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샤워실에서 들려오는 바보들의 합창
가계대출·의료대란 등 연이은 정책 실패
국민 피해에도 책임지는 정부 인사 없어
새로운 인선 역시 현안 해결 기대 힘들어
끝없는 ‘불통’ ···'나만의 길' 고수 하는 듯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필자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걸까.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비유한 ‘샤워실의 바보’는 샤워를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뜨거운 물에 데거나 찬물에 놀라 샤워실을 뛰쳐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샤워실에서는 바보들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여전히 찬물과 더운물을 번갈아 틀어가며 기괴한 합창을 하고 있다. 샤워실에서 들려오는 바보들의 합창에 국민들은 피로감을 넘어 공포에 질려간다.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분명한 것은 최근 집값 상승의 주범이 정부라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대패한 문재인 정부 5년이 막을 내린 후 샤워실에 입장한 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수도꼭지를 180도 거꾸로 돌렸다. 집권 초기 세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던 시기에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각종 규제를 풀었다. 재건축 규제 완화,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경감, 안전진단 기준 완화에 이어 보유세 부담을 낮춰가면서 집값 반등의 불씨를 키웠다.
그리고는 기름을 부었다. 2022년 하반기 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단행한 금리 인하와 수십조 원 규모의 정책대출이다. 이 무렵 샤워실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던 인물이 바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그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종횡무진하며 ‘상생’을 외쳤고 금융권은 신속한 금리 인하로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3월 9일 KB금융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원장이 상생 금융을 강조하자 KB국민은행은 즉시 가계대출 금리 0.5%포인트 인하를 결정했다. 이를 두고 이 원장은 “시의적절하다”며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던 그가 집값이 들썩이고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다시 이렇게 말한다.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 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안정화되던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7월 2일 금감원 임원회의).” 이후 벌어진 금융시장에서의 혼란과 금융 당국 간의 엇박자, 결국 사과한 이 원장의 발언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이제 다른 합창을 들어보자. 정치판이 총선 국면으로 진입하던 무렵인 2월 초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파격적인 계획을 발표한다. 그리고 7개월.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났고 ‘응급실 뺑뺑이’ 뉴스만 들려오는 동안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던 인물은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다. 2월 ‘의새’ 발언을 시작으로 그의 ‘아리아’는 모든 이들의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의대 증원 정책의 근거 중 하나는 여성 의사 비율 증가” “환자 스스로 병원에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 등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물론 최소한의 상식조차 없어 보이는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이다.
총선을 열흘 남긴 4월 1일 대통령은 “정부가 충분히 검토한 정당한 정책을 근거도 없이 힘의 논리로 중단하거나 멈출 수 없다”고 압박의 강도를 높였지만 5개월여 만에 정부는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은 원점에서 재논의할 수 있다”며 한발 빼는 모양새다. 선거만을 겨냥해 내놓은 설익은 정부 정책이 어떤 결과로 마무리될지 국민들은 여전히 초조하게 지켜볼 뿐이다.
프리드먼 교수가 ‘샤워실의 바보’라는 비유로 지적했던 것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정책적 어리석음이 결국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행정이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라면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정책을 총괄했던 사람들은 그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2024년 대한민국에서 걱정스러운 대목은 이미 치명적인 실패를 한 정부의 책임자들이 샤워실에서 퇴장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에 더해 우려스러운 인물들이 새롭게 ‘입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적한 현안을 균형감 있게 해결해낼 듯한 인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샤워실에 모인 이들이 부르는, 듣기에 참으로 불편한 합창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앞으로도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지지율 20%의 대통령이 ‘내가 싫으면 여당 대표건, 누구건 만나지 않겠다’는 불통인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그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길을 가고 있다. 아, 샤워실에서 들려오는 합창곡이 ‘마이 웨이’였던가.
박태준 기자 jun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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