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금값 된 진짜 이유: 중앙은행 현물 사재기와 바젤Ⅲ

한정연 기자 2024. 9. 2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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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상승세 타는 이유
금리인하란 전통적 요인과
지정학적 위기 맞물렸기 때문
중앙은행 익명성 위해 금 사재기
달러 영향력서 벗어나려는 시도
바젤Ⅲ 시행 땐 은행도 금 사재기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서 직원이 골드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9월 24일(현지시간) 금 현물 가격이 트라이온스당 2634.30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값은 9월 들어서만 5.69% 상승했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표준 금괴(12.4㎏) 가격은 이제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금값이 올해 유독 금값이 된 이유를 알아봤다.

■ 관전포인트➊ 전통적 요인=금 현물 가격은 올해 1월 1일 2063.80달러였다. 금 가격은 올해 27.67% 상승했고, 9월에만 5.69%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지난 1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 5.25~5.50%에서 4.75~5.00%로 0.50%포인트 내린 결과다. 연준이 2020년 3월 이후 4년 6개월 만에 금리를 인하하자 금값은 지난 20일 오후 한때 온스당 2620달러선까지 올랐다.

금 가격은 1971년 이후 금리와 반대로 움직였다. 1971년은 금 가격을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했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한 해다. 그 이후 미국 금리가 내릴 때면 금 가격은 대부분 상승했다. 금값은 실질금리의 절대적인 수준이 아니라 금리가 내려가는 방향성에 반응해왔다. 지금이 그런 때다.

금리인하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 자극을 주려는 수단이고, 이는 경기침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얘기기도 하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실물로 존재하는 안전자산으로서 '금'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그만큼 강해진다. 낮아진 금리로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면,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을 찾는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요인 중 하나다.

■ 관전 포인트➋ 중앙은행 사재기=각국 중앙은행은 2022년부터 금 사재기에 몰두했다. 금속 관련 리서치 회사인 메탈포커스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을 2022년과 2023년 각각 1000톤(t) 이상 사들였다. 이는 2021년보다 두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2023년 가장 많은 금을 사들인 건 중국이다. 중국인민은행의 지난해 금 매수 규모는 1977년 이후 가장 많은 225t이었다.

[자료 | 런던금속거래소]

폴란드 중앙은행이 130.03t, 싱가포르 중앙은행이 76.51t을 구매했다. 중앙은행들은 올해 1분기에도 299.94t 규모의 금을 사들였고, 2분기에는 다소 줄어든 183.39t을 구매했다. 2분기 최대 매수자는 폴란드와 인도 중앙은행으로 각각 금 현물 19t을 구매했다.

중앙은행들이 갑자기 금 보유량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안투자 관련 컨설팅회사인 스톤엑스불리언은 중앙은행의 익명성이 중요해진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실제로 중앙은행들은 위기 국면에서 '경제 시스템' 밖에서 익명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축하고 있다. 분명한 전례前例도 있다. 2022년 러시아가 미국의 주도로 국제결제망인 '스위프트 시스템'에서 배제되고, 석유 수출을 제재받았을 때 중앙은행의 사재기가 시작됐다. 금 현물을 경제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은 거다.

현재 세계에서 두개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고, 대만이나 중동에서 제3, 제4의 전쟁이 터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은행이 금 보유량을 늘릴 공산은 충분하다.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려는 나라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통화 전문 컨설팅회사인 미국의 커런시리서치(Currency Research Associates)는 "중앙은행들의 금 수요 증가는 달러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투자은행 JP모건도 지난 3월 리서치 노트에서 "미국과 동맹을 맺지 않은 나라들은 경제 제재에 취약하다"며 "이들이 달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을 축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관전 포인트➌ 폭증하는 현물 수요=최근의 금값 상승은 현물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 유통업체 코스트코는 지난해 8월 온라인에서 금괴를 팔기 시작했다. 웰스파고에 따르면 코스트코는 올해 4월 기준으로 매월 최대 2억 달러 이상의 금괴와 은괴를 팔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금 현물 수요는 각국에서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 중앙은행에서 한 방문객이 금괴를 들어 올리고 있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지난해에만 금 130.03t을 사들였다. [사진=뉴시스]

세계 각국 은행이 앞으로 금 현물을 보유하는 게 더 이득이 되는 점도 현물 수요 증가를 부채질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 산하 위원회는 은행 자본을 규제하는 새로운 기준인 바젤Ⅲ를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바젤Ⅲ는 '금 현물'을 티어3(위험도 어느 정도 존재)에서 위험도가 0%인 티어1으로 분류했다. 은행이 종이에 표현된 금 선물이 아니라 현물을 보유하면 자본 충당금을 그만큼 덜 보유해도 된다는 뜻이다. 금값 랠리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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