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승소 위한 숱한 거절…다시 ‘끈임’없이 끈질기게
비영리전업 공익법단체 ‘두루’
개인의 구제보다 ‘제도 변화’ 초점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다림의 힘 믿기에 지치지 않아
앞으로도 해나가야 할 싸움 넘쳐
짐 나눠 질 수 있는 동료들 기다려
2014년 설립된 비영리 전업 공익변호사 단체 ‘사단법인 두루’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아동·난민·이주민·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 옹호 활동을 하는 전업 공익변호사는 110명 정도로 추산된다. 상근 변호사 12명과 매니저 2명으로 구성된 두루는 전업 공익변호사가 가장 많은 단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주년’을 맞이하며, 변호사들은 지속 가능성을 목표에 두고 변화를 꾀하기로 했다. 10년이라는 쌓인 세월을 정리할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지난해 합류한 홍혜인 변호사(29)가 “전시를 해보면 어때요?”라고 제안했다. “재미있겠다”는 호응들이 모였다. 구성원들은 지난 1월부터 시간을 쪼개 두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은 전시를 기획했다. 그렇게 마련된 전시 ‘끈임없이 끈질기게’는 25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서울 마포구 논스케일드스페이스에서 열린다.
강정은(40)·이선민(37)·홍혜인(29)·이상현(36) 변호사와 강경희 프로젝트 매니저(44)를 지난 20일 서울 중구 회현동 두루 사무실에서 만났다. 설립 때부터 두루와 함께한 강 변호사는 “법률가 단체가 전시회를 여는 일은 아마 우리가 처음일 것”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마음이 잘 가닿길 바란다”고 했다.
“슬픈 얘기지만, 저는 ‘거절 전문 변호사’가 공익변호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건은 너무 많고 거절하는 게 일이죠.”
이상현 변호사가 말했다. 다른 구성원들도 말 없이 공감을 나타냈다. 사회적 관심과 법적 조력이 필요한 사건이 매년 쏟아지지만 적은 수의 공익변호사들이 모두 수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강 변호사는 “개인의 권리 구제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제도를 변화시켜 피해자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소송·활동에 집중하려는 방향성을 다져온 이유”라고 했다.
‘끈임없이 끈질기게’ 전시 준비는 두루가 앞으로 집중할 과제를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긴 토의 끝에 ‘모두의 1층’ ‘온마을 LAW(온마을로) 사업’ ‘이주 구금’을 전시에서 소개할 핵심 키워드로 추렸다.
두루는 2022년 장애인 등 누구나 1층에 있는 가게에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경사로 설치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승소한 데 이어 경사로 설치 의무화 대상을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을 이끌었다. 이후 사단법인 무의 등과 시작한 ‘모두의 1층’ 프로젝트는 각종 매장 입구에 비용을 부담해 경사로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서울의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 5곳을 대상으로 휠체어 ‘접근성 지도’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을 지원하는 ‘온마을로 사업’이나, 두루가 수년간 집중해온 ‘이주 구금’ 이슈도 관람객이 게임 등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기획이 준비됐다. 두루는 지난해 ‘객관적인 판단 절차 없이 외국인을 무기한 구금’하는 이주 구금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으며 국회에 보완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은 기부나 후원을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익법단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선민 변호사는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의제를 고민하면서도, 과연 우리의 일을 시민이나 기업에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도 컸다”며 “최대한 알리고 다가가는 게 과제”라고 했다. 온마을로 사업은 삼성생명·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을 바탕으로 이뤄졌는데, 이러한 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강 변호사는 “공익법 영역은 성과가 바로 드러나는 분야가 아니다”라면서도 “기다림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이 공론화된 것을 계기로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을 ‘대상 아동’이 아닌 ‘피해 아동’으로 보고 처벌하지 않도록 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개정된 것은 강 변호사에게 용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사실 그 사건은 현장에서 보기엔 ‘특별하지 않다’ 싶을 만큼 늘 있어왔던 일이기도 하다”며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부터 법이 개정돼야 할 근거를 오래도록 쌓아왔던 것이 법 개정이 가능했던 배경이라고 본다”고 했다.
두루의 구성원들은 많은 공익변호사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현 변호사는 “저희가 ‘거절 전문 변호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이 짐을 함께 나눠 질 수 있는 동료가 절대적으로 더 필요하다”며 “두루가 공익법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를 허무는 일. ‘공익변호사’가 된 이들은 이번 전시로 그 일을 풀어 설명하고자 했다. 시민들과 함께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다. “저희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싸움은 넘쳐나고 많다”는 강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해왔듯,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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