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인터뷰] 마술사 유호진의 ‘걸작(OPUS)’을 향한 여정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마술 강국이다.
실제 마술사 올림픽이라 불리는 ‘FISM(Federation Internationale des Societes Magiques, 국제 마술사 협회)’에서 한국은 2003년 이은결이 매니플레이션 부문에서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매회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또 FISM의 역대 한국인 수상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주인공은 역시 유호진이다.
2012년 영국 블랙풀에서 열린 25회 FISM에서 유호진은 아시아인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로 그랑프리(※각 부문 우승자 중 가장 뛰어난 마술을 보여준 마술사에게 시상하는 종합 우승을 뜻함. 스테이지와 클로즈업 두 부문으로 시상하며, 유호진은 스테이지 부문을 수상)를 수상해 가장 빛나는 마술사에 등극했다.
유호진 이후 아직까지 그랑프리를 수상한 한국인 마술사는 없으며, 아시아로 범위를 넓혀봐도 2018년 27회 대회에서 그랑프리(※클로즈업 부문 수상)를 수상한 에릭 치엔과 함께 유이한 업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유호진은 2014년에는 세계마술협회인 매직캐슬로부터 한국인 최초로 올해의 마술사 상을 수상했고, 2022년에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 시즌 17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최정상급 마술사로 꼽히는 유호진인 만큼, 그의 공연을 보고자 하는 러브콜이 세계 각지에서 끊이지 않았고, 세계 최고의 마술사들이 모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장기 공연을 제안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유호진은 라스베이거스의 제안을 정중히 고사했다. 그리고 그가 대신 선택한 것이 바로 SBS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 매직스타’의 출연이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자리를 거절하고 다시 한번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 유호진은 ‘더 매직스타’에서도 당당히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그 실력과 명성을 입증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 유호진이 ‘더 매직스타’의 출연을 결심한 계기는 심플하면서도 상당히 묵직한 것이었다.
유호진은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오는 데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비슷한 제안은 또 있을 수 있지만 ‘더 매직스타’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서 그렇다. 멋있게 말하자면 ‘도전이 가치 있어서’다. 조금 오만하게 보일 수 있지만 솔직히 ‘한국 마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한국에서 마술계가 10년 동안 대중에 다가가지 못했다. 나도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행복하고 여유 있게 활동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도전하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원초적인 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은결 선배를 보고 마술사를 처음 꿈꿨는데, 이제는 휘발돼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때의 마음가짐을 (도전을 하면서)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라고 ‘한국 마술의 대중화’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유호진이 처음부터 마술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큼직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실제로 그가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유호진은 “FISM에서 그랑프리 우승을 했는데도 한국에서는 알아주지 않았다. 물론 지상파 3사 뉴스에 나오기도 했고, 한동안은 불러주는 곳도 많았다. 그런데 딱 한 달이 지나니까 아무도 찾지 않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에 반해 해외에서는 꾸준히 러브콜을 보냈고, 결국 유호진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했다.
유호진은 “(한국에서) 기회를 계속 기다렸는데, 해외에서 더 불러주고 대우도 좋으니까 결국 나가게 됐다. 한국에서 ‘할 수 있다’고 기다린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 그러다 해외에서 자리 잡은 순간에는 ‘이게 나의 길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너무 속상하다, 아쉽다, 그런 감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속으로는 계속 ‘더 매직스타’ 같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라며 웃었다.
결과적으로 유호진의 선택은 옳았다. ‘더 매직스타’에서 우승을 한 것과 더불어 ‘더 매직스타’ 전국 투어를 비롯해 자신의 이름을 건 단독 마술쇼까지 론칭하게 됐으니 말이다.
유호진은 “마술 공연이라는 건 사람들이 자극적인,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보기 위해서, 신기함을 느끼기 위해서 찾는 공연이었다. 그런데 ‘더 매직스타’ 전국 투어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마술사를 보기 위해 온 공연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한국 마술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전국투어 당시 소감을 밝혔다.
자연스럽게 유호진 개인 팬도 늘어나고 있다. 유호진은 “개인 팬덤도 조금은 실감하고 있다. 활동할 때는 가끔 사인 요청도 받는다. 식당 갔을 때 알아봐 주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종이비행기다’라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유호진이라는 마술사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이제 단독 공연으로 이어졌다. 유호진은 오는 11월 2일 단독 공연 ‘OPUS(오푸스)’의 개최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자신의 이름만으로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마술사는 이은결, 최현우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이제 유호진이 이들의 뒤를 이어 한국 마술계를 이끌 대표주자로 우뚝 선 것이다.
