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응급조치 빠진 딥페이크 처벌법

장형태 기자 2024. 9. 2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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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상에서 떠돌고 있는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합성한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영상을 발견한 피해자에게 가장 시급한 응급조치는 무엇일까. 바로 ‘신속한 삭제’다. 불법 웹사이트나 메신저로 불특정 다수에게 빠르게 전파되는 범죄 특성상, 그 무엇보다도 이 영상을 내리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법 체계는 두 단계를 거치게 돼 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 다시 경찰이 이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알려 방심위가 플랫폼에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지금 같은 단계를 단축하고 간소화하려는 ‘응급조치’ 법안이 지난 23일 정부 기관의 반대로 소관 상임위조차 넘지 못했다. 경찰은 ‘업무 과다 우려’, 방송통신위원회는 ‘경찰이 하는 것이 지금보다 유익한지 검토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반대 의견에 부닥친 것이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이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물을 발견하면 직접 플랫폼(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 삭제 또는 차단 요청을 하도록 했다. 김남희 의원은 “신고받은 경찰이 직접 삭제 요청을 하도록 하면 처리 기간이 단축되지 않겠느냐”며 “혹여나 수사 중 다른 성범죄 피해물을 발견할 시 신속한 대응도 가능해 제3의 피해자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경찰과 방통위 등 정부 부처 반대로 경찰에 조치 의무를 지우는 대신, ‘방심위에 삭제를 지체 없이 요청하도록 한다’ 조항이 들어갔다. 지금처럼 두 단계를 거치는 방식은 변함없는 것이다.

정부의 딥페이크 성 착취물 대책은 ‘삼각 공조’로 이뤄진다. 경찰은 수사를 맡고, 방심위는 삭제를 맡고, 여성가족부는 피해자 보호를 맡는 방식이다. 응급조치법이 도입되면, 경찰이 삭제 요청까지 하게 되면서 방심위 역할을 가져가게 된다. 경찰은 “개정안은 현 (삼각 공조) 체제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고, 업무 부담으로 검거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모두가 현재 방식에서 더 나아가고 싶지도, 더 내어주고 싶지도 않다는 부처 간 칸막이의 대표 사례로 꼽을 만한 일이다. 다행히도 아직 법사위 등 타 상임위에 비슷한 법안들이 논의 중이라 응급조치 관련 논의가 진전될 가능성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성 착취물이 유포되는 해외 플랫폼에 책임을 묻는 것도 시급하다. 지금은 오로지 해외 플랫폼에 삭제 요청만 할 수 있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국서 해당 웹페이지 접속을 차단하는 것밖에는 대책이 없다. 이미 외국 아이피로 우회 접속을 하는 프로그램을 손쉽게 구해 쓸 수 있는 만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여당에선 브라질이 X(옛 트위터)를 차단한 것처럼 아예 국가 내 서비스 차단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야당도 해외 플랫폼에도 불법 콘텐츠 유통 방지 책임을 지우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확실한 응급조치와 ‘범죄 방조자’ 해외 플랫폼을 규제하는 것, 이번 국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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