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라보콘의 ‘콘’ 바뀌었는데, 왜 공정위가 ‘칼’ 뽑았나

박지영 기자 2024. 9. 2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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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찾은 세종시 소정면에 위치한 과자 제품 제조업체 동산산업. 공장 한쪽에는 지금까지 출시됐던 부라보콘 아이스크림의 종이 포장지들이 진열돼 있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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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 부라보콘이 요즘 소비자들은 눈치채지는 못하지만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겉모습과 맛은 다르지 않지만 부라보콘을 감싸는 종이 포장지와 아이스크림을 받쳐주는 콘 제조업자가 모두 바뀌었다. 빙그레는 지난 2020년 해태제과식품에서 물적분할된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한 뒤 납품선을 잇달아 변경하고 있다. 부라보콘의 ‘보이지 않는 변화’는 왜 시작됐을까. 또 그 이유가 무엇이길래 공정거래위원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까.

한순간에 중단된 수십 년 거래

23일 오전 세종시 소정면에 있는 동산산업. 아이스크림 제품에 들어가는 과자를 만드는 전문 제조업체인 이곳에서 부라보콘 콘 과자를 만들던 공간은 불이 꺼진 채 휑했다. 1985년부터 콘 과자를 생산했던 이곳은 지난해 11월 무렵 빙그레의 자회사인 해태아이스크림(이하 빙그레)으로부터 주문이 끊겼고, 이후 기계가 작동을 멈췄다.

이 회사 대표 ㄱ(63)씨는 “40년 동안 거래를 해왔는데 사전에 이야기도 없이 갑자기 부라보콘 물량이 끊겨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오로지 부라보콘만을 위해 들여놨던 기계들과 부자재들이 그대로인데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부라보콘 콘 과자 매출은 그동안 동산산업의 전체 매출액 가운데 약 20% 정도였다. ㄱ씨는 “외국인 산업연수생 등 기존 계약 관계가 있어서 쉽게 인력을 감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16년 동안 일한 직원 ㄴ씨는 “직원들 사이에서 일거리가 많이 줄어 불안하고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동산산업은 그나마 주문 물량이 늦게 끊겼다. 해태아이스크림이 빙그레에 인수되기 전부터 거래를 했던 다른 협력업체들도 지난해 초 무렵 빙그레로부터 거래 종료를 통보받았다. 업체명을 밝히길 꺼린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갑자기 거래 중단을 통보받아 공장 문을 닫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현재 시설 유지 정도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찾은 세종시 소정면에 위치한 과자 제품 제조업체 동산산업. 그동안 부라보콘 과자를 생산하던 공간은 지난 1년 가까이 불이 꺼진 채 유휴시설로 남아있다. 박지영 기자

콘 아이스크림마다 다른 각도

콘 아이스크림은 제품마다 맛이 다른 것처럼 크기도 다 제각각이다. 부라보콘에 들어가는 콘 과자는 다른 아이스크림콘에는 쓸 수 없단 얘기다. 예컨대 부라보콘과 끌레도르를 비교해보면, 부라보콘은 끌레도르에 비해 전체 콘 길이가 짧고, 맨 위 아이스크림 원 모양이 큰 뭉뚝한 모양이다. 이런 까닭에 부라보콘 과자 생산을 위해 맞춤으로 설계된 자동화 설비들은 다른 콘 아이스크림 과자 제조에 활용할 수 없다.

동산산업은 빙그레와의 거래 종료로 해당 매출이 고스란히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부라보콘 전용 기계가 “처치 곤란”이어서 막막하다. 2003년 동산산업은 해태제과식품 요구(당시 해태아이스크림은 해태제과식품의 사업부)로 해당 기계를 약 24억원 들여 독일에서 수입했다. 동산산업이 소유한 전체 4대의 콘 과자 기계 중 2대가 부라보콘 전용 기계다. 해당 기계는 1대당 1시간에 8천개의 부라보콘과자를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 설비다. 그동안 동산산업은 전체 부라보콘 생산량의 70∼75% 정도를 도맡았다.

동산산업은 지난 6월 해태아이스크림을 상대로 지금까지 본사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약 7억4천만원의 자동화 설비투자에 대한 감가상각비 지급 등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 당시 해태제과식품과 물품공급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동산산업이 우선 자체적으로 설비투자하면 이후 투자금 보전하기 위해 해태제과식품이 콘 과자 1개당 3원을 지급하기로 했으며 이는 빙그레가 인수한 뒤에도 유효하다는 게 동산산업 쪽 주장이다.

