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 107명 "육아휴직자 차별, 강한 분노"
사측, 육휴 다녀온 기자 해외연수 지원자격 박탈
기자들, 책임자 공개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 촉구
한국일보 기자들이 육아휴직을 다녀온 기자의 해외연수 지원 자격을 박탈한 회사 측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24일 나온 해당 성명엔 평기자에서 차장, 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등 107명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성명에서 “참담함을 느낀다”고 했다. A 기자에게 해외연수 추천 대상자 선발 탈락을 통보하며 그 사유로 ‘육아휴직 사용으로 인한 업무공백’을 언급한 이성철 한국일보 사장, 김영화 뉴스룸국장 등을 향해 기자들은 “그간 한국일보는 기사와 오피니언 칼럼에서 시대착오적인 기업의 육아휴직 사용자 차별을 꾸짖었고, 저출생을 야기하는 사회 곳곳의 구조와 제도를 비판했다”며 “그 동안 숱하게 비판하고 지적해온 이 같은 보도에 한국일보는 떳떳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8월29일 한국일보는 ‘외부기관 해외연수 추천 대상자 선발’ 심사에서 A 기자를 탈락시키며 그 사유로 육아휴직을 언급했다. 이성철 사장, 권동형 전무, 이태규 논설실장, 김영화 뉴스룸국장 등이 면접관으로 참여한 해당 면접에서 이 사장은 A 기자에게 “최근 10년간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많았다. 연수보다 계속 업무를 하면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9월6일 김 국장은 “가장 걸림돌이 된 게 출산, 육아휴직 때문에 적지 않은 공백이 있는 상황에서 연수라는 자발적인 업무 중단을 다시 받아들여주는 게 맞느냐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다른 사람하고 똑같은 조건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하며 탈락을 통보했다.
이 같은 사측의 조치에 한국일보 기자들은 “엄연한 불법”이라며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고 정한다. 회사는 지원자의 탈락 사유를 경영진과 인사권자의 종합적 판단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면접 심사와 탈락 통보 과정에서 육아휴직을 주요 결격 사유로 공공연히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분명한 위법”이라고 했다.
성명에 따르면 A 기자는 입사 후 만 15년의 재직 기간 동안 세 자녀를 출산하며 법이 보장한 육아휴직을 3회 사용했다. 해당 기자는 경제부, 사회부, 정책사회부, 어젠다기획부, 문화부 등에서 두루 일했고, 한국여성기자상,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민주언론상, 노근리평화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일보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도 기여했다.”
기자들은 성명에서 “정원 2명의 심사에서 굳이 1명만 합격시키는 회사의 조치 속에 (A 기자)는 자격미달자로 몰렸다”고 우려하며 “탈락 통보 이후, 해당 지원자에게 닥친 상황은 더 당황스럽다. 부서장이 국장과의 면담에서 회사결정의 위법 소지 등 문제점을 보고하고 추가 대화를 위한 지원자와 사장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사장은 국장을 통해 면담조차 거절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책임자들은 진솔하게 공개 사과해야 한다. 확실한 재발 방지책 마련도 촉구한다”며 “이미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 어떤 추가 피해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전날 한국일보 노조는 성명을 내어 “육아휴직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는 사측의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앞서 한국일보 경영진은 “연수 대상자를 꼭 선발해야 하는 의무가 아닌 경영적 판단에 따른 인원 선발의 과정이고, 경력단절을 언급한 취지가 육아휴직으로 인한 것이 아닌, 데스크 역할 더 나아가 부장급의 역할을 하기 위해 현재 역량을 키워야 함을 논하는 차원에서 언급이 된 것”이라며 “본인이 제출한 경력개발계획과 연수지원서 및 인터뷰 상 얘기했던 내용과는 상이한 부분이 있다. 따라서 회사에서는 지원자를 선발하지 않을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노조에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는 23일 성명에서 “회사가 ‘업무 공백’을 언급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차별이자, 불리한 처우에 해당되는 위법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또 사측의 ‘연수 대상자를 꼭 선발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일보지부는 “특파원처럼 반드시 선발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연수 선발 탈락을 ‘불리한 처우’로 볼 수 없다는 취지”라며 “해외연수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회사의 대표적인 복리후생 제도다. 복지혜택을 누릴 기회를 배제시키는 것이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면 무엇이 불리한 처우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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