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7> 낚시 은갈치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2024. 9. 2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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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솔솔 구이는 고소, 갓 잡은 회는 쫀득쫀득…제철 맞은 은갈치 한상

- 싸고 맛있어 한때 국민생선 대접
- 현재는 고급 어족으로 귀한 음식

- 낚시로 올린 은갈치는 주로 회
- 그물로 잡은 먹갈치는 찌개·조림
- 지방 많은 살코기 가을에 맛봐야

- ‘기장 갈치’ 토속음식으로 유명세
- 가족과 함께 즐기기에 안성맞춤

칠흑 같은 망망대해. 일엽편주 낚싯배가 일시에 불을 밝힌다. 집어등을 켜둔 낚싯배는 이미 불야성이다. 곧이어 낚싯대 끝 초릿대가 약하게 떨린다. 온몸 신경 세포가 팽팽하게 깨어난다. 낚싯대를 힘껏 챔질하고 낚싯줄을 끌어 올린다. 은갈치다. 눈부신 은색의 몸체가 불빛에 번득이며 세상 밖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연신 갈치가 올라온다. 눈부신 은빛 자태로 밤바다를 하얗게 수놓고 있다. 부나비 떼처럼 집어등으로 몰려드는 은갈치 덕분에, 밤새 낚시꾼들의 낚싯대에는 하얗다 못해 파르라니 퍼덕이는 갈치가 주렁주렁 달렸다.

한때 낚시를 즐긴 시절이 있었다. 간혹 갈치낚시 출조를 할 때면, 대마도 근처 공해로까지 갈치 어군을 좇기도 했다. 전동릴낚시로 심해 200여 m까지도 낚싯줄을 내려 갈치를 낚는데, 낚여오는 갈치 가운데에는 ‘5지(갈치 몸체의 너비가 손가락 5개 정도, 10㎝ 이상)’가 넘는 대물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은갈치로 한 상 차렸다. 갈치통구이와 갈치회, 그리고 곁들인 해산물이 가을 식객의 입에 군침이 돌게 한다.


▮잡는 법 따라 은갈치·먹갈치 나눠

갈치. 농어목 갈치과의 어족. 오랫동안 고등어와 더불어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한 국민 생선으로, 싸고 맛있고 영양가도 높아 널리 사랑받는 바다 음식재료다. 갈치회 갈치구이 갈치조림 갈치찌개 갈치젓갈 등 다양한 음식으로 널리 즐겨 먹어온 어종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주 귀하게 분류되는 고급 어족이 됐다.

특히 갈치는 가을에 가장 맛있는 생선이다. 가을 갈치는 몸에 지방을 다량 축적해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감칠맛이 돌아,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영양 가득한 음식이다. 왕소금 솔솔 뿌려 석쇠에 두툼하게 구운 갈치구이나 적당한 크기의 갈치를 애호박과 감자 무 양파 등을 숭덩숭덩 썰어 얼큰하고 짭짤하게 끓인 갈치찌개 등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 온 생선이다. 오죽하면 ‘섬 아기, 갈치 맛 못 잊어 섬 못 떠난다’는 식담이 해안 섬마을에까지 널리 퍼졌을까?

갈치는 ‘기다란 칼’과 같이 생겼다고 우리말로 ‘칼치’ ‘갈치’로 불렸고, 한자어로는 도어(刀魚)라 불리기도 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속치마를 묶는 띠처럼 생긴 생선’이라 하여 ‘군대어’(裙帶魚)라 칭하고, 속명으로는 ‘갈치어’(葛峙魚)로 기록하고 있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는 ‘칡넝쿨처럼 생겼다’하여 ‘갈치(葛侈)’라 적고 있다. 주로 서서 헤엄을 치고 잘 때도 서서 자기 때문에, 사람이 모로 누워 자는 불편한 잠을 ‘칼잠’이라 하기도 한다.

갈치는 낚시와 그물 등으로 주로 잡는데, 낚시로는 주낙과 채낚기, 낚싯대로, 그물로는 자망이나 안강망, 대형 트롤 등으로 어획한다. 낚시로는 은갈치, 그물로는 먹갈치를 주로 잡는다. 갈치는 크게 은갈치와 먹갈치로 나뉘는데, 이 두 갈치 모두 종류는 같다. 다만 갈치를 잡는 어로법과 어획되는 해역에 따라 구분한다.

은갈치는 남해안 제주 통영 여수 등지에서 낚시로, 먹갈치는 서해안 목포 군산 그리고 심해 먼바다 등지에서 그물로 잡는다. 한 마리씩 잡기에 갈치 몸에는 상처가 없고 다치지 않은 비늘은 은빛을 띤다. 그물로 잡으면 한꺼번에 대량으로 갈치를 잡아 올리기에, 갈치끼리 서로 부대끼고 그물에 비늘 등이 상처를 입어 상대적으로 검은빛이 돈다.

