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 넘어 함께 회의하듯… 그림으로 금통위-길드 권위 빛내기[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한국은행 회의실에 걸린 그림… 1950년 첫 금통위 회의 장면
실물 같은 크기로 생생한 현재성
렘브란트의 길드 회의 그림도 회의실에 걸어 권위 부각 역할
그때나 지금이나 금통위 정위원은 7명이지만 그림 속에는 대리위원 및 기타 참석자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총 13명이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그림 크기가 높이 2.2m, 폭 3.3m로 상당히 커서 그림 속 등장인물이 실제 사이즈처럼 당당하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큰 그림이 의장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보니 실제로 초대 위원들이 시공을 넘어 현재 위원들과 함께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준다. 그림은 말이 없지만, 금통위 회의장의 이 그림은 첫 회의가 열린 1950년 6월 이후 지금까지 숱한 도전과 위기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금통위가 국가 경제의 기틀을 균형 있게 다져왔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웅변해 주는 듯하다. 이렇게 보니 국가기관의 그림 한 점이 그 기관의 전통과 권위를 확인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는 6명이 자리하고 있는데, 전면에 앉아 있는 인물들은 암스테르담에서 생산되는 옷감의 등급을 매기는 평가위원들이고, 뒤에 약간 물러나 서 있는 이는 회의 진행을 돕는 진행요원이다.
렘브란트 그림은 지금은 라익스 미술관에 전시돼 있지만, 원래는 금통위 그림처럼 위원들의 회의실에 걸려 있어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그림도 각각의 위원들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위원회의 권위와 전통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렘브란트의 그림과 금통위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점도 보인다. 김 작가가 그린 금통위 그림은 참여 위원들의 초상화적 디테일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참가자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정면을 향하고 있다. 등장인물 모두 거의 공간 배분을 일정하게 했다. 뒤에 서 있는 최순주 전 재무부 장관의 경우 뒤쪽에 물러나 있지만, 원근법적으로 축소되는 테이블의 끝에 놓여 시선을 끈다.
반면 렘브란트는 위원들의 초상화를 그려 넣으면서 여기에 드라마적 요소를 살짝 가미해 화면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다섯 명의 위원은 모두 유니폼처럼 검정 옷에 하얀 깃의 옷을 맞춰 입은 듯 똑같이 차려 있고, 챙이 넓은 모자까지 쓰고 있다. 그러나 표정이나 시선, 그리고 손의 움직임까지 제각각 다 달라 개성이 확실히 드러나 보인다.
한편 시점의 처리에서도 두 그림은 큰 대조를 이룬다. 금통위 그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시점을 취하고 있지만, 렘브란트의 경우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본 시점이다. 금통위 그림은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편안한 시선을 유도했다면, 렘브란트는 올려다보는 시선을 통해 위원들의 권위를 좀 더 강조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렘브란트의 그림 속 위원들은 관람객을 내려다보면서 시선으로 압도하려 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네덜란드 경제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렘브란트는 이러한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시민계급을 시각적으로 영웅화해 낸 화가다. 김 작가가 그린 금통위 그림도 언젠가 한국 경제의 황금기를 이끈 동력의 기원으로 기억될 수 있게, 지금의 경제적 파고를 넘어 대한민국 경제가 순항하기를 기대해 본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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