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장형진 영풍 고문 "적대적 M&A, 어느 편에서 하는 말인가"
"주식은 소유해도 기업은 소유할 수 없어…고려아연 주인 바뀌어도 잘 되길 바라"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장형진(78) 영풍 고문은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의 동맹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 고문은 "적대적 M&A라는 건 어느 편에서 보고 얘기하는 건가"라며 고려아연은 1974년 영풍의 자본과 직원들로 세워진 회사라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49) 고려아연 회장에 대해선 대체로 말을 아꼈으나 나이와 경영 스타일 차이로 소통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오랜 공동경영이 파기된 계기로는 지배력 강화를 위한 최 회장 측의 일방적인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상호 교환 등을 언급했다.
장 고문은 1970년 연세대 상경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영풍에 입사해 1993년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2015년부터는 ㈜영풍 고문으로 있다. 장 고문은 공정거래법상 공시대상기업집단 영풍그룹의 동일인이다.
다음은 장 고문과의 일문일답.
-- MBK파트너스와의 동맹은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심의 배경을 설명해달라.
▲ 신문 보면서 기업 경영하는 사람들이 형제, 가족들끼리 싸우고 그러면 창피하게 왜 저러나 했다. 우린 남남 동업끼리도 안 그랬는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동업을 2세대, 3세대까지 하느냐' '어떤 비결이나 철학이 있느냐' 하고 묻는데 뭐가 있겠나. 그냥 상대방이 싫어하는 거 안 하면 된다. 자기 욕심만 부리면 동업하지 못한다.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과) 오랫동안 경영해서 서로 뭘 좋고 싫어하는지 잘 안다. 그런 행동만 안 하면 동업이 되는데 나는 2세대고 최윤범 회장은 3세대다. 안타깝게도 나이 차도 있고, 내 큰아들보다도 어리고 그러다 보니 잘 통하지가 않았다.
고려아연은 1974년에 영풍이 설립했다. 당시 영풍과 장씨 일가 지분이 99.93%였다. 고려아연은 100% 영풍이 자본과 제련기술자들을 보내 만들었고 부친(고(故) 장병희 창업주)이 10년간 고려아연 회장을 하면서 일궈낸 회사다.
-- 공동 경영의 시대가 여기서 마무리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은.
▲ 1세대는 장병희·최기호 창업주 두 분이 (지분을) 50%씩 나눠 가졌다. 2세대로 오면 우리 집안은 형제가 둘이라 25%씩 나눠 가졌다. 3세대로 오면 수가 많아진다. 여기에 또 증여세, 상속세도 들지 않나. 그래서 1% 이상 가진 3세가 최씨 가문에선 사실상 최윤범 회장 1명밖에 없다. 두 세대 거치고 나니 그렇게 되더라.
또 항상 기업은 전문 경영인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주주에 대한 보답이다. 제일 싫어하는 게 우리나라 많은 기업이 기업공개는 기업공개대로 해놓고 주식은 15∼20%만 가진 채 개인 회사처럼 운영을 하는 곳들이 많다. 이건 아니지 않나.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 한다. 외국기업들 보면 MBK파트너스 같은 회사가 중간에서 이런 일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자식이 물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물려받은 기업이 잘 되는 경우보단 잘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 당장 경영권 분쟁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평소 가진 생각인가.
▲ 그렇다. 영풍은 10년 전에 내가 회사를 나왔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다만 나 몰라라 할 순 없어서 고문직으로 있다. 사실 MBK를 생각한 것도 내가 아니라 영풍 경영진이었다.
-- 처음 언제, 어떻게 MBK와 연락했나.
