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률 51%' 사람 잡는 조류독감…'넥스트 팬데믹' 경고
전 세계적으로 조류인플루엔자(조류독감)가 확산하면서 코로나19 이후 찾아올 '넥스트 팬데믹'(새로운 범유행 감염병)으로 조류인플루엔자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해당 백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독감 백신 제조기업 CSL시퀴러스가 24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개최한 조류 인플루엔자 기자간담회에서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조류인플루엔자는 아직 사람 간 전파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최근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염되는 인수공통 감염 사례가 잦아졌다"며 "학계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코로나19 다음으로 찾아올 팬데믹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Avian Influenza)는 닭·오리·칠면조·야생조류 등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로서, 병원성에 따라 고병원성·약병원성·비병원성으로 구분한다. 그간 조류에서 가금류(오리·닭 등)와 야생 조류, 포유류까지는 감염됐어도 사람에게까지는 잘 전파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H5N1'은 A형 인플루엔자의 변이종으로, 지금까지 300종 이상의 조류와 40종 이상의 포유류를 감염시켰는데, 미국에서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H5N1'에 감염된 소·가금류에서 사람에게 전파된 사례만 총 14건이 보고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양이쉼터에서 고양이들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냉동닭을 먹고 폐사된 사례가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바이러스가 사람까지 감염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의 주요 증상은 결막염을 비롯해 발열·기침·인후통·근육통 등 전형적인 인플루엔자 유사증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폐렴, 급성호흡기부전 등 중증 호흡기 질환, 구역·구토·설사를 수반한 소화기 증상, 신경학적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치명률이다. 지금까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사람은 드물지만, 한번 걸리면 사망할 확률은 50%가 넘는다. 해외 인체감염 사례 보고에 따르면 H5N1에 감염된 사람 902명 가운데 사망자는 466명으로 치명률은 51.7%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미국 12개 주에서 젖소 140여 마리가 H5N1 조류인플루엔자에 잇달아 걸린 이후 젖소에서 사람으로 전파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핀란드 등 유럽에선 이로 인해 감염된 사람이 10명을 넘었다. 의학계는 언젠가 이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도 퍼지면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사람 간 전파'가 없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소·돼지 등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후 언제든 사람 간 전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며 "유전자 변이로 인해 사람 간 변이까지 발생한다면 새로운 팬데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조류인플루엔자 백신이 일부 개발·생산되긴 했지만 '면역증강제'가 없다는 게 한계점으로 꼽힌다. 면역증강제가 있으면 백신의 재료인 '항원'을 적게 쓰고도 백신을 만들 수 있는데, 감염병 대유행 시 백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접종하기 위해 항원을 아껴야 할 때 필요하다. 이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백신은 '유정란 백신'과 '세포배양 백신'이 있는데, 면역증강제가 없어 이를 확보한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날 호주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한 글로벌 CSL 시퀴러스 팬데믹 총괄 마크 레이시(Marc Lacey)는 "CSL 시퀴러스는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발생하면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범용 백신을 대량으로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고 밝혔다. 이어 "항원을 적게 쓰고도 면역반응을 증강하는 기술(면역증강제), 유정란 백신, 세포 배양 백신 기술을 통해 전 세계 조류인플루엔자 팬데믹 상황 발생 시 발 빠르게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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