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내가 죽었다면"...동거녀 찌른 군인 살해한 남성의 울분 [그해 오늘]

박지혜 2024. 9. 2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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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5일 한 매체에 이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장 상병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양 씨를 불구속 입건한 경찰은 박 씨와 장 상병이 내연 관계였다거나 양 씨가 장 상병이 침입하기 전 박 씨를 살해했을 것이란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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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10년 만에 꿈에 그리던 결혼을 한다고 좋아했던 예비신부가 허망하게 간 것도 마음 아픈데 일각에서 치정인 듯 의심하는 게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난다”

2015년 9월 25일 한 매체에 이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그 전날 새벽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한 다가구주택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연관된 남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범행 전 CCTV에 찍힌 장모 상병의 모습 (사진=YTN 뉴스 캡처)
사건 당시 휴가 나온 군인 장모(당시 20) 상병이 공릉동 주택에 침입해 여성 박모(당시 33) 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하고, 자신은 양모(당시 36) 씨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박 씨와 양 씨는 그해 11월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였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장 상병이 범행 전 여기저기 왔다갔다하고 아무 집이나 창문을 두드리고 깨는 등의 모습을 보인 사실이 CCTV 영상을 통해 드러났다.

결국 장 상병은 모르는 집에 충동적으로 들어가 주방에서 흉기를 들고 잠자던 박 씨를 살해한 것이다. 옆방에서 자고 있던 양 씨는 비명에 놀라 곧바로 뛰쳐나왔고, 몸싸움 끝에 흉기를 빼앗아 장 상병을 숨지게 했다.

당시 장 상병이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는지는 큰 의문이었다.

장 상병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양 씨를 불구속 입건한 경찰은 박 씨와 장 상병이 내연 관계였다거나 양 씨가 장 상병이 침입하기 전 박 씨를 살해했을 것이란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선을 그었다.

흉기 손잡이와 숨진 박 씨의 손톱에서 장 상병의 DNA가 검출됐고 박 씨와 장 상병의 손에서 같은 섬유물질이 발견됐지만 박 씨의 손에서 양 씨의 DNA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도 양 씨가 “장 상병이 박 씨를 살해하고 나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빼앗았다”고 진술했을 때 ‘진실’ 반응이 나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공릉동 살인 사건’ 현장 (사진=연합뉴스)
일부 언론은 장 상병이 양 씨 집으로 들어가기 전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경찰은 장 상병이 양 씨 집에 침입한 지 2분 뒤 인근 주민이 여성의 비명을 들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장 상병이 박 씨와 양 씨 집에 침입한 동기에 대해선 “장 상병이 과거 양 씨 집 인근에 살았던 적이 있고, 주변인들은 평소 장 상병이 술만 마시면 다소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양 씨가 장 상병을 흉기로 찌르는 행위 외 당장 닥친 위험을 제거할 다른 방법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 사회 통념상 인정된다”며 양 씨의 ‘정당방위’로 결론지었다. 검찰도 사건 발생 2년 만인 2017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수사기관이 살인 피의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한 것은 지난 1990년 자신의 애인을 성폭행한 남성을 격투 끝에 숨지게 한 박 모 씨 사건 이후 25년 만이다.

양 씨는 9년간 만난 연인을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장 상병이 박 씨를 살해한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한 시사교양프로그램의 방송 이후 살인자로 몰리면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그는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대로 갔으면 피해자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저만 살아남아서, 여자친구 부모님께 저는 죄인인 거다. (그런 상황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하면 양심이 없어 보이잖나. 그래서 말을 아꼈는데 특정 언론사에서 다른 식으로 방송이 나갔다”고 토로했다.

이후 양 씨는 해당 방송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사건의 살인 동기 등이 명확하지 않아 언론 보도가 계속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공공의 이익이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박지혜 (nonam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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