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숙제[이윤학의 삼코노미]

기자 2024. 9.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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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11월5일 선거 전에 금리 인하를 할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말이다. 지난 7월엔 대놓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에게 금리와 관련해 두 가지 요구를 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하나는 금리 인하를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러면 파월 의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반협박성 발언이다.

과거에도 미국에선 대통령과 연준 의장 사이에 통화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실랑이가 여러 차례 있었다. 물가 안정을 제일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연준 의장과, 경기를 부양하려는 대통령의 입장 차이는 정책 방향성을 넘어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루스벨트 대통령은 경제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통화 확장을 원했지만 당시 연준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확장정책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루스벨트는 연준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금준비법’(Gold Reserve Act of 1934)을 통과시켜 연준의 금리정책에 직접 개입했다. 당시 연준 의장 유진 아이작 메이어는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통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루스벨트는 이를 무시했다. 루스벨트의 정책은 대공황 극복의 전환점이 되었지만 연준의 독립성은 상당 부분 상실되어, 중앙은행의 역할과 정부의 통화정책 개입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이와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국채 금리를 낮춰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를 원했지만, 당시 연준 의장이던 토머스 매케이브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이를 반대했다. 차기 연준 의장이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역시 전후 경제에서 인플레이션 억제가 중요하다고 보고, 금리 인상을 통해 통화 긴축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맞섰다. 결국 ‘연준-재무부 협정’(Federal Reserve-Treasury Accord)을 맺어 연준이 더 이상 국채 금리를 인위적으로 고정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이 협정은 미 연준의 독립성을 강화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트럼프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빅컷(Big Cut), 즉 0.50%포인트 인하했다. 이에 금융시장은 10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리를 마지막으로 내린 것이 미국 연준은 2020년 3월, 한국은행은 2020년 5월이니, 대략 4년 반 만에 이뤄지는 금리 인하다.

8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2.0% 상승하면서 3년5개월 만에 최저상승률을 기록하여 기준금리 인하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에도, 한국은행은 고민에 빠진 듯하다. 경기침체를 막고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금리 인하에 큰 걸림돌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 상승과 맞물려 가계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아파트 가격은 13주 연속, 서울은 26주 연속 상승했다. 서울의 전셋값은 지난해 5월 이후 무려 70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이런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주택 거래량을 크게 늘리면서 가계대출 증가를 촉발시킨다. 지난 8월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은 9조6259억원, 이 중 주택담보대출은 8조9115억원으로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의 증가폭을 기록했다. 최근 금융당국의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와 강력한 대출 제한 등으로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둔화하고는 있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미 연준의 금리 인하로 한국은행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행정부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늘 조화롭게 추진된 것만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튀어나올 때는 더욱 그랬다. 행정부와 중앙은행의 협력은 오래된 숙제이다. 이번에 제시된 숙제인 부동산 가격 상승과 맞물린 가계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면,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는 더욱 값진 게 될 것이다.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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