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명진흥법, `재발명`돼야 한다

2024. 9. 24. 1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영렬 서울예대 영상학부 교수

지난 추석 연휴 고속도로에서 '길치 운전자'도 나들목을 제대로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준 노면 색깔 유도선. 한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도로 위 생명줄'이라는 이 아이디어의 발명자를 출연시켜 특허로 출원되었는지, 발명 보상은 이뤄졌는지를 다뤘다.

발명진흥법에 따르면, 종업원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특허 권리를 회사에 승계하면 급여와는 별개의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법 15조), 이 아이디어는 특허로 신청되지는 않았다. 발명진흥법은 아이디어가 특허로 출원·등록되지 않아도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법 16조).

이는 발명에 대한 보상으로 더 좋은 특허가 더 많이 나오도록 하여 기술 혁신이 선순환 되게 하려는 취지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정도로 특허 경쟁력은 기업 생존 뿐 아니라 국가 경제 성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법원은 회사 재직 중의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이 휴가나 퇴직금처럼 당사자의 의사 여부를 묻지 않고 강제로 적용되는 규정(강행규정)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기업에서 이뤄지는 직무발명 보상 제도의 현실은 이러한 취지나 법 정신과는 완전 딴판이다. 발명진흥법에 '보상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지,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는 규정이 없어 기업에서 이를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대기업 K사의 직무발명 보상 외면 논란은 이 법이 말로만 하는 '구두선'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K사 인터넷 TV 부서에 근무했던 발명자들은 인터넷TV 리모컨의 전원 제어 버튼이 TV용과 셋톱박스용으로 2개 였던 것을 하나의 버튼으로 통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들은 특허 권리를 회사에 승계, 2012년 2월 K사 특허로 등록되게 했다.

TV와 셋톱박스의 부팅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사용자가 버튼들을 눌러도 동시에 화면이 켜지지 않아 다수의 사용자는 다시 TV나 셋톱박스 버튼을 눌러 아예 꺼지게 하는 등 켜고 끄는 게 어려웠던 문제점을 해결한 기술이었다.

발명자들은 퇴직 후에, 이 기술이 2011년 8월부터 K사 인터넷 TV에 적용되어 K사에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이익을 발생시키고 있다며 '정당한 보상'을 요청했으나 특허관련 부서로부터 '비실시'라며 거절 당했다.

발명자들은 2023년 특허청 산하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위원회에 특허 실시 증거들을 첨부하여 조정을 신청하였으나(법 41조) K사 특허부서는 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발명자들은 K사 측에 직무발명 보상 규정을 서면으로 알려달라(법 15조2항), 사내에서 분쟁조정을 위한 심의위원회를 열어 달라(법 18조1항)고도 요청했지만, K사 측은 무시했다.

이는 이 법 관련 조항들을 모두 무시해도 처벌 받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K사 측은 이 특허권 유지를 위해 특허 등록료를 계속 납부해 오고 있으며 특허 실시 여부에 대한 언론의 질의에는 답을 하지 않기도 했다.

법원은 발명진흥법의 직무발명 규정을 강행 규정으로 판시할 때 "사업자에 비해 열악한 지위에 있는 종업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발명을 진흥하기 위해 인정되는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서울고법 2009.8.20.).

그런데, 이 법에는 '사업자에 비해 열악한 지위에 있는 종업원의 권익을 보호할 규정이 사실상 거의 없다. 이 법에는 분쟁 발생 시 사내 심의위원회를 열어주는 것과 관련하여 단 하나의 과태료 조항(60조 1항)이 있으나, 절차 상의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없고, 분쟁이 발생한 시점에 대한 기준도 없이 '사유 발생 30일 이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 종업원 권익 보호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

대기업의 직무발명 보상과 관련, N사와 S사의 퇴직 종업원은 각각 회사를 상대로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됐다.

회사 재직 때 땀 흘려 개발한 기술에 대해 법적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고 자부심을 느껴보려는 발명자들은 특허 부서가 거부할 경우 좌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재직 중인 종업원들은 좋은 특허를 개발해도 보상이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어 큰 의욕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가까운 중국은 직무발명 보상금에 대한 최소 금액을 법의 실시세칙에 명시하여 종업원이 보상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다. 일본은 2015년 특허법 개정 때 기업과 종업원 간 특허 소송의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직무발명 보상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일본은 특허법에 '특허청장이 주기적으로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 실태를 조사하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글로벌 특허 전쟁시대에 국내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특허 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정당한 보상 거부와 이에 따른 우량 특허 개발 의욕 감퇴'의 악순환은 없는지 챙겨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특허청과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국회는 현 발명진흥법의 '재발명'에 나서야 한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