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기 칼럼]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거는 기대
미국이 4년 반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연 4.75~5.00%로 조정하는 ‘빅컷’을 단행했다. 일주일가량 지나면서 한국은행도 곧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은 연 3.5% 기준금리를 20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 일부 언론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며 한은을 압박한다. 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0월11일, 11월28일 등 올해 두 차례 남아 있다.
미국이 돈줄을 푸는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경기가 안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침체가 임박했다거나 이미 진행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은 고용지표를 중요하게 보는데, 7월 고용이 큰 폭으로 둔화한 데 이어 8월 고용도 예상보다 적게 증가했다.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에 비해 2.5% 올랐다. 3년 반 만에 가장 낮아 금리를 내려도 물가 불안 가능성은 작다.
한국도 금리를 내릴 여건이 일부 조성돼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까지 다섯 달 연속 2%대로 안정적이다. 미국이 먼저 인하한 덕에 국내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할 여지가 작아졌고, 내수가 부진하니 시중에 돈을 풀 필요성이 커졌다. 한은 설립 목적은 물가와 금융 안정을 통한 국민경제 발전이다. 일단 물가는 잡은 것 같으니, 금리를 내려 기업과 가계에 자금을 풀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금융 안정이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는다. 가계부채가 계속 불어나고, 집값도 심상찮게 오르는 등 불안정 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 가계와 국가의 부채 합계는 지난 6월 말 기준 3042조원으로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넘어섰다. 8월 말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새 9조원 넘게 불어난 1130조원이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역대 최대인 8조2000억원이었다. 국제결제은행(BIS)조차 한국의 과도한 가계부채가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너무 떨어져서 문제라던 집값은 어떤가.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9월 3주(9월16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을 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5% 올랐다. 0.16% 상승한 서울은 26주 연속 오름세였다. 서울 반포동의 국민평형(84㎡) 아파트는 60억원까지 치솟았다. 정부의 각종 규제완화 탓에 늘어난 대출이 집값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수장은 딴 세상 사람이다. 박상우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집값 상승폭이 둔화하고 있다” “상승은 서울 및 수도권 특수한 지역의 신축에 쏠려 있다” 등 한가하게 평가했다.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하는 환자가 발생하는데도 “대란은 없었다”고 진단한 정부의 장관답다.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지난달 대통령실은 “내수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한은 결정에 대해 대통령실이 직접 의견을 내놓은 것은 무례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늘 금리 인하를 원한다. 경기 활성화와 성장률 제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리 결정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정책당국이 끼어들면 정치적 고려가 가미돼 시장을 왜곡하고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
금리를 내리면 투자가 늘어나고 소비도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빚내서 집 사는 데로 돈이 흘러간다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가계부채만 늘어나고 소비할 돈이 모자라 여전히 쪼들리게 된다. 침체가 심해지면 집값(자산)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는 충격이 올 수 있다. 집값이 폭락하고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금은 안정권에 접어든 물가도 금리를 내리면 급격한 오름세로 돌아설 수 있다. 금리를 내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특히 경제적 약자는 변화된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저금리라고 해도 돈 빌리기는 여전히 어렵고,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만 커질 수 있다.
한은이 금리 내리기를 고민하는 이유는 이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은은 최근 대입 지역별 비례선발제(교육 기회 불평등 해소), 채소·과일 수입 확대(농산물 물가 안정), 외국인 도우미 활용(돌봄서비스 부담 완화)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구조적 문제가 수십년간 누적돼 통화정책 같은 단기 거시경제 정책에도 선택을 제약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사회 구조개혁에도 관심을 넓히고 있는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이 서민생활 보호와 국민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길 기대한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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