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부부별성’ 찬성했다가 지지율 떨어진 고이즈미
일본의 새 총리가 될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를 이틀 앞두고 초반 돌풍의 주인공인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이 ‘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을 찬성했다가 몰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부부별성’에 반대인 다카이치 사나에(63) 경제안보담당상은 반면 보수층의 지지를 흡수해 막판 역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택적 부부별성’은 결혼할 때 아내 또는 남편이 상대방 성(姓)을 따를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일본 법은 결혼한 부부가 성을 하나로 통일하도록 강제하는데, 본인들이 싫다면 혼인 전 성씨를 유지해도 된다는 것이다.
24일 일본 언론과 자민당 내부 분석에 따르면 현재 유력 후보는 고이즈미·다카이치와 이시바 시게루(67) 전 간사장 등 3명이다. 자민당 총재의 결선 선거는 1차 투표의 1·2위가 올라가는데 고이즈미가 3위로 밀리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1차 투표는 국회의원과 당원·당우(자민당 후원단체 회원) 투표가 절반씩 반영된다.
공영방송 NHK의 판세 분석에 따르면 고이즈미는 국회의원 표에선 여전히 약 50명의 지지로, 이시바·다카이치(약 30명대)보다 우위다. 하지만 당원의 표심이 고이즈미를 떠나고 있다. 민영방송 닛테레가 당원 여론조사까지 포함해 시뮬레이션한 1차 투표 전망에선 이시바가 약 160표로 1위, 다카이치가 140여 표로 2위였다. 고이즈미는 약 110표에 그쳤다.
닛테레의 일본인 전체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적합한 인물’로, 1위는 고이즈미(24%)이고, 이시바(23%)와 다카이치(18%)였지만 자민당 당원·당우만 보면 이시바(25%)·다카이치(22%)·고이즈미(19%)의 순이었다. 자민당 당원들의 표심을 흔든 건, ‘선택적 부부별성’이다.
고이즈미는 이달 초 “총리가 되면 1년 내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일본 전체 여론은 이 제도에 우호적이다. 마이니치신문의 6월 조사에서 찬성 57%, 반대 22%였다. 문제는 자민당 지지층만 보면 찬성이 약 40%이며, 반대는 약 30%로 차이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고이즈미의 부부별성제 도입 계획에 대해 강경 보수층이 ‘가족은 모두 같은 성(姓)을 쓰는 일본 전통의 문화를 지키자’며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는 부부별성에 반대하는 한편, 총리가 되더라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할 의사를 밝혔다. 보수 성향 당원의 지지가 일제히 다카이치에게 쏠린 것이다. 이시바는 부부 별성의 취지에는 찬성한다면서도 ‘제도 도입 강행’에 대해선 고이즈미와 달리 명확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다른 후보들도 모두 피해갔는데 유독 고이즈미만 ‘부부별성제 1년 내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자민당의 한 의원은 “당원뿐만 아니라, 고이즈미에게 우호적이었던 젊은 의원 중에서도 ‘부부별성 반대’라는 입장으로, 지지 후보를 바꾸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부부별성의 지지를 철회할 수도 없는 고이즈미는 ‘애국심’이란 키워드를 입히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최근 가두연설에서 부부별성제에 대한 자신의 찬성 입장에 대해 “일본인의 삶에 선택지를 늘리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면 누군가 원하는 것을 존중하자”고 했다. 고이즈미는 유세장에서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했고, 올해 들어서야 생모를 만났던 본인의 경험을 사례를 들며 부부별성제 도입의 당위성을 호소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이 자민당 보수층에게 효과를 얻을 가능성은 낮은 게 현실이다. 마이니치신문은 “막판에 자민당 보수층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애국심 전략이 먹힐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여기에 43세로 정치 경험이 적은 게 약점인 고이즈미에게 막판 또 다른 악재도 불거졌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 23일 신임 대표로 노다 요시히코(67) 전 총리를 선출한 것이다. 일본은 국회에서 총리가 제1야당 대표와 일대일 토론을 벌여야 하는데, 노다 전 총리의 노련함을 젊은 고이즈미가 맞서지 못할 것이란 불안이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선택적 부부별성
현재 일본 법은 결혼하면 부부가 성(姓)씨를 둘 중 하나로 통일하도록 강제한다. 대부분의 경우엔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르는데,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는 결혼을 해도 본인이 싫다면 혼인 전의 성씨를 유지하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현 제도에선 이혼녀의 경우 미혼 때 쓰던 성으로 돌아가거나 싫어하는 전 남편의 성씨를 그대로 써야 한다. 따라서 주변에선 여성의 성씨만 보고도 이혼 여부 등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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