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마포대교에 나타난 김 여사
지지율 낮은 대통령 등 떠밀어 더 밀어내리는 역효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사진은 수백 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며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뇌리에 잊히기 힘든 잔상을 남긴다. 흰 셔츠에 바지 차림으로 마포대교에서 제복 입은 경찰들에게 지시 내리는 듯한 김 여사, 그러고는 사회봉사, 추석 영상에 등장한 뒤 2박 4일의 대통령 체코 순방에 동행했다. 추석을 전후해 공개된 김건희 여사 일정은 잘 하려고 나온 거겠지만 공식 행보를 재개한 시점도, 모양새도 적절치 못해 도리어 역효과를 냈다.
그동안 윤 대통령 부부는 ‘이미지 정치’에 성공적이질 못했다. 마포대교행에 대해 대통령실은 “자살 관련 행보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해왔다”며 진정성을 봐달라고 했다. 실제로 김 여사는 작년에도 자살 시도자 구조 경찰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처럼 부정적 반응을 야기하지도 않았다. 제복 입은 경찰을 만나는 자리에,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참석해 경청했다. 올해는 명품 백 수수 영상이 폭로되고 한동안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았다. 잘못을 직접 사과하지 않고, 윤 대통령이 몇 달 만에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사과했다.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가 나오고 공식 일정을 재개하자 거침없이 나타난 것처럼 비춰졌다.
‘원전 외교’를 내세운 체코 순방은 2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대통령 혼자 다녀왔다면 ‘일하는 대통령’의 ‘비즈니스 출장’으로 각인됐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해외 순방이 가장 많았던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부인 김윤옥 여사는 절반만 동행해 이런 잡음이 없었다. 윤 대통령은 부산 엑스포 유치 등을 위해 해외 순방이 잦았고 비용도 많이 썼다. 해외 순방마다 김 여사 손잡고 동행했다. 하지만 엑스포 유치 실패로 해외 순방의 성과가 의문시되면서 거부감이 높아졌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한 여당 후보 측 인사가 “대통령 부부가 손잡고 비행기 트랩 오를 때마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읍소하는 걸 들었다. 눈치 없이 그 장면을 되풀이했으니 부정적 이미지를 보탰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넘게 남았고 중요한 국정 과제는 쌓여있다. 하지만 국정은 뒷전인 채 정치판이 ‘기-승-전-김건희’가 되어간다. 10월 국감,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심 판결을 앞두고 김 여사를 둘러싼 기획성 폭로가 쏟아진다. ‘탄핵의 맛’을 본 야당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난 2년 반은 대선 연장전 같은 상황이었다. 이재명 리스크와 김건희 리스크가 드러난 2022년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다. 윤 대통령이 0.73%포인트 차로 신승했지만 야당과 좌파 진영은 심리적 불복 상태를 이어갔다. 이재명 방어를 위해 ‘검찰 독재’ ‘대통령 탄핵’ ‘계엄’ 같은 험악한 단어를 남발하면서 윤 대통령을 흔들고, 김 여사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여성 혐오를 부채질해 김 여사가 과도하게 악마화된 측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김 여사 스스로 경력 허위 기재와 표절 의혹, 주가 조작 의혹 등이 불거져 대선 전 사과하러 나왔을 때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던 말만 지켰어도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붕 뜬 마음에 아버지 고향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하고 선물 받은 ‘함정 몰카’ 영상이 뒤늦게 폭로된 작년 11월 이후라도 딱하다 싶은 ‘처분’을 자처했더라면 민심은 누그러졌을 것이다.
윤 대통령 성격상 부인 문제 언급을 기피해왔다. 그러다 보니 ‘김건희 여사가 권력 서열 1위’라는 둥 터무니 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9·10 마포대교 행보’는 그 루머를 기정사실화하는 이미지로 비쳐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이 아닌 영부인이 누리는 권력 떡고물은 사실 대통령이 제대로 기강 잡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이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인데 반지성주의 때문에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도 했다.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 체제를 갖추지만 제대로 작동하려면 법 이전의 규범이라는 연성 가드레일이 탄탄하게 떠받쳐야 한다. 대통령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로 자꾸 논란을 자초하는 부인에 좀더 엄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 여사 스스로도 “두렵고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던 3년 전 그 사과 발언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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