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국이 싫어서’ [아침햇발]
황보연
논설위원
2015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났다는 청년들의 ‘탈조선’ 사연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수소문 끝에 ‘워홀러’(워킹 홀리데이 메이커)로 머무르는 한국 청년 15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해 ‘탈조선’은 대한민국을 지옥이라 이르는 ‘헬조선’과 함께 청년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담론으로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 청년들을 혹자는 ‘심정적 난민’ 혹은 ‘희망 난민’이라 했다.
마침 그해 출간된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청년들의 답답한 현실을 드러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 계나는 ‘인서울 대학’을 나온 뒤 금융회사에서 3년째 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예의 바르고 목표 의식 뚜렷한 남자친구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다며 호주로 떠난다. ‘이 정도 여건이면 한국에서 버티고 살 만할’ 것 같은 주인공의 일탈에 독자들은 크게 공감했다. 계나는 재력을 갖춘 부모를 가졌거나 명문대를 나왔거나 김태희처럼 예쁘거나, 하는 식의 ‘경쟁력’ 없이는 한국에서 딱히 비전이 없다고 읊조린다.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전근대적 문화는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게 한국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최근 원작 출간 뒤 9년 만에 ‘한국이 싫어서’가 영화로 찾아왔다. 그때 호주에서 만난 청년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휴대전화도 울리지 않는 숲속 오두막에서 지내며 농장 일을 하던 청년들,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에 진땀을 흘리며 음식점·쇼핑몰에서 일하던 청년들, 영주권을 따려고 장기 플랜을 세우던 이들까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온 이들이 말하는 ‘한국’은 한마디로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닥치고 일만 해야 하는 곳, 친구와도 비교당하고 경쟁해야 하는 곳, 갈수록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곳, 직업에 따른 소득 차이가 매우 큰 곳, 노력한 만큼 성과와 보상이 없는 곳일 뿐이다.
모두가 알고 있거나 짐작하듯이, 호주행이 곧 낙원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세컨드 비자(기간 연장)를 얻으려면 호주인들이 꺼리는 고된 일을 필수로 거쳐야 하고, 규제가 강화된 이민법으로 현지 정착의 문턱은 높아졌다. 그래도 이들은 한국에선 겪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깨쳐가는 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프면 쉴 수 있고, 최저임금으로도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실력이나 노력 대신 학벌로 차별받지 않아도 된다는 데 안도했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직, 한국에 돌아오지 않은 몇몇과 연락이 닿았다. 그해 시드니에서 빌딩 클리너로 일하던 선웅씨는 두달 전 영주권을 취득했다. “호주에 온 지 9년7개월3일 만”이라는 말에 그간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것’이 싫어서 호주로 떠났던 선웅씨는 시드니 요양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귀국하지 않은 데 미련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좋은 배경 없인 잘되기 어려운 곳인 건 여전하지 않으냐”고 되묻는다. 호주에 이어 뉴질랜드·아일랜드에서도 워홀러로 지냈다는 영희씨는 두바이에서 승무원의 꿈을 이뤘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는 “한국이 삶의 다양한 방식을 존중하는 사회였으면 한다”고 했다. 연락이 닿지 않은 더 많은 이들은, 한국이 여전히 싫어도 다른 길을 찾지 못해 돌아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호주에서 번 돈으로 가게를 차렸을 것이고, 또다른 이는 계나처럼 출근길 지옥철을 겪으며 점심 메뉴조차 마음대로 못 고르는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게다.
영화는 9년 전 원작만큼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헬조선’과 같은 신조어도 더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 사회가 괜찮아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난달 말 한국은행은 상위권 대학 진학이 학생의 잠재력보다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거주 지역에 따라 좌우된다는 분석 보고서를 냈다. 출발선이 공정하지 않은 현실은 변함이 없다. 미국 인구학자 다월 마이어스는 “출산율은 절망의 바로미터”라고 했다(‘엄마가 아닌 여자들’). 세계에서 유례없는 한국의 초저출생 지표는 그때 ‘탈조선’을 품고 살던 청년들이 겪은 절망에 기인한다.
‘헬조선’ 담론이 확산된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광복절 기념사)을 가지라고 했다. 정부의 성찰은 간데없고 ‘노오력’만 강조한 것이다. 시대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대통령은 지금이라고 다를 게 없다. 청년들의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속도를 늦춰준다지만 안정적으로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일자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저출생 대책으로 육아휴직 급여만 높이면 뭐 하나. 육아휴직 자체가 그림의 떡인 청년들에 대해선 무대책이다. 노동시간은 줄이지 않으면서 아이를 저녁까지 봐준다는 모순적 발상은 또 어떤가. 그러는 사이, 우리 안의 희망 난민들만 늘어가고 있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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