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60> 나전칠기 김영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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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위대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큰 업적을 내는 사람을 볼 때 떠오르는 의문이다.
-안녕하세요? 나전칠기를 활용한 예술작품 하나하나 극도로 아름답군요.
장인들의 손 감각으로만 비전되어 온 우리의 전통 나전칠기 기술을 세계인이 즐겨 찾는 예술작품의 경지로 올려놓은 이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스민 은은하고 오묘한 빛의 나전칠기를 깊은 치유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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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시 동향 책도 펴낸 주식전문가
- 10여년 재직하다 옻칠세계 입문
- 해외 유학하며 30년간 작품활동
- 방한 빌 게이츠, 직접 선물 주문
- 그 계기로 잡스도 제작 의뢰
- 교황 앉을 의자까지 만들며 대박
- “심신 힘들 때 비우는 삶 깨우쳐
- 좋아하는 것 찾아 실천하세요”
◇ 김영준의 이모작 귀띔
- 남들이 가는 반대편, 자기가 좋아하고 남들이 행복해하는 일이 꽃길이다
위대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위대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큰 업적을 내는 사람을 볼 때 떠오르는 의문이다. 이번에는 늦게 시작했으나 상상 이상의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는 분을 만났다. 그가 만든 나전칠기의 오묘한 빛은 형언하기 힘들만큼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경기도 양평의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나전칠기를 활용한 예술작품 하나하나 극도로 아름답군요. 전시회의 슬로건이 ‘지나간 30년, 가야 할 30년’인데 무슨 뜻인가요?
▶올해는 제가 나전칠기에 입문한 지가 30년 되는 해입니다. 30년 동안 200점 정도 제작해 온 저의 모든 작품을 총망라하여 전시하는 30년 기념 작품전입니다. 그동안 성과가 없진 않았지만, 다시 30년을 더 나아간다는 결심을 담은 문구입니다.
오늘 만난 이는 김영준(65) 작가다. 미디어 아트에 백남준이 있고, 회화에 이우환이 있다면 나전칠기에는 김영준이 있다 할 정도로 대가가 된 이다. 장인들의 손 감각으로만 비전되어 온 우리의 전통 나전칠기 기술을 세계인이 즐겨 찾는 예술작품의 경지로 올려놓은 이다.
-지난 30년 동안 가장 감회가 깊은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빌 게이츠가 주문 구매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빌 게이츠가 2008년 5월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저의 자개로 입힌 게임기 ‘X박스’를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선물했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스티브 잡스도 2009년 자신의 아이폰에 저의 자기를 입혔고, 2014년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앉으시는 의자를 제작해 드리게 되었었지요.
-아니 어떻게 그 유명한 빌 게이츠가 작가님의 작품을 구매했나요?
▶저는 2007년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 초청으로 파리의 고급 호텔에서 작품 전시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호텔에 유숙하던 빌 게이츠가 전시장을 방문해 ‘코스모스’ 2점과 ‘초충도’ 2점을 사 갔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그가 방한할 때 이명박 대통령께 드릴 선물로 그의 게임기 박스에 나전을 입혀달라는 주문을 다시 하더군요.
빌 게이츠의 주문은 그의 나전칠기 인생에서 대박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2009년 스티브 잡스가 찾았고, 2009년 삼성 지펠 냉장고에 나전 장식을 입혔으며, 2010년 아랍에미리트 공주가 화장대를 구입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옻칠 의자 제작, 2017년 태국 왕실 초청 전시가 잇따랐다. 2024년에는 CNN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GREAT BIG STORY로 방영했다.
-젊은 시절 알아주는 주식 전문가로 활동하셨다던데, 어떻게 인생 전향을 하셨어요?
▶저는 1984년에 동서증권에 입사하여 10년 넘게 활동했죠. 당시엔 우리나라 주식이 최고 호황기였기에 아파트를 3채나 살 정도로 돈을 벌었죠. 하지만 평생 직업으로 있을 곳은 아니더군요. 마침 그때 일본인이 쓴 인생이모작에 대한 책을 읽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인생의 가르침을 많이 주시던 저의 멘토 동서경제연구소 손병두 사장님께서 연구소를 그만두실 때 저도 그 세계를 떠나기로 결심해 버렸죠.
그는 당시 MBC 뉴스데스크와 MBC 라디오에서 3년간 증시 동향을 리포팅하고 책을 쓸 정도로 소문난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그때 필생의 다음 일을 위해 직을 던져버렸다는 것.
-그렇게 해서 차가운 수치와 돈의 세계에서 탈출해 버렸군요. 그런데 어떻게 나전칠기를 하시게 되었나요?
▶정년퇴직 없는 일을 찾다가 예술 쪽을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강원도 산골에서 자랐기에 미대 진학은 못 했지만 소질은 있었거든요. 그리고 고심 끝에 나전칠기를 선택했어요. 나전의 빛이 좋았고 남이 하지 않는 분야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식 강의할 때 항상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고 했는데, 제가 스스로 실천을 한 셈이죠.
