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쪽 난 ‘2野’ 영광·곡성군수 재선거서…‘호남쟁탈’ 맞짱
군수 선거에 나선 당 대표들…판 커진 재선거
민주 지도부 1박2일 호남行…텃밭 사수 나서
조국혁신당, 민주당 ‘텃밭’ 호남 진입 총력전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형제지간 격인 야권이 10·16 전남 영광·곡성 군수 재선거를 놓고 두 쪽으로 갈라졌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각각 군수 후보를 내면서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을 찍는 이른바 '지민비조' 연대를 유지했던 양당이 호남에서 첫 '골육상쟁(骨肉相爭)'의 맞장을 뜨고 있는 것이다. 두 당은 현재 영광·곡성에 진을 쳤다. 당력을 집중하다시피 하며 야권 내 호남 세력의 주도권을 놓고 양보 없는 한판 승부를 예고한 상태다. 지역 정가에선 이번 재선거가 민주당과 혁신당 간 사실상 첫 대결이자 일정 부분 호남에서의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칠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명·국대전'으로 번진 향촌 군수 재선거
재선거전이 민주당 텃밭에 야당인 혁신당이 도전하는 형국으로 갈수록 뜨겁게 불붙고 있다. 선거판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간 대리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두 당은 연일 호남의 군수 자리를 놓고 가시돋친 설전을 주고 받으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윤석열 정권을 탄핵하자며 한 목소리를 냈던 우군이 맞나 싶을 정도다. 혁신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경쟁이 지역발전의 약이다'며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의 힘을 빼기 위해 열심이고, 민주당은 그런다고 죽지 않는다며 혁신당에 맞선다.
특히 민주당·혁신당 양당 지도부의 '참전'으로 판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곡성·영광군수 재선거를 중앙당에서 총지휘하기로 결정하고, 텃밭 사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혁신당도 지도부가 선거구에 상주하며 전면 대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팽팽한 경쟁 속에 두 당이 '군수 선거' 이상의 화력을 쏟아 붓는 것은, 재선거가 단순히 군수를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2026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전초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혁신당은 영광 군수 선거에서 호남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다면 오는 지방선거에서도 기반을 넓혀 '국회 비례'에 멈춰 있는 정치적 입지를 확대할 수 있다. 혁신당으로서도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에서 당 경쟁력과 호남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향후 호남 지형의 풍향계가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반면 민주당으로서는 영광군수가 혁신당으로 넘어갈 경우 단순히 텃밭을 뺏겼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이재명 당 대표 체제에 오명을 남길 수 있어 양보할 수 없는 선거가 됐다. 일각에선 "이번 재선거 결과에 따라 '호남 맹주'를 둘러싼 지역 정치권의 지형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역정가의 한 관계자는 "기초단체장 선거는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민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후년 지방선거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차기 단체장과 지방의회 입성을 노리고 있는 예비 후보군들도 이번 재선거를 통한 민심과 정치역학 구도의 변화 여부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민 깊은 민주당…텃밭 '단속'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3~4일 군수 재선거가 치러지는 영광과 곡성을 훑는 1박2일 '영광곡성 투어'를 하며 흔들리는 표심 단속에 나섰다. 이 대표는 첫날 영광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자당의 장세일 영광군수 예비후보(이하 후보)를 지원했다. 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회의를 끝낸 뒤 당 지도부는 영광터미널시장 등을 돌며 장세일 영광군수 후보와 조상래 곡성군수 후보 지원 유세를 하며 지역 민심 몰이를 했다.
이 대표는 지역농협으로 자리를 옮겨 지역 현안인 쌀값 안정화 정책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이 대표를 비롯해 박지원·이개호·신정훈 의원, 장세일 후보 등이 참석한다. 외견상으로는 추석 연휴 이후 지역민심을 살피는 농정 간담회였지만, 최근 월세방까지 얻고 후보 지원에 나선 조국 혁신당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이 대표는 이튿날인 24일 오전엔 곡성으로 이동해 지역 노인회 간부들과 간담회를 갖고 조상래 곡성군수 예비후보 지지를 당부했다. 시골 군수 선거에 당 대표와 지도부가 총 출동해 현장 최고위를 여는 것 자체부터가 이례적이다.