▲ 솔직히 언제,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회사(고려아연)에 가끔 나가면 정말 대화가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제련업을 하니까 통할 줄 알았는데 도대체 말이 안 통했다. 그러던 차에 고려아연이 한화, 현대차 등과 신주 발행, 지분 교환을 진행하는데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반대했다. 그런데 전혀 얘길 듣지 않았다. 그래서 (영풍 경영진이) '우리도 수단을 강구해야겠다'라고 하니 '그러면 한번 생각해봐라. 어떤 좋은 생각이 있겠냐' 그랬다. 그러다가 MBK에 가서 상담을 하고 경영협력계약을 하게 됐다. 내가 늘 생각하던 아이디어였다. 주식이 있다고 해서 꼭 경영을 해야 할까. 우리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와서 회사 가치를 올려놓으면 더 좋고 회사도 오래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신문 보니 적대적 인수·합병이라고 기사들이 나오더라. 적대적 M&A라는 건 어느 편에서 보고 얘기하는 건가. 우리가 이들(MBK)과 손잡았다고 해서 적대적인가. 난 적대적이지 않다. 고려아연을 살리려고 한 사람이고, 한번 더 모범을 보이겠다는 거다. 그래서 이 계약 마지막을 보면 우선매수권을 우리가 갖고 있다. (MBK가) 잘 못하고 주가도 떨어지면 우리가 다시 사고, MBK가 잘해서 더 잘하는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걸 적대적 M&A라고 하면 사실과 맞지 않는다.
-- 왜 사모펀드를 택했으며 그중에서도 왜 MBK파트너스인가.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았나.
▲ (경영권을 가진 지분인지 아닌지 불확실해) 살 곳이 없었다. 공식 검토를 해본 건 아니지만 상당한 자본이 들어가 웬만한 데서는 건드릴 수가 없다. 이런 걸 다룰 수 있는 건 MBK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당히 모범적이고 진취적이고, 여러 가지 조사하고 믿음직한 회사라고 판단해 결정하게 됐다.
-- 국가기간산업인데 지역사회와 노조, 정치권의 반발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나. 이런 여론이 기관투자자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은데.
▲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그러나 회사가 어떤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경영된다고 하면 그건 물리쳐야 하지 않겠나. 제일 중요한 건 주주다. 우리를 믿고 돈을 맡겨준 주주를 믿는다. 그게 제일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분들이 이번(공개매수)에 동참도 해주실 거다.
-- 최윤범 회장과 대화로 풀어보려고 노력하진 않았나. 가장 최근에 본 건 언제인가.
▲ 2∼3달 전이었다.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는데도 강행했다. 전부 다 반대했는데 몰아붙였다. 그 얘긴 결국 '나 당신이랑 안 하겠소'라는 말이다. 최창걸 회장이 있을 땐 긴밀하게 소통했는데 지금은 단절됐다. 우리 윗세대는 어떻게 살았냐면, 정전(停戰) 이후 가족들끼리 '무슨 일이 벌어지면 최기호 회장한테 가서 얘기해라' 그러면서 살았다. 양 가문이 다 황해도에서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 서로 부족하니까 회사를 만든 거다. 나는 아버님들이 어떻게 회사를 만들어왔는지 다 보고 자랐고 최창걸 회장과도 그렇게 했지만, 최 회장은 중학생 때 미국에 가서 서른이 넘어 돌아왔다. 그래서 아버지와 우리들이 얼마만큼 했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 최창걸 회장 말고는 양쪽 집안에서 의논할 상대방이 없었나.
▲ 없다. 최창걸 회장이 동생 넷이 있는데 주로 최창걸 회장과만 소통했다. 최창걸 회장은 작년 초부터 만 2년 정도 코마 상태에 있다.
-- 자제분들을 비롯한 장씨 일가들은 이번 결정에 모두 동의한 것인가.
▲ 걱정을 많이 했다. 집사람은 무조건 내가 하는 일에 다 찬성해줬지만 자녀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줘야 할지 몰랐다. 신문에 나오는 (재벌 기업들끼리 싸우는) 거랑 똑같은 얘기인데 아주 창피스러웠다. 어떻게 얘기해야 애들한테 수긍이 가게 할까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은 우리 회사가 이렇게 커진 건 많은 주주 덕분 아니냐, 주주를 위한 길을 가야 한다, 지금 이렇게 가다간 양쪽 회사가 다 나빠진다, 하면서 이렇게 모범 한번 보이겠다고 하니 다들 찬성해줬다. 고마웠다.
