진이 불가능한 냉혹한 현실을 망각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아이러니 현상이 의사단체에서도 유사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예컨대 청중비용 도외시, 자기는 문제없다는 인식·행태, 강경일변도 리더십, 상대방을 자극하는 커뮤니케이션 등은 서로 빼닮아 의료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핵심 쟁점인 의대정원에 대해 의사단체는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증원이 산출 근거 부실, 협의 없는 일방적 정책수립과 졸속 추진, 의대교육 질 저하 등을 들어 반대하며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의료 환경변화와 괴리된 의사단체의 집단이기주의적 행동은 그간 역대 정부의 의료개혁을 좌초시킨 행태 반복으로 국민의 동의와 공감은 커녕 반이성적 비상식적 행태로 비난받기 십상이다. 의료는 공공재가 아니라고 강변하기 이전에 전문가 집단으로 사회적 책무를 우선해야 한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미중 경쟁·대립 속에 2개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반도체·AI·배터리 등 첨단기술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문 닫고 앉아 갑론을박 놀이 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여·야·의·정 모두 자기 존재감을 충분히 보여준 만큼 현 난국을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냉철히 성찰하고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 비난은 받아도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탄성의 한계를 넘기 전에 치킨 게임을 멈추는 게 답이다. 과유(過猶)면 불급(不及)이다.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엇박자 내고 뭉그적대다 더 큰 국가적 기회비용을 치르는 우를 더 이상 지속하면 안된다.
김관용 (kky144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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