이처럼 이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지도부가 그동안 영광·곡성군수 재선거에 거리를 두던 것과 달리 호남 총력전에 나선 것은 그만큼 현장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 대표도 굳이 속사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날 영광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에서 "소규모 보궐선거이긴 하지만 의미가 적지 않다"며 "만약 결과가 조금 이상하게 나오면 민주당 지도체제 전체가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 스스로 이번 재선거 결과를 민주당 지도체제 전체의 위기와 결부시킨 것은 주목된다.
민주당 안팎에선 두 선거구의 승리를 점치면서도 "혁신당 기세가 만만치 않은 만큼 마음을 놓을 상황은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최근엔 "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최근 부쩍 당력을 집중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앞서 민주당은 이들 지역의 재선거를 중앙당에서 직접 총괄·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애초 민주당 전남도당이 재선거 공천·경선을 진행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구성했지만 중앙당에서 이를 반려하고 공천과 본선 전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
실제 곡성의 경우 유근기 전 군수와 정환대 전 도의원 등 5~6명이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지고 표밭갈이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체 여론조사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난 무소속 조상래 전 도의원을 '양자'로 영입해 후보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무소속 출마 예정자를 끌어안은 것은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의원 개인들의 각개 격파도 눈길을 끈다. 한준호 최고위원은 영광과 곡성 '한달살이'에 들어갔고 정청래 전 최고위원, 박지원 의원 등은 박빙 지역인 영광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당내 명망가인 김민석, 전현희, 이언주 최고위원 등도 영광과 곡성을 수시로 방문해 자당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영광 돌풍' 혁신당…'월세살이'로 표심 흔드는 조국
이에 맞서 조국혁신당도 곡성·영광군수 재선거에 중앙당 차원의 화력을 쏟아 붓고 있다. 조국 대표와 전남도당, 중앙당이 삼각 편대를 이뤄 재보선에 임하는 모습이다. 혁신당은 두 곳의 재선거 지역에 후보를 내고 당선을 목표로 '지도부 격전지 한 달 살이' 등 강도 높은 선거 전략을 구사하면서 민주당과 정면 승부를 걸고 있다.
조국 당 대표는 추석 연휴 전부터 영광과 곡성에 월세방을 잡고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직접 선거를 챙기고 있다. 추석 연휴 직후 첫 최고위원회의도 21일 영광에 있는 장현 예비후보 사무실에서 열었다. 조 대표는 '나비효과'를 언급하며 "장 후보가 당선되는 순간 호남 전체에 태풍이 불 것"이라며 민주당 텃밭을 흔들어 결실을 내겠다는 각오다.
앞서 조국혁신당은 지난달 29∼30일 영광에서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열고, 다음날에는 곡성군으로 이동해 노인 대상 배식 봉사, 청년 농부 간담회 등을 가졌다. 또 혁신당 내에서는 한 곳의 당선을 목표로 지도부가 선거구에서 한 달여 머물면서 밑바닥을 훑는 저인망식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조국 당 대표는 지난 7월 15일 서울에서 열린 광주·전남 기자간담회에서 "호남에서 민주당이 30년을 넘었다"며 "당내 경선만 이기면 당선되다 보니 문제가 나타난다"고 지적하면서 전남 재보궐선거에 참여를 선언했다.
이처럼 민주당 텃밭인 호남 쟁탈을 위해 당 지도부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혁신당의 지난 총선 비례대표 호남지역 득표율을 감안할 때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혁신당은 지난 4월 총선 때 호남지역 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당을 압도했다. 당시 광주에서 47.7%를 득표해 민주당(36.2%)을 11.5%p 앞섰다. 전남과 전북에서도 각각 43.9%, 45.5% 득표율로 민주당(전남 39.8%, 전북 37.6%)을 눌렀다.