-- MBK와의 공개매수는 '우리(장씨 일가) 없는 고려아연으로 두느니 너희(최씨 일가)도 쫓아버리겠다'는 취지로 느껴진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 그렇게 바라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회사와 주주들을 위해 어떤 결정이 좋은 결정이냐는 거다. 나는 개인이고 회사는 주식회사다. 주식회사는 주주들이 있다. 주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걸 봐야 회사가 오래 간다. 내 생각을 갖고 내 이익을 위해 경영하면 회사는 개인 것이 되는 건데 회사는 장난감이 아니다.
-- 일각에서는 영풍 실적이 너무 안 좋고 고려아연 배당으로 연명하는 상황에서 나온 불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 그 얘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영풍은 1969년에 석포제련소를 만들었다. 거기서 번 돈으로 고려아연을 지었고 당시 부장, 차장급은 다 고려아연으로 갔다. 우리나라에 환경 법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전까진 환경이라는 걸 몰랐다. 그러다가 석포제련소 있는 곳이 청정지역으로 정해져 일반 강물보다 10배 강한 규제를 받았다. 그런 규제를 받아 아무래도 석포제련소가 조업을 잘 못하고 그런 게 있다. 제련업은 굉장히 물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 지금은 폐수를 전기로 증발시켜 원가가 굉장히 비싸졌고 조업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지금도 여러 공사를 하고 있는데 계획상 내년에 끝난다. 이걸 하는 동안은 실적이 좋을 수가 없다. 내년이 지나면 달라질 거다.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보다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
▲ 그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우선 제일 문제가 됐던 공해를 막고, 그다음 조업 효율성을 높이는 건 우리가 찾아야 한다.
-- 경영 기풍 차이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영풍은 안정적으로 차입경영을 하지 않고 보수적으로 해왔는데 최윤범 회장은 2차전지 소재와 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을 공격적으로 벌이는데 여기에 대한 의견차 때문에 갈등이 생긴 것 아닌가.
▲ 그런 부분도 있다. 사실 하나만 갖고 성공하기도 엄청 힘들다. 하나 제대로 하기도 하늘의 별 따긴데, 그렇게 벌려놓으면 어디로 중심이 가겠냐는 거다. 그래서 나는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하자는 거였고 그런 면에서 의견차가 조금 있었다.
-- 신사업 개척에 반대한다는 건.
▲ 절대 아니다. 새로운 흐름은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
-- 공개매수 성공 시 고려아연의 경영은 어떻게 되나. 앞으로도 고려아연 이사회에 계속 참여할 생각인가. 최윤범 회장이 추진하던 신사업(트로이카 드라이브)은 어떻게 되고 최 회장 우군인 한화 등 대기업들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 이사회 참여는 계속할 예정이다. 앞으론 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회사에 들어오면 현재를 존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고려아연은) 몇 년은 그대로 가는 게 제일 좋다. 만약 MBK에서 물어오면 내 의견은 이렇다. 현 체제를 유지할 거다. 이전 사람들이 그렇게 한 건 이유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자리 차지하면 제일 먼저 이전 사람이 했던 걸 없애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오랫동안 거기에서 그렇게 했던 이유가 있다. 한 몇 년간은 지금 방향 그대로 하면서 뼈로 느껴야 한다.
-- 공개매수가 실패하면 남은 고려아연 지분은 어떻게 하나.
▲ 지분 팔고 떠나는 건 아니다. 영풍은 영풍대로, 고려아연은 고려아연대로 할 일이 있다. 더 나빠지지 않게 지금 체제에서 계속 얘기하겠다.
-- 기관투자자나 다른 기업, 그리고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내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나. 사람들에게 좀 더 모범적으로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건데 이렇게 됐다. 같은 세대에선 동업이 되는데 생각 차이가 달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 같다. 누가 나쁘고,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 죄송할 따름이다.
-- 영풍그룹 역사상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한 셈인데 돌아가신 창업주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 나더러 죽일 놈이라고 하실 거다. 그럴 거다. 고려아연은 주인이 어떻게 바뀌든지 영원히 잘 가길 바라고 또 바라는 바이다. 우리 아버님 세대가 만들었지만 그게 꼭 우리 손에 의해서만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다. 주식은 소유할 수 있어도 기업은 소유할 수가 없다. 소유한다고 생각했을 때 회사는 망한다. 그게 내 생각이다.
장형진 고문 "선친 세대가 만든 고려아연…꼭 우리 손 아니어도 된다"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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