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한국시리즈 직행시킨 KIA 이범호 감독 “감독 권위 버리고 선수들과 소통… 우승 길 찾을 것”

임보미 기자 2024. 9. 2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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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도 못해도 내가 출전시킨 것… 내 문제라 생각하니 화낼 일 없어”
선수-코치-감독으로 13년 KIA맨… ‘선수 마음 돌보기’를 1순위로 둬
팬들 ‘이범호 응원가’ 부르며 호응
이범호 KIA 감독이 1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한 뒤 열린 기념행사에서 우승 티셔츠와 모자 차림으로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KIA는 17일 프로야구 정규시즌 7경기를 남기고 일찌감치 1위를 확정해 한국시리즈(KS)로 직행했다. 19일 두산과의 잠실 방문경기를 앞두고 만난 이범호 KIA 감독(43)은 축하 인사를 건네자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해야죠. 그래야 ‘축하’죠”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남은 경기에서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시리즈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일지도 계산해야 하니 쉴 시간이 없다”고 했다. KIA는 전신인 해태 시절을 포함해 그동안 KS에 11번 올라 모두 우승했다. 이 감독은 전임 감독의 비위로 올 시즌 개막을 앞둔 스프링캠프 훈련 도중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았는데도 KIA를 7년 만에 KS 무대로 이끌었다. 스프링캠프 훈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팀의 1군 타격코치였다. KIA 팬들은 요즘 경기 후반부만 되면 이 감독의 KIA 선수 시절 응원가를 부른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팬들이 감독을 위한 응원가를 부르는 팀은 KIA가 유일하다.
이범호 KIA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가급적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다.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 감독으로 데뷔해 선수 마음 돌보기를 1순위 과제로 삼은 그는 선수들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며 팀을 7년 만에 정규시즌 1위로 이끌었다. 뉴시스
이 감독은 ‘선수 마음 돌보기’를 올 시즌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했다. 그는 “일단 선수 마음이 다치지 않아야 나와 선수 간에 신뢰가 쌓인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에게 ‘왜 못했어’라고 하는 건 선수에게 상처가 된다”며 “어쨌든 내가 출전시킨 선수가 아닌가. 잘하면 선수가 잘 대처해 준 것이고 못하면 그 상황에 출전시킨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화를 낼 일도 많이 없어지더라”라고 했다.

물론 이 감독에게도 마음 파악이 어려운 선수는 분명히 있다. 이 감독은 “(최고참인 최)형우나 (나)성범이 같은 애들은 몸이 좀 안 좋을 때 ‘하루 정도 빼줄게’ 해도 ‘괜찮습니다’라고 한다. 진짜 괜찮아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책임감 때문인 건지까지는 파악이 안 된다. 이런 선수들은 제가 ‘하루 쉬어’ 하고 딱 빼줘야만 쉰다”고 했다.

이 감독은 “팀(KIA)에 오래 있었고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부터 있던 친구들도 많다 보니 성격을 다 안다. 가만히 놔둬도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서 잘하는 선수가 있고, 자극하고 압박하는 말을 계속해야 잘하는 선수가 있다. 선수마다 그런 특징을 파악하려 했다”고 말했다. 2000년 한화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한 이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를 거쳐 2011년부터 2019년까지 KIA에서 뛰었다. 선수 은퇴 후엔 KIA에서 코치로 4년을 보냈다. KIA의 베테랑 선수들 대부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를 ‘형’이라 불렀다.

많은 감독이 소통을 강조하지만 시즌 내내 모든 선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령탑 1년 차에 누구보다 능숙하게 이 일을 해낸 이 감독은 “감독이라는 자리의 권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모든 게 끝난다. 선수가 먼저 오길 기다리면 시간만 길어진다”고 했다.

이 감독은 올 시즌 더그아웃에서 선글라스를 낄 일도 거의 없었다. 감독들은 그때그때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이 감독은 “나도 지칠 때는 표정이 굳긴 했다. 하지만 안경으로 가리고 싶진 않았다. 선수들도 내 표정을 보고 ‘감독이 화가 났네, 기분이 좋네’ 하거나 ‘저 정도면 화난 게 아니야’ 등도 알게 된다”며 “올 시즌엔 화를 낸 경기가 10경기도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선수들이 많이 이겨줬으니 화를 덜 냈겠지만…”이라며 웃었다.

올 시즌 KIA는 개막 이후 열흘만 빼고 시즌 내내 1위 자리를 지켰다. 이 감독은 “정규시즌 내내 선수들이 모두 고생했다. 하지만 앞으로 또 가야 할 길이 있으니 너무 흥이 나 있으면 안 된다. 아직도 (KS 우승까지) 가는 길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그 길을 딱 찾고 잘 간다면 ‘아, 참 즐거웠다’ 하는 기억을 갖고 선수들과 마무리 훈련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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