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충분한 설득과 이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2024. 9. 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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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

갑작스러운 폭우로 안전문자까지 수신되던 지난 주말, 지역의 작은 미술관에서 필자는 일반 대중 미술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수강을 신청하신 분들이 과연 몇 분이나 참석하실지, 무사히 도착하실지 걱정이 앞섰다. 당일 폭우로 행사를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한 분이라도 참석한다면 준비된 4시간의 무료 강의는 약속한 대로 진행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걱정은 기우였고 서울 대구 경남에서, 그리고 폭우 속 초행길임에도 동네의 작은 미술관을 향한 분들은 수강 신청의 약속을 지키셨다. 미술계에 대한 궁금함과 관심이 가득한 눈빛을 교환하며 순수한 질문과 날카로운 의견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미술관 창밖으로 거센 빗줄기가 내리쳤지만 우리는 아무도 빗소리를 듣지 못했다.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직업도 다양한 수강생의 대부분은 미술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인생의 제2막은 미술과 함께 하고 싶다는 중년, 이제 막 사회인이 되어 인생의 첫 미술관 방문을 기억하게 될 청년까지 미술에 대한 애정과 적극적인 관심을 실행하려는 분들과의 소통과 교감 그리고 공감, 우리 동네 작은 미술관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요란한 알림과 대대적인 홍보는 없었어도 지역의 소규모 미술관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안내는 하는 형편이다. 지역의 작은 문화예술기관이 그리 좋은 형편은 아니지만 단 한 분이라도 아주 섬세하고 귀하게 모실 수 있도록 즐거운 노력을 한다. 작은 규모이기에 가능한 장점이기도 하다.

부산에 세계적인 미술관(퐁피두 센터 부산 분관)을 유치해 글로벌 문화관광 도시로 성장시키려는 계획이 2년 6개월여 만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가 보다. 찬반 양론이 거세다. 세계적 미술관은 글로벌 문화예술기관으로 유니버설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시 브랜딩 문화예술시설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글로벌 관광도시에 하이엔드 문화 콘텐츠를 입히고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해 부산을 문화관광의 글로벌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지역 미술계와 시민단체의 찬반이 첨예하다.

밀실 행정, 문화사대주의, 혈세 낭비 등의 구호가 뉴스 기사로 알려졌고 기존 미술관과 미술 행사라도 제대로 지원해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과 지역 미술 무시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반면 세계적 미술관의 하이엔드 문화 콘텐츠를 고급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문화적 경제적 부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소시민에게는 비현실적인 액수인 100억, 1000억 등의 예산이 마냥 허망하기만 하다. 부산시장이 직접 방송 좌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논란이 커지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유치에 반대하는 의견에 성실하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방송을 보고 들으면서도 필자는 설득되지 못했다. 기사와 뉴스로 여러 번 확인했던 ‘하이엔드 문화 콘텐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공직자의 표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며 거슬렸다. 동시에 공공의 행정이 추구해야 하는 지향이 하이엔드 문화 콘텐츠인가라는 의문이 생겼고 지금 부산의 공공 문화행정에서 당장 시급한 것이 이것인가하고 반문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과연 하이엔드 문화 콘텐츠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화의 핵심은 소통에 이은 공감이 토대가 되어 시행착오와 다소 소모적이기도 한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적인 행정 또한 이 같은 핵심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K-컬처로 글로벌 문화의 한 장르를 만들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문화행정이 문화적이거나 섬세하다고 보이지 않고 치밀하지도 못한 것 같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는 첫 발표 이후 2년 6개월의 시간 동안 소통은 있었는지, 이어진 공감은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소모적이지만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핵심을 향한 토대는 만들어 왔는지 의문이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고 설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이 설득과 이해의 과정에서는 화려한 미사여구와 과도한 외래어 사용은 생략해 주면 좋겠다. 오늘도 한 청년 미술가가 부산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부산에 하이엔드 문화 콘텐츠가 없어서 부산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문화행정은 섬세하고 촘촘하게 우리 동네 작은 미술관에서처럼 순수하고 날카롭게 실행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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