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스라엘 '3면 전쟁' 치를 수도
이, 공습으로 하루새 500명 사망
이튿날도 대규모 공습···사망자 ↑
레바논 남부선 11만명 난민 발생
헤즈볼라, 접경지에 미사일 반격
이, 선제공격 '도박' 역효과 우려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최대 규모의 공격을 퍼부으면서 양측이 2006년 이후 18년 만에 사실상 전면전 태세에 돌입했다. 연일 계속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에 헤즈볼라가 거센 반격에 나서면서 전면전이 임박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달리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상대로 고전을 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 속에 ‘제2의 가자전쟁’으로 확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군(IDF)은 23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이날 작전을 ‘노던 에로스(북쪽의 화살)’로 명명하고 레바논 전역에서 최근 24시간 동안 약 650차례의 공습을 감행해 헤즈볼라 시설 1600개 이상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격은 지난해 10월 7일 가자전쟁 발발을 계기로 충돌해온 양측의 공격 가운데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492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645명이 부상당했다. 공습은 이튿날인 24일까지 이어졌다. 이날 레바논 보건부는 사망자가 어린이 50명을 포함해 558명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IDF는 헤즈볼라를 겨냥해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면서 레바논이 2006년 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평가했다. 2006년 총 34일간 진행된 ‘2차 레바논 전쟁’ 당시 레바논 민간인 1191명이 사망했지만 이날 하루 공격으로 그 절반에 가까운 피해가 나왔다. IDF 수석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헤즈볼라의 공격용 시설 중 다수가 민가에 숨겨져 있었다면서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를 전쟁터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양측 간 교전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공포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국경 인근 주민들의 피란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레바논 남부에서는 수만 명의 피란 인파가 한꺼번에 도로로 쏟아져나오면서 남부 항구도시 시돈에서 베이루트로 가는 고속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보였다. AP통신은 2006년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피란 행렬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타전했다. 레바논 남부에서는 약 11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전면전이 본격화할 경우 앞으로 피란민 규모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스라엘이 당장 레바논 침공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겨냥한 공세 수위를 급격히 높인 것은 그동안 헤즈볼라와 벌여온 무력 충돌을 멈추기 위한 일종의 ‘도박’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은 공격을 강화해 자국이 (헤즈볼라의 개입에) 얼마나 단호한 입장인지를 보여줄 경우 헤즈볼라가 물러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선제공격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공격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 17일 무선호출기 폭발 사고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이 1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지만 헤즈볼라가 굴복하기는커녕 보복 의지를 더욱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접경지를 겨냥해 80여 발의 미사일 등을 쏘며 반격했다. 여기에다 친이란 세력, 이른바 ‘저항의 축’이 가담할 경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포함해 국토의 3면에서 적과 싸워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NYT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공격 의지를 꺾지 못한 채 군사적 압박 수단이 소진될 경우 결국 지상군을 동원한 침공 외에 다른 선택지가 남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지상전에 나설 경우 장기간 교착 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헤즈볼라는 중무장한 비국가 조직 중 세계 최강 전력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헤즈볼라가 3만~5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헤즈볼라는 10만 명 이상의 대원과 예비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1년 가까이 지속된 전쟁으로 가자지구에 동원됐던 이스라엘 예비군의 피로감은 매우 높은 상황이며 최근 들어서는 해외로의 인력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NYT는 이스라엘군이 11개월간 전투를 벌이고도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완전히 패배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헤즈볼라는 가자보다 더 크고 산이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 있으며 하마스보다 잘 훈련된 군대와 정교한 요새를 갖췄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선전포고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전면전에 돌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미 나더 레반트전략문제연구소 소장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관심이 가자지구에서 옮겨간 레바논이 현재 제1전쟁 지역”이라며 “현 상황은 전면전”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23일 전면전 단계로 접어들었다. (사상자 수는) 헤즈볼라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헤즈볼라는 더 깊숙이 타격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전쟁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고 공격·반격의 악순환을 끊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긴장이 고조됨으로써 상황이 완화된 시기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입장과 다른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의 전략에 반대한 것이다.
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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