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늘리자 [유승훈의 에너지의 경제학]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에너지 부족 국가이면서도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를 에너지 경제학의 관점에서 점검해본다.
우리나라 면적의 11.7%를 차지하는 수도권은 전력수요의 절반을 차지한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 디스플레이 공장, AI 데이터센터 등이 집중적으로 늘어나고 있기에, 수도권 전력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수도권의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시켜야 할 과제가 중요하게 등장했다.
과거에는 수도권에서 전력 수요가 늘어나도 별문제 없었다. 땅값이 저렴하며 바닷물을 냉각수로 활용할 수 있는 비수도권 바닷가에 발전소를 짓고는 대규모 송전선로를 통해 전기를 나르면 되었다. 비수도권에 비분산형 발전소 및 송전선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수도권에 분산형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비용보다 더 낮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보상비를 포함한 송전선로 건설비용이 폭등했을 뿐만 아니라 주민 수용성이 악화되었다. 사실 내 집 앞이나 위로 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송전선로로 인해 지가나 주택 가격이 떨어질 수 있고, 사실과 무관한 전자파 우려도 있다.
이제는 비수도권에 비분산형 발전소 및 송전선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수도권에 분산형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비용보다 높아졌다. 게다가 상당수 지역에서 송전선로 건설 반대가 제법 심하다. 내가 쓰지도 않는 전기의 운반을 위해 내가 희생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 이기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는 송전선로 건설과 관련된 각종 인허가에 소극적이다. 예컨대 최근 하남시가 동해안-수도권 신규 송전선로의 말단에 들어설 변전소 증설계획을 최종 불허하면서, 수도권 전력 공급 안정성에 적색등이 켜졌다. 한전은 행정소송을 통해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최종 판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결국 수도권 분산형 발전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수도권에 입지 가능한 대규모 분산형 발전소로는 천연가스 발전소가 유력하다. 그 이유는 5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대기질 개선 및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석유나 석탄을 사용하는 발전소는 전국 어디에도 지을 수가 없으며, 수용성 확보 문제로 수도권에 원전을 짓는 것도 불가능하다.
둘째, 태양광 및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좋겠지만, 인구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땅값이 비싼 수도권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셋째, 수도권 신도시에는 거의 예외 없이 천연가스 발전소가 지역 커뮤니티에 전기, 온수, 난방열을 공급하는 편의시설로 자리매김해 친숙하다.
넷째, 국가 전체의 화석연료 발전소 총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수도권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지을 수 있기에,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지 않는다. 전기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비수도권 지역에 수명이 끝나가는 노후 석탄발전소가 다수 있다. 이것들을 천연가스 발전소로 새로 지을 때 그 지역이 아니라 전기 생산 능력이 부족한 수도권으로 옮길 수 있다.
다섯째, 수도권에는 택지 개발 및 첨단산업체 입주로 열 수요가 충분하기에 천연가스 발전소가 열과 전기를 함께 생산하는 열병합의 형태로 지어질 수 있다. 에너지 효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에너지 수입 및 온실가스 배출도 크게 줄어든다. 그래서 현재 수도권에 짓기로 논의되고 있는 천연가스 발전소는 대부분 열병합이다.
송전망 확충 어려움을 감안할 때, 수도권 전력 수요 충족을 위해서는 발전능력이 과다한 비수도권의 노후 석탄발전소를 수도권으로 옮기되 가능하면 열병합의 형태로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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