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서 최소 558명 사망…‘불 질러서 불 끈다’ 이스라엘의 ‘위험한 도박’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최소 558명이 숨지는 최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충격과 압박을 가해 헤즈볼라를 격퇴하겠다는 목표로 레바논 전역을 폭격하는 ‘위험한 도박’을 벌였으나, 국면은 사실상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2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레바논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연이은 공습으로 최소 558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아동은 50명, 여성은 94명이라고 밝혔다. 부상자는 1835명에 달한다. 사상자 수는 집계될 때마다 상승하고 있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공격을 받은 지역에서 수천명이 피란길에 올라 도로가 막혔으며 병원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날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 동부, 북부 등 전역에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내 “지난 24시간 동안 약 650차례 공습해 헤즈볼라 시설 1100곳 이상을 타격했다”며 “공격 대상에는 헤즈볼라가 로켓과 미사일, 발사대, 무인기(드론)를 숨긴 건물과 추가 테러 시설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오늘은 중요한 정점이다. 로켓과 정밀 무기 수만대를 파괴했다. 헤즈볼라가 지난 20년 동안 구축한 것이 파괴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레바논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는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이 벌어졌던 2006년 이래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 2006년 7월12일부터 약 한 달간 이어진 전쟁에서 레바논 측 민간인이 1200명 가까이 숨지고 4400명 이상이 다쳤다. 이와 비교해 보면 이날 약 24시간 만에 2006년 전쟁 당시 한 달 사망자 수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이들이 숨진 것이다.
한 레바논 관계자는 “1975~1990년 내전 이후 분쟁으로 인한 일일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던 날”이라고 로이터에 밝혔다. 지난 17~18일 무선호출기·무전기 폭발로 인한 사상자 수까지 합치면 지난 일주일 동안 레바논의 인명피해는 5000여명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이처럼 레바논 공격 수위를 급격히 높인 이유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즉 외교적 해결책에 동의하게끔 헤즈볼라를 군사적으로 압박한다는 것이다. 호출기와 무전기를 폭발시키고, 헤즈볼라 핵심 지휘관을 제거하고, 일부 민간인 희생을 유도함으로써 헤즈볼라를 겁주고 이스라엘·레바논 접경 지역에서 철수시킨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더 거세진 공습은 이스라엘이 국경을 넘어오는 헤즈볼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대응 수위를 높이기로) 굳게 결심했다는 점을 반영한다”며 “그러나 실제 벌어진 상황은 이스라엘이 그 목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양측이 전면전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헤즈볼라를 멈춰 세우려는 의도와는 달리 더 큰 반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CNN 또한 “이는 매우 위험하고 결함이 많은 전략이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외교적 해결책을 목표로 한다’고 미국을 속이려는 것일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휴전에 합의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밝혔으며 대이스라엘 공격을 확대했다. 헤즈볼라는 24일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 약 70발을 발사했다. 공군기지, 비행장 등이 표적이 됐다. 이로 인해 갈릴리, 나사렛을 포함한 이스라엘 본토 깊숙한 지역까지 공습경보가 울렸으며 북부 일부 지역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헤즈볼라를 압박할 수단이 고갈될 경우 이스라엘로선 지상전이란 선택지를 택해야 할 수도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이스라엘은 지상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으나, 감행하기 쉽지 않다. 만약 레바논 남부로 진입한다면 이스라엘군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이어 레바논까지 3개의 전선을 부담해야 한다.
NYT는 “이스라엘은 아직 가자지구의 하마스도 완전히 물리치지 못했다. 헤즈볼라가 통제하는 지역은 가자지구보다 더 넓은 산악 지형이고,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더 잘 훈련됐다”며 “레바논을 침공하려면 예비군 수천 명을 소집해야 하는데 이들은 (가자지구 전쟁 탓에) 이미 지친 상태”라고 분석했다.
다만 현재로선 이스라엘이 굳이 지상전을 벌이지 않고도 헤즈볼라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헤즈볼라는 호출기·무전기 폭발로 큰 피해를 보았으며 통신 체계도 일부 무너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취약성이 노출됐으며 이스라엘에 쏘는 로켓도 대부분 요격당하고 있다. CNN은 헤즈볼라를 이끄는 하산 나스랄라가 대응을 더 확대할지, 아니면 이번은 넘어가고 다음을 도모할지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현 상황이 선전포고만 하지 않았을 뿐 전면전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미 나더 레반트전략문제연구소 소장은 “이스라엘의 관심이 가자지구에서 옮겨가 레바논이 현재 제1 전쟁 지역”이라며 현 상황이 “전면전”이라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23일 전면전 단계로 접어들었다. (사상자 수는) 헤즈볼라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헤즈볼라는 더 깊숙이 타격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전쟁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사회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미국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고 공격·반격의 악순환을 끊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긴장이 고조됨으로써 상황이 완화된 시기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입장과 다른 것인가’란 질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의 전략에 반대한 것이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중동 확전을 노린다. (이란을 끌어들이려) 덫을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싸우고 싶지 않다. 이스라엘이 모든 무기를 내려놓을 의향이 있다면 우리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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