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업사원이 마취에 봉합까지…시킨 의사들은 ‘자격정지 2~3개월’
지난 7월, 이대서울병원 수술방에서 한 환자의 발목 피부 재건 수술이 진행됐습니다.
집도의는 성형외과 A 교수. 그는 본격적인 피부 수술을 진행하기 전, 환자의 발목에 있던 인공관절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하려 했습니다.
인공관절 부품 교체는 성형외과가 아닌 정형외과 소관입니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협진 요청에 따라 정형외과 의사가 교체를 맡았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KBS가 병원 관계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이 작업을 정형외과 교수도, A 교수도 아닌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 B 씨가 진행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병원 측은 "업체 직원의 수술 보조 지시는 정황상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A 교수가 수술방을 이탈하지 않았고 수술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대리수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영업사원의 수술 보조는 관행”…실태 살펴보니
의료기기 업체 직원이나 병원 행정 직원 같은 비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했다가 논란이 된 건 처음이 아닙니다.
2021년 인천의 한 척추 전문병원에서는 의사가 아닌 행정 직원들이 환자 19명을 대리 수술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습니다. 지난해에는 서울의 한 유명 관절 척추 전문병원에서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들을 수술에 참여시켰다가 관계자 10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죠.
그렇다면 무면허 의료행위는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을까요? 제대로 된 처분은 내려지고 있을까요?
최근 5년 동안 보건당국에 적발된 무면허 의료행위의 내용과 처분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의료법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사람과 지시한 사람 모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보건복지부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거나 지시한 의료인에게 자격 정지와 면허 취소, 병원 영업 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9년~2024년 6월)간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해 의료진에게 내려진 행정처분은 모두 404건입니다.
의료인이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의료행위를 하거나,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하도록 교사하는 일이 적발된 것만 1년에 70건이 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내려진 행정처분의 수위는 어떨까요?
■영업사원이 전신 마취도, 상처 봉합도…자격 정지는 '2.3개월'
404건 가운데 ‘자격 정지’가 356건, ‘면허·자격 취소’가 48건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자격이 취소된 의료인은 전체의 약 12%에 그칩니다.
실제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비의료인인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전신마취를 통한 견봉성형술을 실시하면서, 위 수술의 전신마취 및 기도삽관을 담당하게 하고, 수술 보조를 담당하게 하는 등 속칭 대리 수술을 하게 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게 하였고….
→면허취소 (2019년, 의사)
조영제가 들어있는 풍선을 스테인리스 관에 삽입한 다음 이를 부풀려 공간을 만들면 의료기기 판매업체 사장이 수술용 시멘트를 배합한 후 주사기로 수술용 시멘트를 주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중략) 수술용 칼로 수술 부위를 절개한 다음 내시경 카메라를 넣고 앵커를 잡으면 의료기기 판매업체의 직원이 이를 망치로 내리치고….
→ 면허취소 (2021년, 의사)
의료기기 업체 직원이 수술방에 들어가 환자에게 약품을 주입하고, 의사인 양 관절 수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의사가 직무를 유기하고 간호조무사에게 권한 밖 의료행위를 지시했다가 환자가 숨진 사례도 있습니다.
사각턱 축소 수술을 진행하던 환자에게서 다량의 출혈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고 간호조무사로 하여금 약 30분간 단독으로 진료 보조행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압박지혈 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중략) 이로 인해 환자는 뇌부종, 무산소성 뇌 손상, 정맥의 색전증 및 혈전 등이 발생하여 심정지로 사망 하였음.
→ 면허 취소 (2023년, 의사)
면허 취소까진 되지 않았지만, 의사 자격이 정지된 사례도 살펴봤습니다.
원무과 직원으로 하여금 총 4회에 걸쳐 위 병원 수술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술 과정에 보조자로 참여하게 하여 환자의 상처 부위를 '리트렉터(ㄱ자 형태의 도구)'로 양쪽으로 벌려주고 출혈 부위를 거즈로 닦아주는 행위, 붕대로 상처 부위를 감는 행위, '보비'라는 전기기계로 출혈 부위를 봉합하는 행위, 환자의 포지션을 변경해 주는 행위 등을 하게 함으로써….
→ 자격 정지 3개월 (2021년, 의사)
의료기기 납품업체 직원에게 인공 '건(腱)'을 손질하고 확공기(환자의 몸에 뚫은 구멍을 정밀하게 더 넓혀 주는 수술도구)를 이용하여 환자의 무릎 부분에 구멍을 뚫은 다음 손질한 건(腱)을 환자의 수술 부위에 삽입하게 하여 ….
→ 자격 정지 3개월 (2019년, 의사)
원무과 직원에게 환자의 상처 부위를 벌리고 출혈 부위를 봉합하게 하고, 의료기기 업체 직원에게 환자 무릎에 구멍을 뚫게 한 의사들이지만, 모두 자격정지 3개월 처분에 그쳤습니다.
자격 정지 기간을 평균해 봤더니 약 2.3개월이었습니다.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이 정하고 있는 3개월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동찬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의료인이) 신기술을 따라가거나 연구하는 데 있어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 외부인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의료행위 전체를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반드시 형성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무면허 의료행위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인 동시에 환자와의 계약·신뢰 관계를 근본적으로 위반한 행위”라며 “무면허 의료행위 및 교사는 강력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으나,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의료계의 자정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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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욱 기자 (woog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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