또 ‘OPUS’는 ‘더 매직스타’의 TOP6가 함께 했던 전국 투어와 달리 혼자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공연인 만큼, 유호진은 더욱 화려하고 섬세한 쇼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유호진은 “중간중간 기획 공연을 한 적은 있는데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단독 공연을 개최하는 것은 2019년 이후 처음이다. 단독 공연의 타이틀은 ‘OPUS’로 ‘걸작’이라는 뜻이다. 내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여줄 계획이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마술은 굉장히 화려한 엔터테인먼트다. 그 화려함 뒤에 마술사들이 가진 섬세함이 가려질 때도 있다. 내가 추구하는 공연은 화려함과 함께 그 안에 들어있는 감정이다. 그건 실제로 보지 않으면 느끼기 어렵다. 가수도 영상으로 보는 것과 라이브로 보는 것이 전혀 다르지 않나. 실제로 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섬세함이 있다. 실제로 보면 다 다르다고 하는 이유가 그 섬세함과 디테일 때문이다. 공연장에 오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제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마술사에 등극한 유호진이지만, 자신의 대선배인 이은결에 대한 리스펙트는 잊지 않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유호진이 처음 마술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바로 이은결이다.
유호진은 “사실 나는 이은결 선배를 능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길을 만들어 가려 한다. 이은결 선배가 쌓아온 것은 정말 수많은 시간과 피와 땀이 담긴 그의 작품이다. 이걸 하루아침에 이해하고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술사 유호진의 길’을 개척하고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이은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유호진과 이은결은 사적으로도 매우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유호진에 따르면 자신이 이은결을 존경하는 만큼, 이은결도 유호진을 무척 아낀다고 한다. 단, 그만의 방식으로.
유호진은 “이은결 선배는 끈끈하다. 후배를 엄청 아낀다. 그런데 대놓고 표현을 잘 못한다. 선물을 줘도 ‘고맙다’는 말을 잘 못한다. 감정을 잘 표현을 못해서 혼자 이겨내고, 그 대신 장난을 많이 친다. 그 장난을 내가 다 받고 있다. 전국 투어할 때도 이은결 선배가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하는 토크 코너가 있는데, 유독 내 차례만 되면 계속 딴지를 걸어서 진행이 안 될 정도였다”라며 웃었다.
이처럼 이은결이 쌓아온 업적과 성과에 리스펙트를 보여준 유호진이지만, 마술사로서의 실력과 독창성, 자신감까지 양보한 것은 아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유호진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액트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예언했다.
유호진은 “매니플레이션 부문에서는 약 50년간 오리지널이 없었다. 그런데 그걸 깨트린 게 나였다. 내가 액트에서 하는 기술은 전 세계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다”라고 힘을 줘 말했다.
유호진이 이처럼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배경에는 당연히 피나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가끔 한국의 마술에 대한 미묘한 인식이 조금 아쉬울 때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유호진은 “액트 도중 실수가 벌어지면 나는 그건 수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하나의 액트를 짜면, 연습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다 해본다. 그리고 그때 어떻게 할 것인지 경우의 수를 다 만든다. 그런 작업이 엄청 오래 걸린다. 그래서 액트 하나를 짜고 만들려면 최소 1년, 평균 3년은 걸린다”라고 마술 액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마술사에게는 액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같은 액트를 반복하면 ‘같은 것만 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유호진은 “참 아이러니한 게,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보여준 액트를 한국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다. 그래서 ‘더 매직스타’에서도 다시 보여줬는데, 같은 걸 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실 마술에는 재탕이란 개념이 없다. 어떤 가수가 콘서트에서 자신의 대표곡을 안 부르면 큰일 나지 않나. 마술 역시 그런 개념으로 봐주면 좋겠다”라며 액트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해 주기를 당부했다.
하지만 유호진은 이 역시 뛰어넘어 모두가 보고 싶은 공연을 완성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유호진은 “사실 이제 타이틀은 더 이상 성취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목표는 많다. 전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변함이 없다. 막연하게 최고라기보다 나는 공연장이라서 모두가 보고 싶은 공연이 최고의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누구나 보고 싶은 공연을 만들고 싶다”라고 힘을 줘 말했다.
끝으로 그는 “‘더 매직스타’를 통해서 마술이 알려진 건 너무 자랑스럽고 기쁘다. 하지만 여전히 실력과 재능이 드러나지 않은 마술사도 너무나 많다. 마술에 좀 더 깊게 관심을 가져주면 아름답고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라며 마술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당부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최현정 기자 (laugardagr@etnews.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GMA 조직위, “한동철 등 제작진, MAMA급 연출 적극 추진중”
- 서도밴드가 돌아온다! 'Break Through : 돌파구' 발매 선언
- 82메이저가 돌아온다…'X-82' 예약 판매 돌입
- 방예담, '손보싫'에 설렘 더한다…OST '다가가도 될까' 발매
- '전자음악 선구자' 수잔 치아니, 韓 'sonicBLOOM 2024' 출격
- 마이데이터 '통신 약정' 핵심정보 빠졌다
- 삼성SDI-GM 합작, 최대 1조원 발주 나온다…'보릿고개' 장비업계 수주 기대감
- 전자제품 EPR 전 품목 확대, 입법예고…니켈 등 이차전지 광물 수만톤 재활용
- 레바논 전역서 '띠링띠링'…대규모 폭격 전 문자 보낸 이스라엘 “대피하라”
- “짝은 우리가 찾아줄게”… 日 지자체 '데이팅 앱' 개발해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