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사수 외친 고려아연 기술자들…최 회장도 곧 나선다
이제중 부회장 "이그니오 투자, 분명 성공할 것"
"MBK 아니라지만…中 기술유출 뻔해" 거듭 주장
"우리의 기술, 우리의 노하우, 우리의 50년 역사가 저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이제중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부회장)이 영풍과 MBK파트너스로부터 경영권 위협 공세에 대해 결연한 반대 의지를 표명했다.
영풍의 장형진 고문을 겨냥한 발언도 던졌다. 영풍이 석포제련소의 경영 실패로 환경오염과 중대재해를 일으켜 국민에게 빚을 졌으면서도 기업사냥꾼인 투기 자본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노리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40년간 기술자로서 기업 성장의 백스테이지를 지켜온 이제중 부회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카메라 앞에 나선 데는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영풍이 최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무리한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면서다.
영풍, 고려아연에 폐기물 떠넘기려 해…거절하자 갈등 시작
24일 이제중 부회장과 회사 핵심 기술인력들은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고려아연 본사에서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M&A의 부당함을 국민께 알리고자 한다”며 “피와 땀으로 일궈온 고려아연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장에 작업복 차림으로 연단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50년간 축적한 세계 1위 제련 기술이 자본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사모펀드에 넘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MBK로 경영권이 넘어간다면 퇴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도 밝혔다.
이 부회장은 1985년 고려아연에 입사해 온산제련소장 겸 기술연구소장을 거친 기술자 출신으로, 사장과 부회장에 오르기까지 약 40년간 고려아연과 영풍의 동업 관계를 현장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대한민국 100대 기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최창영 명예회장과 함께 고려아연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이 부회장은 기자회견 초반부터 장형진 영풍 고문에 대해 날을 세웠다. 그는 "고려아연은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기술과 열정으로 세계 최고의 비철금속 기업으로 우뚝 섰다"며 "50년 동안 고려아연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 온 우리 임직원들의 노고를 당신(장형진 고문)은 뭐로 보고 있나. 장형진,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인수 시도에 대해서 "우리의 기술과 미래,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 없고 오직 돈, 돈, 돈뿐"이라며 "이런 약탈적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경영권 분쟁 사태의 원인에 대해 4~5년 전 영풍에서 환경문제가 발생하면서부터라고 짚었다. 당시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카드뮴 등이 인근 지하수에서 검출되는 등 환경오염 사건이 문제가 되자 영풍이 고려아연에 해결을 요구했고, 이를 고려아연이 거부하자 갈등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은 "장형진 영풍 고문은 이 문제 해결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통해 하고 싶어했지만, 우리는 남의 공장 폐기물을 받아서 처리하는 것은 주주에 대한 배임이고 범죄행위여서 할 수 없었다"며 "이걸 막은 게 바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었다. 그 뒤로 장 고문과의 관계가 틀어지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풍 석포제련소는 2014년부터 환경단체 등으로부터 중금속으로 인한 토양·수질 오염 의혹을 받아 왔다. 이후 환경부 조사를 통해 낙동강으로 카드뮴이 유출된 정황을 확인, 2021년 영풍은 과징금 281억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이후 검찰은 환경 범죄 혐의로 영풍 대표와 석포제련소장 등 임직원 8명을 기소해 이들은 현재 1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밖에도 이 부회장은 영풍이 고려아연에 부당하게 경영 부담을 떠넘기려는 시도가 있었다면서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갖고 있다며 거듭 강조했다. 다만 증거 공개는 다음으로 미뤘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제가 밝히고 싶지만, 다음에 별도로 말씀드릴 것"이라고 했다.
영풍, 경영권 확보 시 中에 기술 유출 불 보듯
아울러 이 부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영풍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측에 넘어갈 경우 고려아연의 경쟁력은 급속도로 약화하고 핵심 기술은 해외로 유출될 것이 확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고려아연의 최근 10년 평균 영업이익률이 12.8%에 달하는 반면 영풍은 -1%라고 언급하면서 "양사가 원료도 공동구매하고 영업도 공동판매였는데, 경영자와 기술력만 달랐다. 영풍이 버틴 것은 고려아연으로부터 700억원, 1000억원씩 배당을 받아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투자 회사들이 돈만 놓고 보면 고려아연에서 팔아먹을 기술이 엄청 많을 것"이라며 "공정마다 수백 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떤 것은 몇천억원짜리도 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인데, 이게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이후에도 회사를 중국에 매각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해 불신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MBK파트너스의 말을) 믿지 않는다"며 "중국이 세계 비철 생산의 절반을 하고 있고 관련된 분야 생산의 절반을 전부 중국이 하는데, 당연히 (기술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고려아연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원료의 절반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업계의 셧다운 우려도 짚었다. 고려아연이 무너질 경우 자동차와 반도체, 철강 등의 소재 원가도 올라 국가산업 경쟁력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최윤범 회장, 조만간 직접 나설 것"
이 부회장은 MBK파트너스 측이 제기하는 고려아연의 투자 적절성에 대해서도 일부 해명했다.
그는 '이그니오 고가 매수' 의혹에 대해 "제가 깊숙이 관여했다"며 "미국에서 폐자재를 처리하고 분리해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스멜팅하기 위한 투자로,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투자심의위원회에 참석해서 하나하나 다 따져보고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했다.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며 문제없는 투자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윤범 회장이 직접 언론에 입장을 밝히고 설명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적당한 시기에 기자회견을 할 것으로 본다"며 "(최 회장은) 지금 차분히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 무조건 우리가 이긴다. 조금만 더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그는 최 회장에 대해 기술과 전문경영 능력을 다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은 "본업은 변호사이고 호주 SMC사장으로 가서 만년 적자 공장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고려아연으로 와선 저와 함께 1년간 온산제련소 현장과 현황을 모두 학습하며 핵심 기술을 다 습득했다. 머리가 굉장히 비상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은 기술 안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영풍의 경영권 약탈 시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당부했다.
그는 "21세기는 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나가는 기술을 지켜야 한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서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도다솔 (did0903@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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