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궁-Ⅱ' 이라크 수출도 차질 빚나… 방산사업 잇단 표류에 방사청도 골머리
LIG넥스원 "요청에도 답 없어 과거 협의 적용"
정찰용 무인수상정 사업도 방첩사가 조사 중
KDDX 사업선 고육지책 대안... "현실성 없어"
국내 방산업체들이 사업 규모 약 3조7,000억 원에 달하는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 ‘천궁-Ⅱ’를 이라크에 수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납품 가격과 기한 문제로 이견이 커지면서 수출에 차질을 빚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해군의 ‘정찰용 무인수상정’과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에 이어 굵직한 방산 사업들이 잇따라 업체 간 파열음으로 표류할 위기에 놓이면서 중재에 나선 방위사업청도 골머리를 썩는 모양새다.
방사청, LIG넥스원과 한화 불러 중재
24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이날 천궁-Ⅱ의 이라크 수출과 관련해 LIG넥스원과 한화그룹 방산기업인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불러 이견을 조율했다. 앞서 LIG넥스원은 지난 20일 이라크 국방부와 3조7,135억 원 규모의 천궁-Ⅱ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천궁-Ⅱ 포대는 8개 발사관을 탑재한 발사대 차량 4대와 다기능 레이더, 교전통제소 등으로 구성되는데, 미사일과 통합 체계는 LIG넥스원, 레이더는 한화시스템, 발사대와 차량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각각 생산한다.
문제는 LIG넥스원이 한화 측과 납품 가격과 납기 날짜를 합의하지 않은 채 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납품 가격과 납기에 대해 상세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이 이뤄졌다”며 “LIG넥스원이 납기 등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LIG넥스원 측은 “수출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에 가격과 납기를 제시해달라고 한화 측에 요청했다”며 “한화에서 답변이 없어 지난 5월과 7월에 각각 협의한 납품 가격과 납기를 기준으로 계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방사청이 이날 LIG넥스원과 한화 간 중재에 나섰지만, 사업 규모가 워낙 커서 단시간 내에 이견이 조율되긴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다. 양측 합의가 지연될수록 천궁-Ⅱ 수출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다만 한화 관계자는 “이런 문제로 이라크 수출을 파투 내자는 건 전혀 아니다”라며 “LIG넥스원에 최대한 협조를 하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 몸집 불리기 나서며 갈등 과열 양상"
최근 대형 방산사업이 업체 간 갈등으로 차질을 빚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앞서 LIG넥스원은 지난 11일 방사청의 '정찰용 무인수상정(USV) 체계개발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기술자료를 한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LIG넥스원에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방첩사령부 조사를 받는 중이다. 이 사업을 놓고 경쟁했던 한화시스템은 혐의가 입증되면 우선협상대상자 취소 소송 등 법적 조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걸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선 방사청이 적극 중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유출 혐의가 입증돼도 규정상 LIG넥스원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는 유지된다”며 “소송전이 진행되면 수년간 사업이 표류할 수 있기에 방사청이 나서서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갈등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KDDX 사업은 6,000톤급 신형 구축함 6척을 2030년까지 실전 배치하는 프로젝트다. 개발비 1조8,000억 원에 건조비로만 6조 원이 투입된다. 그런데 현재 경찰은 2020년 당시 왕정홍 방위사업청장이 KDDX 사업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고, 한화오션은 2012~15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행위 당시 임원도 개입했다며 지난 3월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며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업체 선정을 차일피일 미뤄오던 방사청은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공동 개발, 동시 발주, 동시 건조’라는 고육지책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전례가 없는 일인 데다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어려워 현실성이 없는 방안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강은호 전북대 방산연구소장은 “한화가 국내 방산업계에서 몸집 키우기를 하며 협상과 협력보단 부딪히는 방식으로 일을 추진하다 보니 갈등이 과열되는 것 같다”면서 “국내 업체들끼리 감정이 쌓이다 보면 해외 수주전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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