-뒤늦게 뛰어들어 위대한 성과를 내었으니, 위대한 노력을 했겠죠?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퇴직한 1995년 38세 때 저는 미국 LA 아트&디자인 아카데미스쿨에 디자인을 공부하러 갔습니다. 2년 동안 공부했죠. 그리고는 귀국해서 양주에 공방을 만들고 강남에 전시장을 열었는데, 몇 년 안 되어 접고 말았죠.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검은색 나전칠기로 된 장롱을 장만하는 시대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택시를 몰다가 다시 이탈리아 밀라노의 도무스 아카데미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장롱에 붙어있는 나전칠기를 떼어내자. 이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자’는 결론을 가지고 파고들었죠. 실험하고 만들고를 반복하는 세월이었습니다. 귀국한 뒤 일본 가나자와에도 2001년부터 2년 이상 공부하러 다녔어요. 오가는 비행깃값 만해도 1억 원 정도 들었지만, 최고 작품을 위해 최고 노력을 쏟아야 했기에 하루 20시간 작업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생계가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재미있었고 돈을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또 오스트리아의 빈이나 두바이 등 해외 여러 곳에서 부지런히 전시도 했었죠.
-초기부터 해외에서 배웠고,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하셨군요.
▶독일 런던 파리 등 여러 곳에서 전시 많이 했죠. 그때 다 판 적이 두 번 있지만, 한 점도 못 팔아 비용만 깨어진 적도 있어요. 그런데 돈은 깨어지지만 나중에 꼭 연결되고 도움이 되더군요. 빌 게이츠도 그때 만난 겁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런던 주영한국문화원(UK. London), 북경 주중한국문화원, 주오스트리아대사관, 삼성전자, 뉴욕한국박물관 등에도 소장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회가 열리는 120평 그의 작업실에는 14자 장롱에 입힌 대작부터 화장대나 항아리 공예품까지, 한 인간의 30년 세월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작품들이 200여 점 오묘한 빛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엄청난 작업량인데 건강은 어떠셨나요?
▶큰 고비가 있었어요. 눈을 많이 쓰는 작업이다 보니 8년 전부터 눈이 멀 것 같았고, 고지혈 고혈압 당뇨 등도 심각했어요. 또 6년 전에는 교황님 의자 제작을 주선하신 홍문택 신부님이 선종하셔서 정신적으로도 최악이 되어버리더군요. 그런데 좀 긴 이야기이지만, 전주시에 계신 신부님이 가르쳐주신 자연치유법으로 약 하나 먹지 않고 거짓말같이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신체 근력과 마음 근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지만 어쨌든 그 고비가 저를 다르게 만들었어요.
-어떻게 다르게 만들었나요?
▶비우는 삶을 알게 된 것입니다. 생활도 작품도 비워야 한다. 심플의 가치, 자연의 이치를 체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앞으로 ‘가야 할 30년’은 ‘자연처럼 물처럼’입니다. ‘지나간 30년’은 좀 더 차별화된 나만의 틈새를 생각하며 뭘 하나 더 넣으면 이쁠까, 그랬는데, 이제는 뭘 하나 뺄까, 라고 모색합니다. 비우고 비우는 자세로 살다 보니, 작품 자체도 계속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전칠기의 세계화 경영을 하셨는데, 앞으로 어느 정도 가능할까요?
▶전번에 CNN에서 취재하면서 이렇게 거대한 일과 작품을 왜 혼자서 하느냐? 정부나 기업 학교가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실제 일본은 옻칠을 정부 차원에서 산업화시켜 세계로 진출하고 있죠. 저의 지난 30년은 가구에 붙어있던 나전 그 자체를 현대적인 미술작품으로 전환시키는 세월이었어요. 자개를 좀 적게 쓰면서 밝게 만들고 입체도 넣으며 세계인의 기호를 살펴왔죠. 나전의 빛은 사랑 치유 행복을 줍니다. 이것으로 보는 이에게 상상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인생이모작을 준비하시는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제 정년은 없다고 생각하시고 자기가 진짜 좋아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해요. 돈도 되면 좋지만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거 좋아하는 거 하면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면 안 돼요. 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는데, 거기서 무너지면 안 돼요. 몇 번 실패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번 일어서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끝까지 못 하면 실패자고, 끝까지 하면 성공자가 되는 거니까 끝까지 가야 해요.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계속 머리 쓰고, 그 몸과 마음을 좀 튼튼히 해야 합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한 번 더하는 실천입니다.
올해는 김영준이 차갑고 혼란한 주식의 세계를 뒤로하고 빛의 세계로 들어간 지 30년이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스민 은은하고 오묘한 빛의 나전칠기를 깊은 치유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세월이었다. 그는 항상 보이는 나전의 빛이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빛까지도 품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거친 세상을 치유하고 행복과 사랑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제 빛의 작가 앞에 전개될 ‘가야 할 30년’은 중력을 개의치 않고 세상을 비추는 별빛의 길과 같다. 길 가는 뭇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가 될 것이다.
※특별후원: BNK 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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