그래서 낚시 갈치를 은갈치로, 그물 갈치를 먹갈치로 부르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해역에 따른 서식 환경과 먹이가 갈치 체색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단다. 그래서 맛 또한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은갈치는 신선하고 담백한 맛이, 먹갈치는 감칠맛과 진한 풍미가 특징이다.

갈치는 그 크기를 눈대중할 때 손가락 개수의 너비로 구별한다. 손가락 세 개 너비면 ‘3지(指)’, 손가락 네 개 너비면 ‘4지’라 부른다. ‘2지’ 정도로 작은놈은 ‘풀치’라 부르고, ‘5지’ 이상 되면 대물로 친다.

은갈치는 먹갈치에 비해 그 신선도가 높아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을 수가 있다. 먹갈치가 주로 구이 조림 등으로 쓰인다면, 당일 잡은 은갈치는 갈치회 갈치회무침 갈치 초밥 등 횟감용 식재료로 널리 활용된다.

▮가을에 더 고소한 은갈치의 맛

칼칼한 국물에 부드러운 갈치 살이 일품인 갈치조림.


얼마 전 가을을 맞아 직접 낚시로 잡은 은갈치로 조리한 ‘은갈치 코스 요리’를 다룬 방송을 촬영한 적이 있다. 낚시로 당일 잡은 은갈치라 살아있는 듯 은빛 비늘이 깨끗하고, 시퍼렇게 날이 서 있을 정도로 신선한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은갈치 요리를 코스로 한 상 받았다. 우선 은빛으로 빛나는 ‘갈치회’가 중앙에 자리를 잡고 그 옆으로 ‘갈치회무침’ ‘갈치 초밥’도 자리한다. 곧이어 큰 은갈치 한 마리가 크고 기다란 접시에 통마리로 떡하니 올라온다. 대충 보아도 4지 정도의 큰놈이다.

일단 갈치회 한 점 맛본다. 처음에는 담담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좋다. 조금 뒤 입안 가득 고소함이 올라오고 갈치껍질의 쫀득한 식감이 흔쾌하다. 갈치회 초밥도 한 점 먹는다. 고추냉이 장도 좋고 회 초장도 잘 어울린다. ‘통마리 갈치구이’를 숟가락으로 넉넉히 퍼서 한입 가득 입에 넣는다. 입에 넣자마자 고소함은 바다 품처럼 풍성하고, 입안 가득 갈치살은 깊은 우물처럼 웅숭깊다.

갈치의 이것저것을 먹다 보니 ‘갈치조림’과 ‘갈치호박국’도 상에 오른다. 갈치조림 국물은 칼칼하니 좋고, 갈치호박국은 담담하면서도 속이 환할 정도로 시원하다. 갈치조림 국물은 밥에 비벼도 그저 그만이겠다. 젓가락으로 갈치살을 한 점 집으니 부드러워서 집자마자 살이 흩어질 정도이다.

갈치호박국의 갈치살은 포를 떠서 조리했기에 뼈 바르는 수고를 덜 수 있겠다. 한 입 꽉 차게 갈치살과 가을 호박을 함께 입에 넣는다. 갈치살의 고소함과 호박의 달큼한 맛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입가심의 갈치회무침도 새콤달콤 매콤한데, 채소의 신선함과 갈치회의 고소함 또한 잘 어우러진다.

따뜻한 쌀밥 위에 ‘갈치 젓갈’ 한 점 올려 먹는다. 연이어 ‘갈치김치’도 입에 넣는다. 기분 좋은 쿰쿰함, 그리고 코끝으로 스치는 가벼운 군둥내와 깊은 구수함! 한국 사람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아주 치명적인 음식 조합이겠다.

부산의 ‘기장 갈치’ 또한 오래전부터 유명했는데, 기장 사람들은 이 갈치로 여러 가지 독특한 음식을 해 먹으며 나름의 토속 음식문화를 이어왔다. 갓 잡은 싱싱한 갈치를 호박잎으로 비늘을 벗겨내고 막걸리로 빤 후, 즉석에서 썰어 먹는 ‘갈치회’와 이를 각종 채소와 함께 무쳐 먹는 ‘갈치회무침’, 가을에는 기장 무와 함께 갈치를 덤벙덤벙 썰어 담근 ‘갈치 석밖지’, 갈치 새끼인 풀치를 널찍하게 펼쳐서 바닷바람에 꼬들꼬들 말려 두었다가, 두고두고 먹던 ‘건 풀치 조림’ 등이 우리의 입맛을 늘 챙겨온 것이다.

가족 밥상 위에 올라 오래도록 든든한 반찬으로 자리매김하던 갈치.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면 더욱 깊고 고소한 맛을 내는 식재료가 갈치이다. 특히 은빛 반짝이는 당일 잡은 낚시 은갈치는 여러 음식으로 다양하게 먹을 수가 있기에 가족 단위로 함께 즐겨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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