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독립영화는 어디서"…저물어가는 낭만, 대한극장도 문 닫았다[르포]

김지은 기자 2024. 9. 2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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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극장 건물, 공연장으로 탈바꿈… 주민들 "아쉽지만 기대감도"
24일 오전 11시쯤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대한극장 앞 분식점에는 유명 영화배우들이 남기고 간 사인이 벽에 붙어 있었다. /사진=김지은 기자


"영화 무대 인사 온 배우들이 자주 왔었죠."

24일 오전 11시쯤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대한극장 앞. 이곳에 12년 넘게 분식집을 운영한 김모씨는 벽에 붙여둔 종이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벽에는 영화감독과 유명 배우, 가수들이 그동안 남기고 간 사인이 가득했다.

김씨는 "과거에는 영화배우들이 시사회나 무대인사를 마치고 우리 집에 와서 음식도 사먹었다"며 "대한극장이 문을 닫으면 그런 소소한 재미도 추억으로 남으니까 아쉽다"고 말했다.

1958년 문을 연 뒤 '충무로의 상징'으로 군림했던 대한극장이 오는 30일 문을 닫는다. 영화 산업이 급변하면서 한국 영화계를 대표했던 충무로 거리도 달라졌다.

한국 영화의 상징 '대한극장'… 66년 만에 사라진 이유

24일 오전에 방문한 대한극장 모습. 외관에 걸려 있던 영화 포스터가 모두 사라졌다. /사진=김지은 기자

이날 방문한 대한극장은 이미 영업을 중단하고 한창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과거 건물 외관을 가득 메웠던 영화 포스터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한극장 앞 벤치에는 60~70대 노인들이 앉아있었다. 이곳 1층에 있었던 스타벅스도 계약 종료로 9월까지 운영된다.

대한극장은 1958년 단관으로 개관한 뒤 66년 동안 한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간판 극장으로 불렸다. 미국 20세기폭스사가 설계를 맡아 70㎜ 원본 필름을 그대로 상영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극장 최초로 창을 없애 빛의 방해 없이 영화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대작을 주로 상영했다. 한 때는 연 146만명 관객이 찾아왔다. 2001년 11개관 멀티플렉스 형태로 리모델링한 이후에는 '올드보이' 시사회도 열었다.

24일 오전에 방문한 대한극장 모습.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사진=김지은 기자


대한극장이 영업을 종료한 건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대형 멀티플렉스가 급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2008년 폐업한 단성사와 명보극장, 2015년 CGV에 운영권을 넘긴 피카디리, 2021년 사라진 서울극장 모두 경영 적자를 이기지 못해 문을 닫았다.

대한극장을 운영하는 세기상사는 해당 건물을 공연장으로 개조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흥행한 이머시브 공연 '슬립 노 모어'를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은 아쉬움과 함께 기대감도 드러냈다. 직장인 유모씨는 "대학생 때 대한극장에서 영화 할인을 해줘서 '어벤져스' 영화를 즐겨 봤다"며 "영화관 자체가 조용하기도 하고 소소한 추억도 깃들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씨는 "마지막으로 본 게 '서울의 봄' 영화였다"며 "관객들이 많이 줄어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막상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아쉽다. 새로 들어설 공연장이 어떤 모습일지, 이 동네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낭만의 거리' 충무로… "새로운 변화 필요하지만 아쉽기도"

서울 중구 충무로역에 마련된 '충무로 영화의 길' 전시관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

충무로는 한국 영화를 상징하는 '낭만의 거리'였다. 1951년부터 감독, 배우, 기획, 작가, 촬영, 조명, 기술, 음악 등 영화인 협회 사무실이 집중됐다. 1960~1970년대 한국 영화 제작사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현상소, 편집실, 기획사는 물론 영화인들 소품 운반을 위한 오토바이 가게들, 배우 지망생 프로필을 찍는 사진관, 영화 포스터와 홍보물 출력하는 인쇄소도 흥했다.

지하철 충무로역 안에는 지금도 '충무로 영화의 길'이라는 전시 공간이 있다. 다른 층에는 '충무로 영상센터'를 마련해 독립영화 등 DVD를 무료로 빌릴 수 있게 해놨다.

영화인들은 대한극장이 사라지고 충무로가 변화하는 게 아쉽다. 대한극장은 그동안 예술영화 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재개봉 영화를 다수 상영했다. 평소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이모씨는 "극장이 사라지면 대기업이 영화를 독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단관극장은 이해관계가 적어 독립 영화 상영 기회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 영화관도 독립 영화 상영관이 있지만 대부분 늦은 밤이나 새벽에 상영된다"며 "대한극장은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지키고 관객들에게도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했다. 영화인에게 보물 같은 곳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말했다.

지하철 충무로역 안에 마련된 '충무로 영상센터'. 무료로 DVD를 빌려 영화를 볼 수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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