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저랑 같이 신문 읽으실래요] [17] 타인을 위한 목소리를 내려면
간밤에 뱀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정확하게는 뱀이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주세요!’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땀을 줄줄 흘리며 눈을 떴다. 식탁으로 가 물을 한 잔 마시고 해가 뜨기 전 까만 하늘로 가득 차 있는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신문을 펼쳤다. 오늘도 딥페이크에 관련된 기사가 있다. 딥페이크 사건을 며칠째 떠올리고 있다. 성인인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해도 충격적인데 학생들이 얼마나 놀라고 슬펐을지.
사건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것은 아마도 어른의 잘못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모든 어른에게 먼저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한 것 아닐까. 도대체 학생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면 이 범죄와 관련한 정책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조금 슬퍼진다.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피해자 관점에서 한 번만 생각해 봤다면 알 수 있는 일인데. 사건을 접한 뒤부터 학교에 성교육을 하고 계시는 강사님들과 통화를 하게 되면 꼭 말씀드렸다. “강사님, 수업 때 딥페이크 사건에 대해서도 다뤄주실 수 있나요. 이게 왜 범죄인지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다들 이미 준비했다며 꼭 잘 전하겠노라고 내게 말씀을 해주셨다. 그것도 모자라 나는 각종 모임에서 딥페이크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신문에 나온 조사 자료들을 토대로 이 사건의 심각성과 해결책에 관해 이야기 하기 바쁘다. 사람들은 내 말과는 상관없이 비장한 표정을 보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다.
나는 평소 사람들을 대할 때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은 아니다. 누군가의 의견에 따르는 것을 좋아한다. 의견을 내게 되면 보통 상황이 복잡해지니 그게 싫었다. 신문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그런 태도는 변함이 없었는데 읽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나도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거창할 필요는 없다. 정책을 바꾸거나 정당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소꿉친구와의 만남에서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도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내면 된다.
당신은 사회 문제에 관해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어느 쪽이 되었든 선택한 한 가지가 꼭 정답은 아닐 것이다. 다만 갑자기 뱀이 나오거나 머리에 무언가가 떨어진다면 우리는 타인을 향해 바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까. 목소리를 내기 위한 첫걸음은 그 사건을 매일매일 접하는 것이고 그것을 신문이 도와줄 것이다.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매일 읽어보자. 분명히 누군가를 만나서 비슷한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입을 열게 될 것이다. “딥페이크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저의 의견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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