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료기기 발목잡는 이중규제 푼다…“인허가 즉시 환자 사용 가능”
현재 인허가 받아도 효능·안전성 또 평가
“인허가 임상평가 강화해 허가 즉시 출시토록”
신의료기술 제도가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을 시장에 빠르게 도입하려고 마련됐지만, 정작 인허가를 받은 기술의 효과와 안전성을 다시 평가하는 이중규제로 도리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혁신을 막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일정 요건을 갖춘 신의료기술은 먼저 시장에 진입시켜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한 뒤에 나중에 효과·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선다. 이른바 ‘선진입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윤태영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팀장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새로운 의료기기의 시장진입 절차 개선방안 공청회’에서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규제당국의 허가를 받은 혁신 의료기기를 곧바로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국내의 경우에는 이미 허가를 받았더라도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해야만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며 “제도 취지에 맞게 차라리 인허가 때 임상평가를 강화하고, 신의료기술 평가를 완화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주관하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렸다.
신의료기술 평가제도는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고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2007년 도입됐다. 식약처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신기술 여부 확인을 거쳐 또다시 효과·안전성을 검증하는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해야만 환자가 사용할 수 있다. 평가 중에는 해당 기기를 판매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비급여 조건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평가 유예제도가 있지만, 인공지능(AI)과 3차원(3D) 프린팅, 로봇 정도로 기술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환자들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새로운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고 의료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목적으로 만든 제도의 취지가 사라지고, 오히려 시장 진입의 문턱만 더 높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심지어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해도 제대로 보험 수가를 받지 못해 기술이 사장되기도 했다.
오상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신의료기술 평가 대상은 의료기술이 아니라 의료인의 의료 행위인 만큼, 그 기술 자체의 성능이 우수하더라도 이 기술이 적용된 의료 행위가 보험 체계에 들어오려면 임상적인 기술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최근 AI, 디지털 치료제, 로봇 등 의료인을 대체하는 자동 의료기술이 많이 나오면서 기기와 행위의 구별이 점점 모호해지다 보니 이 평가제도가 이중규제라는 비판을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기기 인허가 과정에서 기존 임상시험 평가를 강화해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고, 이렇게 허가를 받은 기기에 한해 환자가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오 과장은 “그동안 절차적인 복잡성이나 대상 기술이 협소하다는 지적에 관련 부처들과 많은 논의를 통해 제도 개편 방안을 마련했다”며 “보다 강화된 인허가 임상 평가를 통해 안전성을 담보하면서도, 허가 받은 신의료기술이 빠르게 시장에 나올 수 있게 절차를 간소화하는 선진입 제도를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의료기기 인허가 제도의 임상 평가는 식약처의 임상시험 관리기준에 따라 의료기기의 효과·안전성만 입증하면 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양한 임상 현장에서 기기를 사용했을 때의 효과·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 또, 기존에는 해외에서 개발되고 있는 비슷한 제품들의 판매·허가 현황, 보고된 부작용 등에 대한 자료를 함께 제출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해당 제품의 부작용을 포함한 실제 임상 경험 데이터를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
성홍모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장은 “기존 임상 평가 제도는 안전성을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선진입 제도를 도입하는 동시에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의료기기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환자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비교하는 현장 임상 자료를 평가 항목으로 추가해, 이득이 더 높은 경우에만 제품들을 허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선진입 제도가 도입되면 디지털 치료기기, AI를 활용한 영상 분석, 심전도 예측 등 AI 의료기기, 체외 진단기기부터 우선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성 과장은 “적용 품목은 산업계, 의료단체, 환자 또는 시민단체들을 통해 정기 수요 조사를 거쳐 전면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기 산업계는 정부의 제도 개선 방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권준명 메디컬에이아이 대표는 “엄격한 인허가를 거쳐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데 공감한다”며 “글로벌 기준에 맞춰서 한국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도 “임상평가에 필요한 자료가 늘어나 시간과 비용이 조금 더 들 수는 있겠지만, 시장에 나오지 못해 기술이 사장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며 “일단 국내에서 국제 기준에 맞춰 임상평가를 받으면, 향후 해외 인허가 또는 수출할 경우에도 수월해져 업계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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