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명예훼손' 수사 검찰, 기자 휴대폰 비밀번호 훔쳐갔다
검찰이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당사자 동의 없이 불법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들의 휴대전화에는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취재원과 취재 정보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러나 검찰은 '언론 자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불법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불법 압수수색을 당한 기자들은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비밀번호를 수사기관에 알려줄 의무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검찰은 우리가 휴대전화의 잠금을 스스로 풀도록 유도하는 방식 등으로 비밀번호를 훔쳐갔다”고 입을 모았다.
"휴대전화 잠금 풀게 만들고, 비밀번호 몰래 훔쳐봤다"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언론인 중 검찰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부당하게 획득해 갔다고 증언한 기자는 총 3명이다. 이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
지난해 9월 14일 주거지와 사무실을 동시에 압수수색 당한 뉴스타파 한상진 기자는 "압수수색 현장에서 수사관이 휴대전화 잠금 해제 패턴을 몰래 훔쳐보는 바람에, 저 같은 경우에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여부를 두고 검찰과 다툴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본격적인 압수수색 집행에 앞서 변호사와 통화하기 위해 빼앗긴 휴대전화를 잠시 돌려받았다. 이후 통화를 위해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수사관이 잠금 해제 패턴 모양을 훔쳐보고 곧바로 메모장에 기록해갔다고 한다.
"처음에 휴대전화를 압수해 갔다가 제가 변호사한테 연락을 해야 된다고 했더니 휴대폰을 다시 줬어요. 그러고 나서 휴대전화를 켜고 (잠금 해제) 패턴을 푸는데 그거를 딱 보더니 바로 A4 용지에 내 패턴을 딱 기록하더라고, 수사관이. 그래서 포렌식 과정에서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문제에 대해 실랑이할 필요가 없었어요."
- 뉴스타파 한상진 기자
지난해 12월 26일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 당한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는 “디지털 포렌식 참관을 위해 서울중앙지검 디지털포렌식팀에 갔을 때 수사관이 가르쳐주지도 않은 내 휴대전화 잠금 해제 패턴을 풀어서 그 경위를 따져 물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검찰이 휴대전화 잠금 해제 패턴을 몰래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에게 연락하라고 유도한 뒤, 비밀번호를 파악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상진 기자에게 했던 방식과 동일한 수법이다.
"압수수색 당일 (검사가) ‘변호사에게 연락하라’고 했어요. 검사와 수사관 여러 명이 들이닥쳐 정신이 없잖아요. 이건 추정이지만, 휴대전화를 맡는 담당자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쫄쫄 따라오면서 (잠금해제) 패턴을 봤다는 거예요. 내가 비밀번호 안 가르쳐줄 수도 있으니까 변호사한테 연락하라는 한 다음 (패턴을) 파악해 기록한 거겠죠. 이게 수법이구나, 내가 당했구나 싶었어요."
- 뉴스버스 이진동 기자
익명을 요구한 A 기자는 "지난해 집에서 압수수색을 받을 때 수사관이 언제부터 휴대전화를 사용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해서, 휴대전화의 잠금을 열었는데 옆에 서있던 수사관이 내 비밀번호를 훔쳐본 뒤 종이에 적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A 기자는 이런 식의 압수수색이 불법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이후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문제 제기를 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아래는 A 기자의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이다.
"비밀번호를 감출 생각은 없었는데, 수사관님이 언제부터 (휴대전화를) 사용했는지를 알아야 된다고 해서 제가 비밀번호를 풀어서 사용기간을 말씀드렸고, 그 과정에서 수사관님께서 제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밀번호를 적어드렸습니다. 비밀번호를 숨길 생각은 없었는데…저는 (검사나 수사관이) 옆에 서 있다가 비밀번호를 보는 게 절차상으로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A 기자 피의자신문조서 중
'비밀번호 훔쳐보기'는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 위반
피압수자의 동의 없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훔쳐보는 방식으로 사실상 '탈취'하는 행위는 위헌 소지가 있다. 헌법 제12조 제2 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나에게 불리할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진술거부권'이다.
헌법이 보장한 진술거부권이 명백히 존재하는 만큼, 휴대전화 비밀번호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이라고 생각한다면 수사기관은 피압수자가 자기방어권을 포기하고 복종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수사기관이 기술적인 방법으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해제할 수는 있지만, 피압수자가 비밀번호를 스스로 제공하도록 해선 안 되는 것이다.
피압수자가 압수수색 과정에서 ‘수인의무’, 즉 국가의 기본권 제한 행위를 참고 받아들여야 하는 헌법적 의무만 지면되는 것이고, '비밀번호 제공' 같은 적극적인 협조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학설도 있다.
사법정책연구원의 박병민 판사는 2021년 출간한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필요한 처분’은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영장의 집행 과정에서 하는 적극적 행위를 의미하고, 피압수자 등은 그에 대한 수인의무가 있을 뿐이다. (수사기관은 피압수자에게) 소극적 수인의무를 넘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적극적 행위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검찰, 압수수색영장 청구서에 'CCTV' 왜 포함하나 봤더니
수사기관이 피압수자의 휴대전화 잠금을 풀기 위해 여러 기법을 동원한다는 것은 법조계에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형사소송법 제120조 제1항은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있어서는 건정(잠금장치)을 열거나 개봉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수사기관은 이 조항을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잠금장치와 비슷하니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전자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일반적인 금고나 자물쇠처럼 해석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 조항을 근거로 휴대전화 잠금을 풀기 위해 여러 기법을 동원한다. 이창민 민변 사법센터 검경개혁소위원장은 "엘리베이터 등에 설치된 폐쇄회로 촬영물(CCTV)을 통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파악하기도 하며, 이는 피압수자 동의 없이 사실상 비밀번호를 탈취해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 압수 목록에는 폐쇄회로 촬영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개는 영장에 ‘각 항의 자료의 소재를 파악하거나 증거를 인멸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폐쇄회로 촬영물 및 관련 자료’라고 적혀 있다.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리포액트 허재현 기자의 압수 목록에도 CCTV가 포함됐다.
불법 압수수색까지 동원해 수사했지만, 범죄의 증거는 없었다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5개 언론사, 8명의 전현직 기자를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했다.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부산저축은행을 수사할 때, 윤석열 주임검사가 대장동 불법 대출 및 대출 브로커 조우형의 범죄 혐의점을 잡고도 봐줬다는 내용이다. 각 매체의 기사들은 관계자 증언과 경찰 및 검찰 수사기록, 정영학 녹취록 등에 근거한 대선 후보 검증 보도였다.
검찰은 기사가 모두 허위라고 단정하고, 기자들이 허위임을 알고도 악의적으로 기사를 썼기 때문에 윤석열 후보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불법 압수수색까지 벌이면서 수사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검찰은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이 재판부에 낸 물증도 거의 없었다. 검찰의 증거는 대부분이 남욱과 조우형 같은 검찰 측 증인들의 진술뿐이었다.
뉴스타파 이명선 sun@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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