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밀집 주거지 산책하며 글로 쓴 다큐… "'함박스탄' 아세요?"

최승영 기자 2024. 9.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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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함박스탄' 기획으로 이민사회 조명
인천일보 특별취재팀

인천엔 함박마을이 있다. 함씨와 박씨가 많이 살아서 붙은 지명이지만 지금은 14개국 사람들이 모여 산다. 특히 고려인들이 많다. 마을이 속한 연수1동 주민등록인구 중 90%(1만여명)에 육박한다. 2000년대 중반 법 개정과 방문취업 비자 시행 후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동포 중 ‘코리안 드림’을 좇은 이들이 자리 잡았다. 이후 ‘스탄’이란 접미사가 붙은 국가의 외국인 노동자도 대거 유입됐다.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많아진 초국가적인 마을에선 상권, 치안을 두고 갈등도 있다.

‘함박스탄’ 기획을 진행 중인 인천일보 특별취재팀 기자들이 지난 19일 인천 중구 인천일보 사옥 회의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취재를 맡은 (왼쪽부터) 이순민·박해윤·곽안나·이아진·김원진 기자, 편집을 맡은 최대환 기자. 이연선 그래픽 기자는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인천의 이 마을은 한국에 당도한 ‘이민사회’의 단면이다. 이 난제를 두고 인천일보는 8월부터 마을을 ‘함박스탄’이라 칭하고 소개하는 기획을 7회차(24일 현재)까지 냈다. 19일 인천일보 본사에서 진행한 특별취재팀과 인터뷰에서 김원진 인천일보 기자는 “올해 한인 러시아 이주 160주년과 맞물려 나온 함박마을 기사를 보며 첨예한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다만 누군가의 찬반을 떠나 중국인이나 고려인, 이민자, 난민과 인천의 거부할 수 없는 동행은 명백하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외양이나 말부터 다른 타인에 대한 공격성, 배척의 감정은 본능적이어서 ‘이민’은 예민한 이슈다. 기획은 대안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독자 대신 기자가 마을을 산책하며 이것저것 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마을 가게와 시설, 이곳 사람들의 “대단할 것 없는” 일상과 인생 스토리를 보고 듣고 물어 “글로 쓴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그들을 ‘외노자’가 아니라 곡절 끝에 지금 여기 사는 한 ‘인간’으로 바라본 경험은 우리 사회에서 희소했다. “쭈쭈바를 사주며” 마리공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기획을 시작했다. 맞벌이가 많고 방학 때 갈 친척집도 없어서 “함박마을 애들은 다 마리공원에 있다.” 남편을 따라 왔지만 별거하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 이야기(이상 1·2편)도 담겼다.

박해윤 기자는 고려인, 외국인, 선주민이 얽혀 요리를 만들고 나누는 프로그램 현장(3편)을 갔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30대 고려인 후손 통·번역사의 인생사를 듣고 자서전(5편)도 썼다. 그는 “몇 달 간 매주 방문하며 함께 제사 음식을 먹고, 아이의 주민등록증 취득에 잔치하는 모습을 봤다. 단순 프로그램 소개보다 관계성에 집중했는데 어떤 공동체가 탄생했다는 인상”이라며 “‘신문에 제가 나와도 돼요?’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지역신문은 우리 얘기를 담는 곳’이란 인식을 줬다고 본다. 주인공이 아니던 이들을 발화자로 끌고 온 데 방점이 있었다”고 했다.

‘함박스탄’ 기획 첫 회차 시작과 함께 담긴 마을 초대장 이미지. 시리즈는 외지인을 위한 ‘마을 설명서’를 표방하며 함박마을 고려인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담았다.

무게추를 텍스트와 신문에 두며 “관습적인 기사쓰기를 벗어나려”는 고민이 컸다. ‘안나가 안나에게’ 회차(6편)를 쓴 곽안나 기자는 고려인 4세이자 대안학교 대표인 최마리안나를 인터뷰했다. 다른 여정을 걸었지만 지금 같은 곳에서 살게 된 ‘안나’가 또 다른 ‘안나’에게 털어놓는 자신의 얘기가 시점을 바꿔가며 적혔다. 그는 “판단 대상이 아니라 주변 사람이고, 당신일 수 있다는 걸 드러내려 한국에선 드문 제 이름을 도구로 썼다. 대화를 하며 제 편견도 많이 느꼈는데 흔히 기사를 통한 함박마을과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라며 “다른 ‘안나’도 더 모으려 했는데 사정상 무산돼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언어 제약과 문화 차이, 경계심 등으로 지난한 취재과정이었다. 이아진 기자는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반찬과 식료품을 파는 반찬가게(4편), 꽃이 생활 속에서 우리나라보다 더 일반적인 문화권에 맞춰 마을에 등장한 꽃집(7편) 등 함박마을 상권을 취재하며 특히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처음엔 아예 취업할 생각이었는데 모두 퇴짜 맞았다. 로컬 음식만 파는 유일한 반찬가게가 인상 깊어 여러 차례 취재했는데 귀찮게 하니까 처음엔 싫어하셨다. 한 번에 4시간씩 취재했는데 중간에 손님이 오니까 1시간 있으면 10분 정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번역기 없인 대화가 어려웠다. 차츰 마음의 벽을 허물며 나중엔 차도 주셨는데 어려움을 깨가는 즐거움이 있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올초 김원진 기자가 “샤슬릭(러시아식 양꼬치)과 보드카”가 있던 수차례 술자리에서 가까운 기자들을 모아 “유독 술을 많이 먹이며” 시동을 걸었다. ‘함박마을’이란 키워드 외 개별 에피소드는 정치부, 경제부, 문화부 등 각기 다른 부서에 속한 2013년 이후 입사한 기자 5인이 각자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데일리 업무와 병행하며 더뎠던 진척은 5~6월 집중 취재 기간을 맞았고 9월 말 현재 1~2회차를 남겨뒀다. 최대환 편집기자는 “통상 기획은 하나의 줄기가 있고 연관된 게 나오는 구조라면 이번엔 마을과 고려인의 일상을 빼면 공통점이 없어 커리어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며 “부족함은 있지만 함박마을로 초대한 제목과 이미지 등 프롤로그 편집은 의도에 맞춰 문을 잘 열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시리즈 내내 지면엔 손으로 그린 함박마을 지도가 담겼다. 기사로 조명되는 마을 곳곳이 색을 얻고 지도가 컬러풀해지는 방식이다. ‘이민’이나 ‘다문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새로 온 사람들의 기존 사회에 대한 ‘동화’의 경계를 설정하는 작업인 만큼 각자의 색을 뭉뚱그릴 때가 많다. 이번 시도는 지역언론이 지역 내 한 그룹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색을 찾아준 과정에 놓인다. 아직 색칠되지 않은 부분은 사회 전반의 과제이기도 하다.

8회차를 쓰는 이순민 기자는 “한 명이 판을 짜놓고 전체적인 컨트롤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플랫폼과 같은 기획이 되며 다양한 에피소드와 다채로운 서술방식을 아울렀다. 이로써 지역언론에서도 ‘다문화’ 프레임으로 봐온 이야기를 달리 보여줄 수 있었다”며 “개인적으론 매일매일 치여도 내가, 우리가 같이 하는 기획이 버틸 힘이 되는구나 싶었다. ‘바텀업’ 제안을 회사가 흔쾌히 받아들이고 자율권을 부여해준 의미도 크다”고 했다. (관련기사: [함박스탄] 프롤로그-함박마을 사람들의 일상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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