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中·獨은 통일을 후대로 떠넘기지 않았다

안용현 기자 2024. 9. 2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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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수교, 정상회담 때마다
‘대만은 중국 일부’ 꼭 적어
서독도 ‘하나의 독일 민족’
“임종석에 기대한다” 했던 北
지난 1989년 12월 임종석 당시 전대협의장이 임수경씨를 북에 보낸 혐의로 경희대에서 검거돼 구속 수감되는 모습(왼쪽 사진 ), 지난 1989년 8월 20일 밀입북 후 돌아와 경찰에 구속돼 연행되고 있는 임수경씨의 모습. /조선일보 DB

문재인 정부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최근 “통일하지 말자, 미래 세대에 맡기자”고 하더니 23일에도 “두 국가로 살자”고 했다. 노무현 정부의 이종석 전 통일장관도 지난 5월 “통일은 후대로 넘기자”고 했었다. 그럴 문제인가.

‘후대로 넘기자’는 말로 박수받은 사람이 덩샤오핑이다. 그는 1978년 방일 때 중·일 간 최대 난제였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에 관한 일본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대답이 “미래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현명할 것이다. 이 문제는 후대로 넘기자”였다. 기자회견장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중국에 한국 민주당이 있었으면 ‘댜오위다오 포기 선언’ ‘토착 왜구’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일제의 난징 대학살로 죽은 중국인만 30만명이다. 덩은 난징 학살 추모관을 지으라고 지시한 사람이다. 추모비도 직접 썼다. 그럼에도 감정을 누르고 중·일 관계를 정상화했다. 일본은 철강 등에 대규모 투자로 응답했다. 중국 개혁·개방의 밑천이 됐다.

덩은 외교나 내치에서 현실을 중시했고 유연했다. 입장을 끝까지 바꾸지 않은 단 하나가 중국 통일 문제였다. 1972년 닉슨 방중으로 물꼬를 튼 미·중 관계는 대만 문제에 걸려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대만에 무기 판매를 승인하자 덩은 격노했고 양국 수교는 엎어질 뻔했다. 덩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원칙과 대만 주둔 미군 철수를 약속받고서야 수교를 승인했다. 일본과 외교 갈등은 미룰 수 있어도 조국 통일을 후대로 넘기는 것은 역사와 민족에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 중국은 외국과 수교하거나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문구를 반드시 넣고 있다. 예외는 없다. 어느 순간 양안(중국·대만)이 통일한다고 해도 국제법적 논란은 없을 것이다.

냉전 시절 동독은 동유럽의 선진국이었다. 소련 후원이 든든한 동독 붕괴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동독의 ‘두 국가’ 주장이 현실적으로 보였지만 서독은 ‘하나의 독일 민족’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내독관계부(통일부 격)와 전독문제연구소(통일연구원 격)가 통일 당위성 등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설파했다. 서독이 동독의 ‘두 국가’에 장단을 맞췄더라면 불쑥 찾아온 ‘별의 순간’을 낚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도, 독일도 통일만큼은 미래 세대에 떠넘기지 않았다.

임 전 실장 등은 ‘전쟁 위기’를 말하며 ‘평화가 우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5년 월남 패망이 임박하자 김일성이 마오쩌둥에게 달려갔다. “우리(북한)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고, 얻을 것은 조국 통일”이라며 전쟁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에선 주한 미군 철수 논란이 뜨거웠다. 대한민국의 위기였고 김씨 일가의 기회였다. 그때 친북 세력은 ‘평화가 우선’이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의 ‘고려 연방제’ 통일에 동조했다. 1983년 아웅산 테러 때도, 1994년 영변 핵시설 폭격 소문이 돌았을 때도 전쟁 지수가 치솟았다. 그때도 주사파 등은 통일을 외쳤다.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국내 일부가 ‘통일을 후대로 넘기자’고 주장했으면 그 진정성과 의미를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통일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평생 통일을 주장하던 세력들이 지령이나 받은 것처럼 ‘통일 미루기’에 나섰다. 4년 전 북한 선전 도구는 “이번 인사에서 이인영(통일장관 후보자), 임종석(외교안보특보) 두 사람에게 거는 기대도 많다”고 했다. 북 기대에 정말 부응이라도 하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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