재선거가 치러지는 영광·곡성에서도 민주당과 비슷하게 표를 얻었다. 혁신당은 영광과 곡성에서 각각 39.4%, 39.8%의 비례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각각 40.1%, 41.1%를 얻어 1%p 안팎의 박빙승부를 벌였다.
혁신당 관계자는 "영광군수 선거 양상은 호남 정치를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자만심이 불러온 오판이고, 바닥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혁신당은 혁신당이 가지고 있는 정치 의제와 함께 호남 정치 복원, 경쟁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지방자치를 중점으로 존재감을 보일 생각"이라고 밝혔다.
심상치 않은 '영광 표심'…민주당 vs 혁신당 '박빙'
여론조사도 초접전 양상을 보인다. 지역 일간지 남도일보가 이달 10∼11일 리얼미터에 의뢰해 벌인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장세일 후보 29.8%, 혁신당 장현 후보 30.3%로 두 후보 격차는 0.5%포인트에 불과했다.
KBC광주방송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11~12일 100% 무선 ARS 방식으로 재선거에 나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혁신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36.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30.1%로 두 후보 사이에는 오차범위 이내이지만 6.2%p 격차가 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곡성도 군수 재선거를 치르는데 민주당이 영광에서만 당 대표가 참석하는 간담회를 여는 것도 이처럼 '영광 표심'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혁신당의 '영광 돌풍'은 호남지역 '일당 민주당 독점'에 대한 반감과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영광은 무소속 강종만 군수가, 곡성은 민주당 이상철 군수가 선거법 위반죄로 당선 무효형을 받아 직을 상실했다. 전통적인 농어촌인 영광은 1995년 단체장 직선 도입 이후 역대 여덟 번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3차례나 고배를 마신 곳이다. 그 만큼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얘기다.
이번 재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점쳐졌던 장현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혁신당에 입당한 것도 이 같은 정치 역학적 구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역정가에선 진보당 후보의 득표력을 변수 중 하나로 꼽는다. 영광은 무소속 후보가 민주당을 꺾고 3차례나 군수로 당선된 데다 진보당에 대한 지지세도 있어서다.
전남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한 인사는 "전남 군수 선거는 조직표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이 후보 경선 후 단합하지 않고 일부 표심이 조국혁신당으로 옮겨갈 경우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곡성은 양 당 모두 다른 당 활동 경력이 있는 무소속 후보를 영입했다. 민주당에서는 전남 도의원을 2차례 지낸 조상래 후보가 나선다. 복당과 경선 규칙 변경 등 진통 속에 100%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후보로 결정됐다. 혁신당은 박웅두 전 섬진강 수해 피해 곡성대책위 집행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웠다. 무소속으로 나섰다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다시 경선을 거쳐 조국혁신당의 후보가 됐다. 국민의힘은 최봉의 후보를 전략 공천했다.
영광은 민주당은 장세일 전 전남도의원을, 혁신당은 장현 전 호남대 교수를 각각 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했다. 민주당 장 후보는 6명의 후보가 나서 2명이 컷오프되고 1명이 사퇴하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경선에서 승리했다. 민주당의 불공정 경선을 주장하며 사퇴한 장현 전 호남대 교수는 조국혁신당에 입당해 결선 투표 끝에 후보로 낙점됐다. 양당 후보 이외에도 진보당 이석하, 무소속 김기열·오기원 후보 등이 나선다.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한 국민의힘은 공천하지 않기로 했다.
양 당의 호남 쟁탈전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지만, 지역 유권자들은 '좋은 군수'가 뽑히길 바라는 있다. 영광 터미널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이숙희(48·여, 가명)씨는 "누가 되더라도 임기 중에 불미스러운 일로 그만두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며 "먹고 살기 어려운데,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군수가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두 당을 향한 쓴소리도 나온다. 읍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최 아무개(54)씨는 "하도 많이 속아 선거철만 되면 찾아와 잘하겠다고 읍소하는 말이 영 미덥지 못하다"면서 "지금처럼 평상시에도 지역발전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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