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도체 공룡의 몰락이 주는 교훈

이한듬 기자 2024. 9. 2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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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야한다. 시대의 흐름을 미리 읽고 선제대응에 성공하지 못하면 금세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고 도태하기 마련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전략적 판단은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한때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군림했던 미국 인텔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오판해 변화에 적기 대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설 자리를 잃게 됐다.

1968년 설립된 인텔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전세계 개인용컴퓨터(PC)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장악했던 곳이다. 메모리반도체인 D램을 최초로 개발한 곳이기도 하다. 반도체 시장의 역사를 쓰며 영원한 1위로 군림할 것 같았던 인텔은 잇단 전략적 실패로 스스로 영광을 좀먹기 시작했다.

위기의 시작은 모바일 반도체 수요를 간과한 것에서 부터다. '아이폰'으로 피처폰 시대를 끝내고 스마트폰 대중화를 이끈 애플은 인텔과 손을 잡길 원했다. 하지만 인텔은 애플의 요구를 거절했다. PC 시대가 저물고 모바일, 태블릿 등으로 폼팩터가 진화하면서 인텔의 위기는 가속화됐다.

인텔의 CPU는 AMD에 뒤처지는 형국이고 메모리칩 시장에선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에서도 철수했다가 대만 TSMC의 성공을 눈으로만 뒤쫓는 신세가 됐다. 2021년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하며 250억달러(33조원)를 쏟아부었지만 올 상반기까지 누적적자가 53억달러(7조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파운드리 사업부를 재매각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AI 적기대응에도 실패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필요로하는 AI 칩은 엔비디아에 밀려 이렇다할 결과물도 내놓지 못하는 형국이다.

인텔의 몰락은 지난해 상장폐지된 일본 반도체 기업 도시바를 떠올리게 한다. 도시바는 1980년대 전세계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던 기업이다. 미국이 실패한 D램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며 세계 정상을 다퉜다.

하지만 도시바는 새로운 기술 개발보다는 옛 기술 방식을 고집했다. PC 대중화 흐름도 도외시한채 고장나지 않는 D램을 모토로 값비싼 고성능 D램 제조에만 매달렸다.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를 개발하고도 정작 투자는 망설였다. 도시바는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에 메모리 시장 왕좌를 내주고 추락했다. 도시바는 재기에 성공하지 못한채 결국 지난해 12월20일 상장폐지됐다. 1949년 도쿄 증시에 상장된 지 74년 만이다.

잇단 반도체 공룡기업의 실패는 현재 세계 메모리 시장을 압도하고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교훈을 준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든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세계 D램 시장의 45%를 점유하며 30여년째 1위를 수성 중인 삼성전자도 최근 이 같은 교훈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AI 시대 핵심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응에 실기해 SK하이닉스에 선두를 내줬기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이례적으로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반도체 수장을 교체한뒤 맹추격에 나서고 있다. AI 시장 경쟁 2라운드는 반드시 승리를 쟁취한다는 목표이다. 최근 HBM 물량 일부 공급을 시작하며 점차 고객사 확대를 모색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독주체제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본다.

물론 같은 한국 기업인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선점하고 삼성전자가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AI향 반도체 초기 시장 생태계를 한국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해선 안된다. 미국 마이크론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반도체 추격에 고삐를 죄고 있고 중국 YMTC 등 후발주자들도 한국과 미국이 장악한 기존 메모리 시장 재편을 위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어서다. 영원한 1등은 없다. 안도하고 자만하는 순간 언제든 자리가 뒤바뀔수 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선 기업의 자체적인 혁신 노력 외에 정부의 지원 또한 중요하다. 정부는 잇단 세제혜택 등을 통해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바로 혜택을 줄 수 있는 보조금 지급에는 소극적이다. 미국·중국·EU(유럽연합) 등 주요국이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 혜택을 주는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반도체기업이 또 다른 인텔과 도시바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경쟁에서 밀려난 이후 뒤늦게 절치부심하기보단 선제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 한국 반도체가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기반을 마련하길 바란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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