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미국

김유진 기자 2024. 9. 24.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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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취재하는 기간에 ‘세 명의 대통령 머그’(three presidents mug)라는 이름의 기념품을 하나 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중심으로 왼쪽은 빌 클린턴, 오른쪽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초상이 그려진 머그컵이다.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횃불’을 넘긴 뒤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당의 단결을 촉구한 바이든의 선택을 기억해두기에 적격으로 보였다.

클린턴(1993~2001), 오바마(2009~2017), 바이든(2021~2025년 1월 퇴임 예정). 탈냉전 이후 미국 민주당이 배출한 세 명의 대통령 집권기마다 나는 길게는 약 4년, 짧게는 2년 이상씩 미국에서 생활했다. 세 차례 체류 시기 모두 경제적으로 불안했다. 클린턴 2기 후반기는 외환위기, 오바마 1기 초반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2년 전 특파원으로 부임한 때는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 한창이었다. 근 30년 동안 미국 경제의 위상에는 굴곡이 있었지만, 달러 패권에서 나오는 힘은 여전히 굳건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특히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역할은 변화 추세가 뚜렷하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씨름하듯이, 클린턴 후반기에는 코소보 전쟁 대응이 고민거리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미국 학교의 사회교과 수업에서도 미국이 코소보 문제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 지상군 투입이 필요한 것인지 등을 주제로 토론했다. 클린턴은 ‘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에게 강력히 경고해 제노사이드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차원의 공습을 주도했다. 유일 세계 패권으로 등극한 미국은 그럴 만한 의지와 역량, 국내적 지지가 뒷받침됐다.

오바마는 민주주의·인권·비확산 등 민주당 정부의 외교 원칙을 표방했다. 하지만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시작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수렁에서 허우적댔다. 그리고 북한 핵 문제는 물론 리비아, 수단, 미얀마,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지의 분쟁과 인도주의 위기 앞에서 미국은 결과적으로 무력했다.

바이든은 미국 내 투자와 동맹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토는 물론 한국·일본·호주 등까지 규합해 대러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단일 대오를 구축했다. 하지만 중·러와의 신냉전 구도, 중동 불안과 ‘저항의 축’ 확장, 무엇보다 미국 민주주의 위기까지 겹치면서 미국의 힘과 관심은 분산되고 있고 ‘말발’도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이런 추세는 11월 미 대선에서 누가 이기더라도 반전되기 어려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 자국 우선주의와 결합한 고립주의 경향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해리스가 당선되어도 다극화하는 국제질서 속 미국의 리더십은 계속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해리스의 선거 슬로건인 “돌아가지 않겠다”(not going back)는 트럼프 재집권을 저지하겠단 의지의 함축이다. 하지만 머그컵에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 명의 대통령 시기 미국이 수행하던 역할로는 도무지 “돌아갈 수 없을 거”란 자각이 담긴 구호일지 모르겠다고.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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