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새 2000명 사상 최악 폭격에 레바논 ‘패닉’···피란행렬 이어져
하루 새 2000명 넘는 대규모 사상자를 낳은 이스라엘군의 ‘융단 폭격’으로 레바논은 공황 상태에 휩싸였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사실상 ‘전면전 단계’로 진입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24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에선 주민들의 목숨을 건 탈출 행렬이 밤새 이어졌다.
2006년 양측의 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이 가장 치명적인 폭격을 퍼부은 전날부터 남부 지역에서 수천여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남부 일대는 헤즈볼라 군사시설이 포진해 있어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집중된 지역이다. 국경에 인접한 마을 주민 11만명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이 시작된 지난해 10월 이후 이미 피란민이 됐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남부 지역을 뒤로 한 채 수도 베이루트로 향하는 차량 행렬로 고속도로가 꽉 막혔다고 전했다. AP통신은 2006년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피란 행렬이라고 전했다. 휴교령이 내려진 베이루트와 트리폴리 일대의 학교들에는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한 임시 대피소가 마련되고 있다.
이날 새벽 심한 폭격을 받은 남부 야테르 마을 주민 아베드 아푸는 “새벽부터 주변에 온통 폭격이 이어졌고, 중요한 서류만 챙긴 채 차를 타고 도망쳤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야테르는 이스라엘 국경과 불과 5㎞ 떨어진 마을로, 지난해 10월 이후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던 아푸 가족은 이날 주택가에도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결국 집을 떠났다. 세 아들과 함께 피란길에 오른 그는 “어디서 지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베이루트로 가려 한다”고 말했다.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한 남성은 차량 창문을 열고 방송 카메라를 향해 “신의 뜻대로라면, 반드시 우리는 돌아갈 것”이라며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에게 우리가 돌아올 것이라고 전해 달라”고 외쳤다.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와 남부 지역 주민들의 휴대전화와 일반 전화에 무작위로 음성 및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 내 헤즈볼라 테러 시설을 파괴할 예정이니 당장 떠나라’ 내용의 아랍어 메시지다. 지아드 마카리 레바논 정보부 장관은 자신도 이런 메시지를 받았으며, 이는 레바논에 공포와 혼란을 심기 위한 일종의 “심리전”이라고 지적했다.
베이루트 등 대도시에서도 장기간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통조림 등 생필품과 연료를 미리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각 매장이 붐비고 있다.
레바논 보건부는 부상자 치료에 대비해 동부와 남부의 병원에 비필수 수술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교육부도 국경지대를 포함해 베이루트 남부 외곽 지역에 이틀간 휴교령을 내렸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최소 492명이 사망하고 1645명이 다쳤다. 1975~1990년 벌어진 레바논 내전 이후 일일 사망자로 가장 많은 규모다. 사망자 가운데는 어린이 최소 35명이 포함됐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24시간 동안 헤즈볼라 목표물 1600곳을 타격했으며, 공습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미 전쟁이 시작됐다고 보고 전면전에 대비하는 레바논인들도 적지 않다. 한 남성은 BBC에 “전면전이 시작되면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레바논 국민으로서 모두 뭉쳐야 한다”며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나라 영토를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전쟁은 우리에게 강요된 것이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도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일으킨 이스라엘의 폭격을 비난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유엔 총회 참석차 방문한 뉴욕에서 취재진에게 “상황이 극도로 위험하고 걱정스럽다. 거의 전면전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서 갈수록 늘어나는 민간인 피해를 언급하며 “이게 전쟁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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