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습에 레바논서 약 500명 사망…분쟁 키우는 이유는?

김효진 기자 2024. 9. 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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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쪽, 피해 키워 헤즈볼라에 협상 강제 의도? 미국조차 반발…이란 대통령 "이스라엘, 이란 더 큰 분쟁 끌어들이려 덫 놔"

23일(이하 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대규모 공습해 레바논에서 거의 500명이 숨졌다. 강한 타격으로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스스로 물러나게 해 협상을 유도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의도라는 보도가 나오지만 이스라엘의 우방 미국조차 이러한 생각에 반발했다. 인명 피해 규모가 이미 전면전 수준으로 들어선 상황에서 레바논 남부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여 피난길에 올랐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뉴욕타임스>(NYT), <로이터> 통신을 보면 이스라엘군은 23일 하루 동안 레바논 내 헤즈볼라 발사대, 지휘소, 군사 시설 등에 대한 1600건의 공습을 가했다고 밝혔다. 공습은 주로 이스라엘과의 국경 지대인 남부에 집중됐지만 수도 베이루트, 동부 베카밸리, 시리아 국경 인근까지 전역에 걸쳐 이뤄졌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습이 "순항 미사일, 1000kg 탄두를 단 로켓, 사거리 200km에 이르는 중거리 미사일, 단거리 로켓, 무장 무인기"를 포함해 주로 민간 주택에 보관된 무기들을 겨냥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 헤즈볼라가 이러한 무기들을 이용해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보다 "큰 규모의 대량 학살"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근거 제시 없이 주장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날 공습으로 인해 어린이 35명, 여성 58명을 포함해 492명이 목숨을 잃고 1645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2006년 7~8월 33일 동안 벌어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 중 레바논 쪽 사망자(1191명)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망자가 하루 만에 발생한 것이다.

하가리 대변인은 레바논 쪽이 밝힌 높은 사망자 수에 대해 "무기 근처에 있던 우리가 죽인 많은 테러리스트들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추후 자체 수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레바논 남부 민간 주택에 보관돼 있던 장거리 로켓 사진을 공개하고 이러한 무기가 이스라엘 폭격으로 폭발해 인근 건물에 대한 "2차 폭발"을 일으켜 피해 규모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하가리 대변인은 헤즈볼라가 설치한 "레바논 마을과 민간 주택 안에 있던 무기들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향해 발사될 예정이었고 레바논 민간인 또한 위험에 빠뜨렸다"며 헤즈볼라가 레바논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날 레바논 국민을 향한 영상 연설을 통해 "헤즈볼라는 여러분의 거실에 로켓을, 창고에 미사일을 배치해 여러분을 인간 방패로 너무 오래 이용해 왔다"며 "이스라엘의 전쟁은 여러분을 향한 게 아니라 헤즈볼라와 싸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폭격 당일 오전부터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 무기가 주택 내부, 혹은 인근에 있는 레바논 남부 주민에 대피를 촉구했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는 대피 촉구로 민간인 피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중동·북아프리카 책임자 라마 파키흐가 "군사 목표물의 위치를 아는 것"은 민간인의 책임이 아니며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위험이 예상되는 군사적 이점보다 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헤즈볼라가 민간 주택에 무기를 숨겼다는 주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민간인 근처에 군사 시설을 배치하지 않는다고만 했으며 이를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 전선을 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이스라엘 쪽은 공격 강화가 오히려 협상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로이터>는 이스라엘 당국자들이 최근 레바논 내 헤즈볼라 목표물에 대한 공습이 증가한 것은 헤즈볼라가 외교적 해법에 동의하도록 강제하기 위함이라고 주장 중이라고 보도했다.

레바논은 지난주 이스라엘이 배후로 추정되는 무선호출기(삐삐) 연쇄 폭발로 시작해 연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을 받으며 공포에 휩싸인 상태다. 이 과정에서 헤즈볼라 지휘부 뿐 아니라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 부담을 느낀 헤즈볼라가 국경 전선에서 물러나 이스라엘의 목표인 북부 국경 주민 귀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현재 상황은 이스라엘 쪽 관측과 정확히 반대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상이 아닌 전면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22일 헤즈볼라 부수장 나임 카셈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이 "시작일 뿐"이라며 "끝없는 심판"을 다짐하고 물러설 의향을 보이지 않았다.