지난 23일 찾은 세종시 소정면에 위치한 과자 제품 제조업체 동산산업. 그동안 부라보콘 과자를 생산하던 공간은 지난 1년 가까이 불이 꺼진 채 유휴시설로 남아있다. 박지영 기자

납품가 조정 갈등

빙그레의 거래선 변경에 앞서 납품가 조정을 놓고 빙그레와 동산산업 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쪽은 이 부분에 대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고 있다. 빙그레 쪽은 한겨레에 “지난해 3월 동산산업 쪽의 일방적인 단가 인상 요청이 있었다. 해태아이스크림은 타 업체와의 단가 차이가 커 물량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동산산업 쪽에 전달했다”며 “하지만 동산산업 쪽은 인상안이 조정되지 않으면 납품을 중단할 수 있다고 해서 해태아이스크림은 단가 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동산산업 쪽은 “거래가 중단되기 전 빙그레 쪽으로부터 ‘납품 단가를 인하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 없다”며 “부라보콘 전용 기계를 어디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차라리 빙그레 쪽이 ‘납품 단가를 더 내리라’고 요구했으면 어떻게든 거래를 이어가고자 했을 것”이라고 맞섰다. 또 애초 단가 인상 요구도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것이어서 무리한 수준의 요구안은 아니었다고 동산산업 쪽은 강조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장기 납품업체와 원청업체가 고물가 시대를 맞아 빈발하는 납품가 조정의 갈등으로만 읽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사건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다.

지난 23일 찾은 세종시 소정면에 위치한 과자 제품 제조업체 동산산업. 그동안 부라보콘 과자를 생산하던 공간은 지난 1년 가까이 불이 꺼진 채 유휴시설로 남아있다. 이날 공장에서는 다른 브랜드의 콘아이스크림 생산을 위해 전체 4대 콘 과자 기계 중 1대만 돌아가고 있었다. 박지영 기자

부의 이전 때를 잡은 빙그레 ‘제때’

수십 년 동안 협력업체가 생산하던 물량은 어디로 갔을까. 부라보콘 콘 과자의 물량 대부분은 빙그레의 물류 계열사인 ‘제때’로 넘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제때는 지난해 10월 콘 과자 제조업체인 동광실업을 인수해 제과 사업을 시작했다. 콘 과자, 종이 포장 등 협력업체의 경쟁업체와 각종 설비를 차례대로 인수한 뒤 기존 협력업체와의 거래를 끊고 부라보콘에 들어가는 과자부터 종이 포장까지 사업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제때 제과사업부 천안공장(구 동광실업) 관계자는 “원래 동광실업은 빙그레 쪽에 납품하던 콘 과자만 만들고 있었는데, 제때가 동광실업을 인수하면서 부라보콘 콘 과자까지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동광실업은 제때에 인수된 뒤 폐업됐다.

제때는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삼남매인 김동환 사장과 김동만 전무, 김정화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총수일가 3세 회사다. 이들이 2006년 인수한 뒤 사명을 케이엔엘물류에서 제때로 바꿨다. 제때는 빙그레 지분 1.99%를 갖고 있는 김호연 회장의 특수관계인이기도 하다.

빙그레 및 제때 지분구조

물류업이 핵심 사업인 제때는 내부거래를 통해 꾸준히 성장해왔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4017억원으로 이 중 1005억원이 빙그레(해태아이스크림 포함)에서 나왔다. 내부거래 비중이 25%에 이르는 셈이다. 빙그레 관련 매출은 지난 2019년(549억원) 이후 연평균 16.3% 증가했다. 앞으로 부라보콘의 콘 과자와 포장지도 직접 생산하기로 한 만큼 해당 빙그레 관련 매출은 더 불어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동산산업과의 거래 중단과 제때의 일감 인수 과정은 과거 재벌에서 만연한 일감 몰아주기와 이를 통한 소유권 승계를 위한 정지 작업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빙그레 김 회장의 삼남매는 현재 빙그레의 직접 지분은 없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제때의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이는 지분 승계를 위한 종잣돈이 될 수 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전형적인 지분 승계 작업으로 보인다”며 “수치상 내부거래 비중이 낮아진 걸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직접 계약을 맺지 않는 경우도 있어 내부거래 비중이 늘어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부라보콘 사건’을 최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빙그레(해태아이스크림)와 제때 간 거래가 부당내부거래에 해당하는지, 거래선 변경과정에서 하도급법 위반 가능성은 없는지 살펴본다는 뜻이다.

지난 23일 찾은 세종시 소정면에 위치한 과자 제품 제조업체 동산산업. 그동안 부라보콘 과자를 생산하던 공간은 지난 1년 가까이 불이 꺼진 채 유휴시설로 남아있다. 이날 공장에서는 다른 브랜드의 콘아이스크림 생산을 위해 전체 4대 콘 과자 기계 중 1대만 돌아가고 있었다. 박지영 기자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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