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온 수수께끼 소녀들...‘똑단발 칼군무’에 기립박수 쏟아졌다
17인조 교복 댄스그룹 아방가르디
한일 교류 축제 위해 첫 내한
“언어와 상관없이 예술은 통한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일축제한마당.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이었던 2005년 시작해 올해로 20회째를 맞은 이날 행사에는 양국을 대표하는 아이돌과 트로트 가수, 합창단 등이 무대에 올라 관객 6만5000여 명을 상대로 공연을 펼쳤다. 행사가 막바지로 달려가던 오후 4시쯤, 흰 셔츠에 남색 멜빵치마, 어깨까지 떨어지는 ‘똑단발’ 헤어스타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일한 소녀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
이날 일본국제교류기금(JF)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 17인조 댄스 그룹 ‘아방가르디’는 지난해 미국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에 빛나는 일본 가수 요아소비의 ‘아이돌’, 1970년대 히트곡 와타나베 마치코의 ‘갈매기가 날아간 날’ 등에 맞춰 칼 같은 군무를 선보였다. 모든 멤버가 같은 차림에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통일된 안무를 추는 모습에 관객들은 시선을 떼지 못하더니 20분 동안의 무대가 마치고 나서야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아방가르디 멤버들은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많은 해외 공연을 다녔지만, 일한 교류를 기념하는 자리에 초대돼 감회가 새롭다. 많은 한국 관객들이 우리와 함께 춤추고 환호해줘서 기쁘다”고 했다.
아방가르디는 일본 오사카 토미오카고교 댄스 동아리 지도 선생이었던 안무가 아카네(32)가 2022년 2월 현지 댄스 경연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결성했다. 이날 본지와 만난 아카네는 “‘아방가르드(전위 예술)’란 단어에서 착안해 지금까지 없었던 댄스팀을 만들고 싶었다”며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춤을 추면 사람들이 신기해할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아방가르디는 결성 첫해였던 2022년에 이어 이듬해까지 일본 댄스 경연 대회에서 연달아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6월엔 미국 NBC가 주최하는 재능 경연 대회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출전해 세계적 인기도 쌓았다. 당시 첫 무대에서 “우리는 일본만의 혼을 담은 오리지널 댄스를 추는 그룹”이라며 공연을 시작한 이들은 1970년대 여가수 이와사키 히로미의 ‘신데렐라 허니문’에 맞춘 군무를 선보인 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이후 파죽지세로 결승에까지 올랐다.
아방가르디 멤버 ‘소노’는 이날 당시 무대를 회상하면서 “어릴 때부터 해당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 영상으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꿈만 같았다”며 “세계인들을 상대로 공연할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당시 관객석에서 무대를 지켜본 아카네는 “처음 (미국) 관객들은 우리를 ‘장난치러 온 팀’ 정도로 여겼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분위기가 바뀌었고 마지막엔 기립박수도 받았다”며 “일본어 노래 가사를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언어와 무관하게 예술과 재미라는 건 누구에게나 전달될 수 있음을 배웠다”고 했다.
아메리카 갓 탤런트를 계기로 인지도를 높인 아방가르디는 도쿄·나고야·후쿠오카 등 일본 주요 도시는 물론 대만과 홍콩,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으로 공연 순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오는 12월엔 2400여 명이 입장 가능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 80분짜리 단독 콘서트도 연다. 멤버 ‘나가노’는 “일본 관객들은 보통 노래에 맞춰 응원봉을 흔드는 식으로 무대를 관람하는데, 해외 관객들은 함성이나 박수 소리가 커서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도 늘 많은 에너지를 받는다”고 했다. 아카네는 “우리의 강점은 어느 노래에나 맞춰 춤출 수 있다는 것”이라며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문화적 요소를 안무에 집어넣고, 덕분에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공연을 찾아준다”고 했다.
아방가르디가 공연을 준비하는 데엔 하루 10시간 이상의 연습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같은 안무여도 무대 크기와 조명 상황 등에 따라 동선이 달라지고, 새 곡을 연습하려면 각기 다른 멤버들의 키를 맞추려 허리 굽히는 각도까지 하나하나 조정해야 한다.
글로벌 팬들은 아방가르디의 매력으로 이 같은 군무뿐 아닌 멤버들의 독특한 표정을 꼽는다. 통일된 안무가 계속되면 공연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이에 아방가르디는 중간마다 얼굴을 찌푸리는 등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포인트를 준다. 멤버 ‘소노’는 “모두가 각자 집에서 거울을 보며 표정 맹연습을 하고, 후에 연습장에 모여 다 같이 토론한다”며 “관객들이 우리 표정과 안무를 보면서 어딘가 이상하고, 기괴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방가르디는 한일축제한마당 공연을 하루 앞뒀던 지난 21일엔 서울 구로구 서울공연예술고 실용무용학과 학생들을 만나 ‘특별 안무 강습’도 했다. 아카네는 “평소 학생들은 그룹으로 춤을 추는 연습은 잘 하지 않기에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우리 안무를 빨리 익혀서 놀랐다”고 했다. 멤버 ‘코하나’는 “아방가르디의 춤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며 신기하고 멋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아방가르디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이날 멤버들은 이 같은 질문에 “(활동 기간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할머니가 된 아방가르디의 무대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답했다. 멤버 소노는 “‘수수께끼의 교복 단발머리 집단’ 아방가르디의 활동을 한국 팬들도 관심 있게 지켜봐주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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