가자지구 지원을 명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10월부터 이스라엘과 제한적 교전을 벌여 온 헤즈볼라는 가자지구 휴전이 이뤄질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경 지대 교전이 거의 1년간 이어지며 이스라엘 북부 주민 6만 명이 피난민이 됐고 네타냐후 정부에 이들의 귀환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상당한 상태다.

헤즈볼라의 보복 공격도 계속됐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24일 오전 이스라엘 북부를 향해 약 90발의 발사체를 날렸다고 밝혔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 북부 여러 지역에 공습 경보음이 울렸고 일부 지역 학교는 휴교했다.

<로이터>는 익명을 조건으로 미국 뉴욕에서 언론 브리핑에서 나선 미 국무부 당국자가 레바논 공격을 강화해 헤즈볼라를 합의로 이끈다는 이스라엘 쪽 입장에 반대하며 조 바이든 정부가 "긴장 완화와 공격과 반격의 순환을 끊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해당 당국자는 "적어도 최근 기억으론 확전이나 격화가 근본적 긴장 완화 및 완전한 상황 안정을 이끌어 낸 때가 없다"고 비판했다.

레바논 남부 주민들은 공포에 휩쓸려 피난길에 올랐다. 영국 BBC 방송은 23일 북쪽으로 향하는 도로가 피난민들로 꽉 막혔고 오토바이 한 대에 다섯 명의 가족이 타고 남부에서 급히 피난해 베이루트에 도착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더 북쪽이 트리폴리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일 헤즈볼라 고위 사령관 이브라힘 아킬이 사망한 이스라엘 공습으로 베이루트 교외 주택이 폭격을 맞으며 민간인을 포함해 45명이 사망했고 23일에도 헤즈볼라 지도부를 겨냥한 베이루트 공습이 이어지는 등 베이루트도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 딸과 함께 이미 두 번째 피난길에 오른 남부 나바티예 출신 파티마 체하브는 "처음엔 인근 지역에 사는 형제 집으로 피난했지만 그 집 옆 세 군데가 폭격을 맞았다"고 <AP>에 말했다.

BBC는 베이루트, 트리폴리, 레바논 동부의 학교들이 남부 피난민을 위한 대피소로 전환 중이며 사상자 급증에 대비해 레바논 병원들에 모든 비필수적 수술을 취소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각국은 확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에 온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3일 관련해 기자들에게 "이게 전쟁 상황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며 "현 상황은 극도로 위험하고 우려된다. 거의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쟁으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 모든 사람이 모든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랑스 방송 프랑스24는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이 23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 회의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중동에 미군을 추가로 파견했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23일 "중동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중을 기하기 위해 소수의 미군을 추가로 파견해 이 지역에 주둔 중인 우리 군을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견 규모나 지역, 임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현 상황을 "더 넓은 지역 전쟁에 도달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의 개입 여부에도 촉각이 곤두선 가운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23일 관련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이란 또한 지난 7월 자국에서 하마스 지도자가 살해되며 체면을 구기고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천명한 상태다. <로이터>, <워싱턴포스트>, <AP> 등을 보면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에 도착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23일 기자들에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간 갈등에 이란이 개입할 것이냐는 질문에 구체적 답변은 피한 채 "자신의 권리와 그 자신을 방어하는 모든 단체를 방어할 것"이라고만 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싶고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전면적 분쟁을 만들고자 하는 건 이스라엘"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더 큰 분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덫"을 놓고 있다고 주장하며 "우린 중동 불안정의 원인이 되고 싶지 않다.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일주일 내로 휴전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미국의 경고를 듣고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을 미뤘지만 "그 날은 결코 오지 않았고 그 대신 이스라엘의 공격 확대가 계속됐다"고 비난했다. 또 국제사회가 가자지구에서 자행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genocide)"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것을 "옳지 않다"고 비난하며 이란은 "여전히 우리가 동의한 틀(2015년 체결 핵합의)에 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협상 재개 의향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공습에 23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가지에 지역에서 대피하는 현지 주민들의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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